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월플라워 - 소셜믹스도 잘해야 사회갈등 치유된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유쾌한 아이와 침울한 아이,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 형편과 수준에 맞게 분리해 가르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서로 섞여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나을까.

“불량품들의 섬에 온 걸 환영해.” 샘(엠마 왓슨 분)이 ‘월플라워’ 찰리(로건 레먼 분)에게 손을 내민다. 월플라워란 파티 때 춤출 파트너가 없어 벽에 서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모임에 잘 끼지 못하는 ‘부적응자’다. 샘은 자신들도 불량품이라며 찰리에게 손을 내민다. 구분 짓기보다 함께 놀기를 택한 것이다.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영화 <월플라워>(2012)는 미국 고교생들의 성장통을 담은 영화다. 60년 전 영화 <이유없는 반항>과 닮은 구석이 많다. 다만 1950년대 제임스 딘과 친구들이 자신들을 소외시키는 부모와 사회에 저항했다면, <월플라워>는 어른들의 잘못된 욕구에 상처입은 아이들의 방황을 담는다는 점에서 시선은 많이 다르다.

고교생이 된 찰리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다. 자신을 사랑해주던 이모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고 친구 만들기를 꺼려한다. 고교생이 되던 날, 배다른 남매인 샘과 패트릭이 찰리 앞에 나타난다. 마냥 밝아 보이던 두 사람. 하지만 이들에게도 아픔이 있다. 샘은 10대에 아빠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패트릭은 동성애자다. 패트릭은 자신의 연인을 세상에 밝힐 수 없다. 아이들에게도 대학입시는 다가온다. 이들이 나눈 추억은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패트릭과 샘은 ‘월플라워’인 찰리에게 손을 내민다. 감동한 찰리가 말한다, “나를 봐주는 사람이 있을지 몰랐어.” 패트릭이 답한다. “우리도 괜찮은 친구가 숨어 있는 줄 몰랐어.”

상황이 다른 계층의 사람을 섞는 것을 소셜믹스(Social Mix)라고 부른다. 정부가 사회 안정 정책의 일환으로 공공주택 분양 시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섞으면서 부각된 단어다. 사회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저소득층과 중산층, 혹은 고소득층을 따로 분리하지 말고 한데 섞여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저소득층만 모여 사는 곳은 슬럼가로 몰락해 사회 불안요소가 되는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제임스 실크 버킹엄은 빅토리아 모델타운을 제안했다. 이 타운은 가로·세로 1.6㎞ 정사각형 부지에 직업과 소득수준이 다양한 주민 1만명이 모여 살도록 했다. 사회계층간 반목이 심한 영국 사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조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공공주택을 분양하면서 소셜믹스 개념을 본격 도입했다. 사회계층간 갈등 치유와 함께 개발이익을 저소득층에게 분배한다는 의미까지 포함됐다.

하지만 무작정 섞는다고 사회갈등이 치유되지는 않았다. 같이 사는 공간 내에서 두 계층간 갈등이 노골적으로 불거질 수도 있다. 한 아파트 단지에 2개의 입주민대표자회가 운영되는 사례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행복주택은 과거보다 소셜믹스 개념이 약화됐다. 정부는 목동·잠실 등 부촌에 짓는 행복주택에는 신혼부부,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이 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저소득층, 노령층 등은 외곽의 행복주택이나 임대주택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금융 소셜믹스’도 있다. 정부와 금융권, 민간단체가 협조해 서민상품을 만들고, 재원을 투입해 서민층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이다. 우리은행의 희망플러스통장은 가입자가 일정 금액을 저금하면 서울시와 민간이 그 액수만큼 돈을 추가로 적립해준다. ‘우리아이미래보장보험’은 KDB생명이 저렴한 보험료를 책정하고 지자체가 납입해 저소득층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돕는다.

영화 속 경제

샘이 찰리의 차에 올라타 터널에서 두 손을 활짝 벌린다. 이때 울려퍼지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Heroes’는 참 멋지다. 무한한 자유, 그 자체다. <월플라워>가 남긴 명장면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