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내부고발자, 그 후]제보자의 삶은 만신창이가 됐다

표적감사·중징계·파면 등 불이익 일쑤… 법적 승리해도 몸과 마음 망가져

한 대학병원에서 전직 공무원 ㄱ씨를 만났다. 지난해 여름에 해고된 ㄱ씨는 기자를 보는 순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아직 해고무효 재판 중이라는 ㄱ씨는 “공판만 열 번을 넘게 해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섣불리 꺼내길 망설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때로는 “거대한 악을 눈앞에 두고 눈 감고 사는 것은 죄악이다”라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2년 전 그가 한 방송사에 소년원의 비인간적인 관리실태를 제보한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ㄱ씨의 제보 덕에 구타와 성추행이 만연한 소년원의 실태가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그의 인생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ㄱ씨는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 대해 표적 감사가 진행되더니 보직이 변경됐고 다른 지사로 발령이 났다”고 말했다.

1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포스코그룹 동반성장 실적조작 및 공익제보자 탄압 폭로 기자회견’에서 김성진 참여연대 변호사(왼쪽에서 두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재판과정에서 알게된 건데 그동안 직장에서 제 근무평가를 계속해서 최하점을 줬더라고요. 그동안엔 분명히 직장 내 실적이 좋은 편이었는데 이상했죠. 제가 정말 불성실하게 근무를 했다면 당연히 저를 지방으로 발령을 내야 하는데 오히려 서울로 발령을 냈어요. 저한테 대놓고 ‘그만두라’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우회적으로 ‘선배가 하는 좋은 직장이 있다’는 식으로 말을 흘리는 경우도 있었죠.”

그가 해고된 공식적인 이유는 ‘공문서 위조’다. 재판과정에서 그의 전 직장 동료들은 그의 정신적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실제로 제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것은 사실이고 동료들도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에요. 그런데 제가 실적이 좋을 때는 제 정신적 문제에 대해 아무말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거론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리고 공문서 위조 부분도 재판과정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게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어요. 공무수행 중에 뇌물수수가 적발된 사람도 경고를 받고 끝났는데 실체도 불분명한 일로 갑자기 해고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요?”

“10번 넘는 공판에 지칠 대로 지쳤다”
ㄱ씨는 자신의 병과 모친의 중병을 치료하기 위해 매일같이 대학병원에 ‘출근’하고 있다. ㄱ씨는 소송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법 지식을 토대로 법률가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ㄱ씨와 헤어지고 며칠 뒤 그의 모친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했다. ㄱ씨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하고 보내드린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다행히 재판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나마 저는 내부고발자 중에서는 나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공익신고자 모임에서 만난 어떤 분은 내부고발 직후 이혼당하고 몇 년간 폐지만 모으며 살아가기도 했어요. 다행히 저는 이전 직장에서 배운 기술이 있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돈은 벌고 있고, 향후 진로에 대해서도 나름 생각해둔 것이 있어요. 사실상 최저수임으로 제 사건을 맡아주시는 변호사님께 고마울 뿐이에요.”

포스코 계열사 전직 직원 ㄴ씨도 내부고발자다. 그는 지난해 8월 포스코 동반성장 실적 조작 실태와 기타 내부 비위를 포스코 감사실에 제보한 이후 ‘이미지 실추’, ‘위계질서와 조직 분위기 문란’ 등의 이유로 해고됐다. ㄴ씨의 제보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포스코의 동반성장지수 우수등급을 취소했고, 포스코 정도경영실도 ㄴ씨의 제보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ㄴ씨는 아직 직장에 돌아오지 못했다.

“2010년에 입사해서 이듬해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어요. 입사하면서 그래도 포스코 계열사라는 기대도 있었고, 언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지 인생계획도 짜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재판 준비에 여념이 없어서 아내가 벌어다주는 돈만 까먹는 상황이에요. 회사에서는 그냥 제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노동위원회에서 다 이겼는데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 주겠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어요.”

