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파라노만 - 예상치 못한 혼란 ‘트리플 위칭데이’

유령이 눈에 보인다면? 그래서 오래 전에 내 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을 볼 수 있다면 행운일까 불행일까?

소년 노만의 눈에는 유령이 보인다.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는 집 소파에 앉아서 노만과 함께 TV를 본다. 노만은 기괴한 장난감들을 많이 갖고 있다. 호러를 즐기는 독특한 취미다. 아버지는 아들 노만이 걱정스럽다.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아들은 어디에서든 튄다.

크리스 버틀러와 샘 펠이 공동감독한 <파라노만>(2012)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물체를 1인치씩 옮기고 다시 촬영하고 표정을 살짝 바꾸어 다시 촬영하는 것을 반복해 마치 물체가 살아 움직이는 효과를 내도록 하는 영화 촬영기법이다. 2000년대 초 큰 인기를 끌었던 진흙 애니메이션인 <윌레스와 그로밋>이 대표적인 스톱모션 애니매이션이다.

장르로 보자면 호러다. 애니메이션으로는 독특한 영역이다. 때때로 오싹하기까지 하다. 호러영화의 오마주도 있다. 노만의 친구 닐은 영화 ‘13일의 금요일’에 나오는 제이슨 가면을 하키 가면으로 쓰고 나온다. 영화 ‘할로윈’ 테마곡은 핸드폰 벨소리로 쓰였다.

유령을 볼 수 있는 것은 노만뿐 아니다. 노만의 할아버지도 유령을 본다. 그러니까 집안 내력이다. 돌연사해 유령이 된 할아버지는 노만을 찾아와 “마녀로부터 마을을 구하라”고 부탁한다. 마을은 마녀에 대한 전설이 있다. 사람들은 마녀의 전설을 즐긴다. 하지만 마녀의 저주를 풀지 못하면 좀비들이 깨어나 마을을 진짜로 공격할 수 있다. 노만은 마을을 구할 수 있을까.

마녀는 심술궂은 마법으로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존재다. 빗자루를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금융에도 ‘마녀’가 있다. 마녀의 날, 즉 ‘위칭데이’다. 위칭데이란 주식시장 파생상품의 만기가 겹치는 날을 일컫는 용어다.

세 명의 마녀가 돌아다니는 날은 ‘트리플 위칭데이’, 네 명이 나다니면 ‘쿼드러플 위칭데이’다. 세 명의 마녀는 주가선물지수, 주가지수옵션, 개별주식옵션 등이다. 이들의 만기는 3개월마다 겹치는데 이때는 주식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파생상품들은 주식과 연계해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만기일이 닥치면 차익거래를 위해 임시로 사들였던 주식들을 증권시장에 쏟아내는데 이때 주가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세 명의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동시에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혼란스럽다’는 뜻에서 세 마녀의 날, 즉 트리플 위칭데이라 부른다.

여기에 개별주식선물이 더해지면 쿼드러플 위칭데이, 즉 네 마녀의 날이 된다. 개별주식선물은 미국에서는 2002년말부터, 우리나라는 2008년 5월부터 거래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선물옵션 만기일이 세 번째 금요일이어서 3·6·9·12월 셋째 주 금요일이 쿼드러플 위칭데이다. 우리나라는 3·6·9·12월 두 번째 목요일이다.

알고보니 마녀는 노만 또래의 10대 소녀였다. 그녀는 200여년 전 유령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마을사람들에게 화형을 당했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두려웠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꼬마소녀를 마녀로 몰아죽였다. 대중의 공포는 때로 이성과 지성을 마비시킨다.

영화 속 경제

2010년 11월 11일 마녀의 날은 한국 증시를 뒤흔들었다. 이른바 ‘도이치 쇼크’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날 주식시장 마감 10분을 앞두고 도이치증권을 통해 2조40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한 번에 팔아치웠다. 코스피지수는 순식간에 53포인트가 떨어졌다. 주가가 하락하면 이익을 얻는 풋옵션을 걸었던 도이치증권과 도이치은행은 450억원의 차익을 얻었고, 국내 개인투자자와 기관은 14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1년 뒤 검찰은 주가조작 혐의로 도이치은행 직원들을 불구속 기소하고 부당이득을 전액환수했다. 이후 국내 증시는 마녀의 날이 다가올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