[특집| 시간제 일자리의 함정]“효과도 없는 시간제 일자리 왜 도입하나”

민주당 노동전문가 은수미 의원 “우리나라에선 필요없는 제도”

“한국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필요 없다. 시간제 일자리로 고용률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민주당에서 대표적인 노동전문가로 꼽히는 은수미 의원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말했다. 효과도 거두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부작용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을지로위원회 활동을 통해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고용과 대형유통마트의 횡포를 밝혀냈던 은 의원은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쭉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13일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공무원과 교사도 시간제로 뽑겠다는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가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고용정책이었는데, 정부 발표대로라면 청년층도 시간제 일자리를 이용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맞다. 정부가 마구잡이로 발표를 한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는 원래 임신과 육아로 경력단절을 한 고학력 여성을 위한 것이었다. 통계를 보면 중졸 이하의 저학력 여성은 쭉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고학력 여성의 경우 내가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과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이득인지를 비교하게 된다. 자존감이나 급여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찾게 된다. 하지만 정부 발표대로라면 고학력 여성이 찾을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저학력 여성이나 일자리 경험이 없는 청년층에게 맞는 일자리가 되어버렸다.”

[특집| 시간제 일자리의 함정]“효과도 없는 시간제 일자리 왜 도입하나”

정부 발표대로라면 시간제 일자리의 근본 취지가 달라진 것인가.
“황혼의 노년층, 청년층에게 맞는 일자리가 돼버렸다. 청년의 경우 시간제 일자리를 전일제 일자리로 가기 위한 디딤돌로 선택할 것이다. 4대 보험이라도 받는 일자리를 우선 구하려고 할 것이다. 정부가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아닌 허드렛일자리가 된 것이다.”

정부 발표에 어떤 문제가 있나.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하려면 가장 먼저 전일제 일자리와 시간제 일자리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가 정착한 해외의 경우 시간제 일자리의 시간당 임금이 전일제보다 높다. 전일제 노동자와 시간제 노동자의 월급에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보완한 것이다.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홍보하느라 네덜란드의 예를 많이 드는데,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네덜란드는 노동시간이 짧다.

연간 근로시간이 1300시간이다. 2011년 OECD 평균 근로시간이 1693시간인데, 한국은 2116시간이다. 네덜란드는 시간제로 일을 하는 것이나 전일제로 일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지만, 한국은 다르다.

시간제로 일을 하게 되면 전일제와 월급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게 된다.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은 상황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은 나쁜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전일제와 시간제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선택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도록 벽을 만들었다.”

시간제 일자리가 고용방식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효과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시간제 일자리가 고용률을 높이는 곳은 유럽에서도 영국과 네덜란드 등 3개국에 불과하다. 네덜란드의 경우 근로시간이 워낙 적고 시간제와 전일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제 일자리가 고용률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오히려 고용증가율을 높이는 것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많아지는 것이 효과가 있었다.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률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는다.”

시간제 일자리로 효과를 본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전혀 없다. 정부가 나서서 시간제 일자리를 늘릴 필요가 없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비정규직 중에서 가장 많이 늘어나는 형태가 시간제 일자리다. 시간제 일자리로 일하는 비중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높다.”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로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고 한다.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전일제 노동자 1명의 역할을 시간제 노동자 2명으로 쪼개기를 해 어느 수준까지 고용률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일자리에 휘발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 일자리가 30만개, 40만개 늘어나도 고용률이 늘어나지 않은 이유다.

나쁜 일자리는 오래 가지 못한다. 고용률을 높이려면 휘발성이 없는 정규직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야 한다. 2013년 10월 현재 한국의 고용률은 60.5%에 불과하다. 70%까지 늘리려면 최소한 7%의 좋은 정규직 일자리가 받쳐줘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로 70% 고용률을 달성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 민간부문에도 정부가 지원을 한다고 했다. 이게 효과가 있나.
“지원을 할 게 아니라 규제를 해야 할 때다. 기업의 이윤은 늘어나고 있지만 노동자의 월급은 오르지 않고, 기업은 투자도 하지 않고 있다. 기업은 오히려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하청이나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다.

기업은 사람에 대해 투자를 해야 한다. 대기업이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불법파견도 금지하고, 하청도 줄이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은 이제 자기 고용을 해야 한다. 기업이 하청을 쓰려면 엄격한 기준에서만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은 시간제 일자리가 손해지만, 정부의 정책이니 따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기업들이 바보인가. 요즘 유통업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점오 일자리’다. 계약직을 뽑을 때 분으로 끊어서 계약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루 7.5시간 근무’ 이런 식으로 계약을 하는 것이다. 왜 이러냐 하면 근로기준법상 하루 8시간 일을 하게 되면 유급 휴식시간을 1시간을 줘야 한다. 7.5시간 근무의 경우 30분만 주면 된다. 그리고 30분 더 일을 시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시간외 수당이다. 8시간 근무 외 일을 하면 시급의 150%를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4시간 근무자가 5시간을 일해도 시간외 수당을 받지 못한다.

시간제 일자리로 들어온 이들은 월급이 적으니까 연장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데, 연장근로를 해도 시간외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뽑는 기업에 지원까지 해준다는 것이다. 기업이 시간제 일자리를 어떻게 악용할지 불 보듯 뻔하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박근혜 정부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세금을 내는 시민을 늘려서 내수를 살리는 방향의 고용정책을 써야 한다.

소득 불평등이 늘어나면 국가재정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부자 증세로도 해결이 안 된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이 늘어나는 만큼 빈곤도 늘어나는 양극화 강화 정책을 쓰고 있다. 평등 강화 정책을 써야 한다.”

어찌됐건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할 것이다. 야당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시간제 일자리 도입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다만 시간제 일자리가 도입되더라도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의 노동권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과 법안을 만들 것이다. 예를 들면 시간제 일자리의 시간외 수당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갈 것이다.

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가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과 노조 문제를 많이 해결했다. 을지로위원회처럼 기업과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들의 분쟁이 생기면 중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부가 예로 드는 네덜란드는 노동시간이 짧아 시간제나 전일제나 별 차이가 없지만 한국은 월급 차이가 너무 난다. 노동시간을 줄이지 않고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은 나쁜 일자리 만들기나 마찬가지”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