포스코는 홈페이지를 통해 계열사 직원도 본사 감사실(정도경영실)에 내부고발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밝히고 있다. ㄴ씨는 이에 따라 자신이 담당했던 동반성장 업무의 문제점과 직장 내부 성추행, 부당한 야근수당 수령 등의 실태를 고발했다. ㄴ씨는 내부고발을 하기 전에 철저한 자료 준비를 했다. ㄴ씨의 노트북에는 수십 개의 자료 폴더와 녹취록 폴더가 있었다.

“저는 회사를 믿었죠. 내부 제보자는 철저하게 보호를 해준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회사가 피제보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제 신분을 노출시킨 거예요. 제가 제시했던 자료들을 모두 보여주며 ‘이게 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거다’라며 암시를 준 거죠.”

ㄴ씨는 무엇보다도 믿었던 동료들이 등을 돌린 것이 뼈아팠다고 말했다.
“여직원 중에 팀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있어요. 한 명은 직접 메신저로 저한테 알리기까지 했고요. 그런데 막상 성추행 사건을 제보하고 나니 한 명은 이미 회사를 떠났다며 증언을 거부했고, 또 한 명은 회사가 작업을 들어갔는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서 종료됐어요. 선배 중에는 나중에 꼭 제 편이 돼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죠. 어느날 갑자기 그 선배가 승진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너는 괜찮고 다른 사람들은 다 문제 있는 사람들이냐?’며 저쪽 편에 서 있죠.”

믿었던 동료마저도 등 돌려
ㄴ씨는 30대 초반이다. ㄴ씨는 지난 10월 참여연대의 도움을 받아 포스코의 내부문제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ㄴ씨는 “시민단체 분들도 저처럼 나이가 적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더라”며 “이미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만큼 꼭 회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20여년간 내부고발자들의 상당수는 ㄱ씨, ㄴ씨처럼 해고에 시달렸다. 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의 경우 제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2년간 옥에 갇혔다. 4대강 사업의 실체가 한반도 대운하라고 폭로한 김이태 박사(한국건설기술연구원)는 ‘연구원의 위상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뒤늦게 중징계를 받았다.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내부고발자들을 이념이나 지역의 잣대로 재단하는 모습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금도 보수단체 게시판을 보면 이 상임이사나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의 야당 활동 경력을 들먹이며 ‘내부고발자들은 좌파 내에서 귀하게 대접받고 사후보장을 받는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상임이사는 이념으로 내부고발자를 재단하는 데에는 진보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의혹사건을 예로 들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부고발에 대해서는 ‘프락치’라는 명칭을 씌우고 사실상 신상을 공개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내부고발 문제는 보수·진보를 떠난 문제예요. 내란음모 사건이 터지자 통합진보당에선 제보 내용에 대해 말하기보다 제보자가 도박빚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고, 일부 언론은 제보자의 집을 사진으로 실었어요. 자기 편일 때는 직위도 주고 선거도 출마시켰으면서 이제 와서 나쁜 놈으로 만드는 건 앞뒤가 맞지 않죠. 박근혜 정부나 삼성만 내부고발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에요. 통합진보당이건 민주노총이건 잘못된 일이 있으면 당연히 내부에서 제보를 해야 하는 거죠.”

전직 선관위 직원 ㄷ씨는 자신이 ‘이념의 희생양’이 아닌가 지금도 의심하고 있다. 그는 2007년 하남시장 주민소환 선거 당시 청구인 서명에 동일 필체가 곳곳에서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선관위가 이를 무시하고 주민소환을 진행시켰다는 사실을 내부고발했다. ㄷ씨의 내부고발이 방송을 통해 보도되면서 하남시장 주민소환을 추진했던 진보단체들은 도덕적 타격을 입었다. 내부고발 이후 ㄷ씨는 출퇴근만 5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곳으로 발령난 이후 파면조치를 당했다.

“저도 처음엔 시민단체로부터 공익제보자로 인정을 받고 공익제보자 모임에서 활동도 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연락이 안 와요. 제가 김영삼 정권 때는 민자당의 불법선거를 잡다가 다치기도 하는 등 여야 가릴 것 없이 원칙을 지켜오며 공명선거를 위해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작년에 오랜만에 공익제보자 행사에 가서 ‘여기 오셨던 분들이 특정 정치색과 가까워서 나를 배제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어요.”

