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내부고발자, 그 후]내부고발이 우리사회에 준 변화들

사회개혁 촉발 제도개선 이끈 사건도 있지만 성공적 고발은 많지 않아

내부고발자들의 활동이 본격화된 시기는 1990년대다. 여러 내부자들의 양심적인 증언으로 선거비리와 예산낭비가 바로잡혔다. 법의 사각지대도 조금은 줄었다.

내부고발 관련 단체 활동가들은 1987년 민주항쟁 이후 한국 사회에 불어온 자유의 바람을 계기로 내부고발이 촉발됐다고 평가한다. 1990년 이문옥 당시 감사원 감사관의 감사비리 내부고발을 시작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공익제보가 이어졌다.

군사정권이 막바지에 달했던 1990년대 초반에는 군 내부의 문제점들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윤석양 이병 사건과 이지문 중위 사건이다.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불법사찰 폭로사건은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의 위상을 떨어뜨린 사례다. 1990년 10월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 이병은 보안사를 탈출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7년 11월 19일 광주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회원들이 광주 광산구청 앞에서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광주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 제공

기자회견에서 윤 이병은 보안사가 김영삼·김대중 등 여야 지도자들과 1300여명에 달하는 민간인에게 불법사찰을 벌였다고 폭로했다. 그 증거로 윤 이병은 동향파악 대상자 명단과 개인신상 서류들을 제시했다.

당시 국방부는 윤 이병의 학생운동 전력을 들먹이며 폭로의 순수성을 공격했지만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불법사찰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윤 이병의 폭로로 군사정권 기간 중 마치 지금의 국정원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보안사의 위상이 크게 흔들렸다. 노태우 정부는 보안사의 이미지 개선을 이유로 그 이름을 기무사령부로 변경했다.

장병 부재자투표, 영외원칙 정착
1992년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면 기무사부터 손봐야겠다”며 기무사 개혁을 군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김 대통령은 취임 직후 노태우 정부 시절 임명된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한 데 이어 기무사의 민간 정보수집 기능을 폐지시켰다. 기무사령관의 계급도 중장에서 소장으로 격하시켰다.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도 군 내부의 부재자투표 비리를 폭로한 내부고발자다. 이 상임이사는 1992년 백마부대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그 해 열린 14대 총선 직전 이 중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군 부재자투표 과정에서 공개투표·대리투표 사실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 중위는 군 내부에서 여당을 지지하라는 취지의 정신교육도 실시됐다고 폭로했다.

국방부는 윤 이병 때와 마찬가지로 폭로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이 중위를 전격 구속한 뒤 이등병으로 강등시켰다. 또한 이 중위와 같은 부대에 있던 장병 500여명도 부정투표 사실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일은 이 상임이사에게 가슴 아픈 사건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현역 군인들의 부정투표 증언이 이어졌고, 결국 국방부도 이 중위의 폭로가 사실임을 인정했다.

이 중위의 폭로 이후 국회는 오지에 근무하는 일부 인원을 제외한 모든 장병들이 병영 밖에서 부재자투표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고쳤다. 그 결과 1992년 12월 대선에서는 52만7000여명의 장병들이 영외에서 투표를 진행할 수 있었다. 군 장병의 영외투표 원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의 내부고발이 이어졌다. 이지문 상임이사는 “지난 20년간 공익제보의 분야가 꾸준히 넓어졌다”면서 “건강·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한미군의 포름알데히드 무단방류, 인천공항 부실시공 등이 내부자들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사학재단이나 민간기업 내부의 비리와 탈세 문제도 내부고발의 영역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2003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이 에이즈·말라리아 등에 감염된 혈액들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들은 적십자사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통해 혈액관리 실태를 개선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언론에 혈액관리 실태를 제보했다.

1990년 10월 4일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내용을 폭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적십자사는 내부고발자들의 제보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제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보건복지부 산하에 혈액관리 전담부서가 신설되는 등 보다 안전한 혈액관리가 가능하게 됐다. 이 사건은 2000년대의 성공적인 내부고발 사건으로 꼽힌다.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도 대표적인 내부고발 사례다. 도가니 사건은 8명의 교직원·교사가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력해 대중의 공분을 산 사건이다.

2005년 광주인화학교 교사 전응섭씨는 한 학부모로부터 “딸의 친구가 행정실장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이 사실을 성폭력상담소에 신고했다. 이후 언론 보도 과정에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고, 소설가 공지영씨가 이 사건을 다룬 <도가니>를 출판하면서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이 강화됐다.

‘도가니 사건’ 이후 성폭력 처벌 강화
20여년을 이어온 내부고발의 역사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지문 상임이사는 의외로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는 “성공적인 내부고발이 되기 위해선 내부고발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내부고발한 내용이 진실규명으로 이어져 이에 합당한 처분이 이뤄져야 한다”며 “사실 성공적인 내부고발은 겨우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내부고발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밝아져서 내부고발이 줄어들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나 최근 국정원, 군의 선거개입 문제 등이 계속 터져나오는데 그만큼 내부자의 제보가 없어서 답답한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장정욱 시민감시팀장은 특히 대기업을 상대로 한 내부고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장 팀장은 LG전자의 내부비리를 폭로한 정국정씨의 사례를 들었다. 정씨는 1996년 본사가 하청업체에서 부품을 5배 이상 비싼 값에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팀에 알렸고,

감사팀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정씨는 인사고과에서 연이어 불이익을 받은 끝에 해고됐다. 정씨는 해고 무효소송 1·2심에서 승소했지만 전직 대법관이 사측 변호사로 나선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졌다.

역대 최대의 내부고발 사건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사건 역시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보긴 어렵다. 삼성그룹 구조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 변호사의 폭로는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승계과정의 적법성을 따지는 특검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수사 결과 이건희 회장에게 부과된 벌금은 1100억원에 불과했고, 오히려 삼성그룹의 승계과정은 법적 면죄부를 받았다. 반면 김 변호사 본인은 폭로 이후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없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