통진당 내부고발자 인신공격 당해
ㄷ씨는 4년에 걸친 법정다툼 끝에 지난해 4월 복직했다. 하지만 ㄷ씨는 제대로 출근해보기도 전에 다른 이유로 다시 직위해제됐다. 공무원 연금만으로 생활하고 있는 ㄷ씨는 오랜 소송 기간 중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변호사를 구할 엄두조차 못내고 저 혼자 법률 공부를 하며 재판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디 하나 절 도와준 곳은 없었어요. 선관위 노동조합에 재판을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거절당한 적도 있어요. 조합원이 내부고발로 파면됐는데 법률적 도움도 주지 않고 생계지원도 해주지 않는 노조는 어용노조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진보단체에 타격을 줄 만한 일을 내부고발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죠.”

ㄷ씨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전화를 걸어와 걱정하는 말투로 말했다. <주간경향> 역시 진보적 성향의 매체이기 때문에 자신의 사례가 엉뚱한 방향으로 알려질 것을 걱정한 것이다. ㄷ씨는 “공익제보를 하는데 여야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누구는 공익제보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는 것은 가치관이 혼돈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
“충분한 증거 확보하고 폭로해야”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1992년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폭로한 이후 줄곧 내부고발자들을 돕는 일에 매진해 왔다. 1996년에는 잠시 정치권에 진출해 민주당 서울시의원을 지냈고, 이후에는 공익제보자 모임과 호루라기재단에서 내부고발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상임이사는 여러 가지 제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내부고발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증거자료와 자신을 위해 증언해줄 동료들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부고발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나.
“사실 ‘꼭 제보를 하라’고 말하진 않는다. 나도 경험을 해봤지만 내부고발은 개인의 인생이 걸린 문제다. 올해 호루라기재단에서 내부고발자 50명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했는데, 지금 먹고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은 내부고발을 후회하기도 하고, 다시는 제보를 하지 않겠다는 답도 한다. 재단 입장에서는 되도록 고발을 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좋지만 차마 설득하진 못하겠더라.”

그렇다면 내부고발을 작정하고 호루라기재단을 찾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조언하나.
“물론 작심하고 찾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땐 최대한 정보를 다 확보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회사 공문 같은 문서자료나 녹취자료, 이메일 등을 최대한 수집한 다음에 폭로해야지 지금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섣불리 제보를 해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제보를 한 이후에 자신을 지지해줄 수 있는 동료들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막상 내부고발을 하고 나면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돌아서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꼭 녹취를 해야 한다. 충분한 준비가 됐을 때 적절한 시점을 봐서 내부고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적인 부분에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현행 공익신고법에 개정할 부분이 많다. 현행법은 공익신고가 가능한 180개 법률을 정해놨다. 그런데 이건 전체 법률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공익제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도 180개 법률에 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공익신고로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건 많은 분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부분인데, 언론이나 시민단체에 제보하면 현행법으로 보호받을 수가 없다. 국가기관이나 자신이 속한 기업에 신고를 한 것만 보호 대상이다. 언론 등에 제보를 생각하더라도 우선은 현행법에 맞게 신고를 하는 것이 좋다.”

내부고발을 준비하는 사람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 또 있나.
“고발 대상에게 고발 내용을 근거로 돈을 요구하면 절대 안 된다. 만약 그런다면 법적으로 보호가 안 된다. 공익신고법 2조에 따르면 ‘공익신고와 관련해 금품이나 특혜를 요구하거나 부정한 목적으로 신고를 한 경우’에는 공익신고로 보호받지 못한다.”

내부고발자 사건에서는 꼭 제보자들의 ‘의도’가 문제시되곤 한다.
“내부고발이 들어오면 조직에서는 ‘진급이나 인사에 불만이 있어서 그랬다’든지, ‘평소에 행실이 이상했다’는 소문을 퍼뜨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윤리적인 사람이 제보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100% 윤리적인 사람만 공익제보의 자격이 있다는 말은 아예 내부고발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제보자의 윤리성을 따지는 보도는 저열한 보도라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제보받을 때 100% 윤리적인 사람의 제보만 기사화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제보자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그 제보 내용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안 된다는 말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