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박근혜 정부, 시민사회 소통 비전 없다

정권 출범 초기 시민사회와의 관계설정은 문민정부 이래 초미의 관심사다. MB정부가 출범 6개월 만에 이른바 ‘촛불시위’로 위기에 빠진 것도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막 출범할 박근혜정부는 과연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또 진보정권 10년, 제5의 권력기관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시민단체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어떤 위상을 갖게 될까. 이제 시작될 박근혜 정부 5년과 시민사회의 관계를 전망해보았다.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시민사회에서는 수많은 상충하는 요구들이 나올 수 있다. 이를 조정하는 것이 시민사회 파트너십의 중요한 기능이다. 사진은 지난 2월 14일 인수위 앞에서 벌어진 동물권 단체들의 퍼포먼스. | 이상훈 기자

“솔직히 우려된다. 선거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는 ‘시민사회’라는 말을 백번 넘게 썼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은 내가 아는 한 12월 중순까지 ‘시민사회’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당선인의 생각이 그렇다 보니 ‘사회통합수석실’을 청와대에서 없앤다는 거 아니냐.”

한 보수인사의 말이다. 곧 출범하게 될 박근혜 정부가 시민사회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진보 시민단체뿐 아니다. 보수 시민단체 쪽에서도 공히 나오는 우려다. YS정부 이래, 보수든 진보든 정권 출범 시기에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 MB정부만 하더라도 인수위원회에서 정부혁신 규제개혁팀장을 맡았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경실련 정책위원장 출신이고, 17대 인수위 당시 경제1분과 위원을 했던 백용호 정책실장은 경실련 국제위원회 위원장과 상임집행위원으로 사회활동의 경력을 시작했었다.

인수위 보수시민단체 바른사회 출신 두각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일단 인수위에 결합해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보수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이하 바른사회)와 관련 있는 인사들이 눈에 띈다. 인수위 총괄간사 겸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를 맡고 있는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는 바른사회 산하 바른행정본부장을 맡았었다. 정무분과 간사를 맡고 있는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박 당선인의 최측근이면서 국회의원으로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는 안종범·강석훈 의원도 바른사회의 운영위원을 맡았었다. 원조 보수 시민단체로 거론되는 바른사회는 경실련으로부터 분화해 나온 단체로 평가된다. 보수정권 5년이 지나고 본격적인 보수 시민사회 전성시대가 오는 걸까.

지난해 12월 31일 보수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한국시민단체협의회는 ‘박근혜 당선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성명에서 이들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시민단체를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삼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며 “우파 시민사회가 취약하면 정부가 적극 육성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파 시민사회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노무현 정권 때보다 더 악화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 이유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시민운동이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훨씬 못한 평가를 받는 이유도 이명박 정권을 대변하는 세력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우파 시민사회를 강력하게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에는 인수위에 참여한 박효종 교수의 이름도 들어가 있다.

하지만 박 교수가 우파 시민사회와의 소통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앞의 보수인사의 말이다. “지난 정권 초기, 청와대에 들어가서 박재완 수석을 만났다. 당시 박 수석이 맡은 게 현재 박효종 교수가 담당하고 있는 정무였다. 박 수석을 만나러 가서 보니, 책상 앞에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있더라. ‘뭐 하냐’고 물어보니 논문 쓰고 있다고 하더라. ‘정무’라는 게 하는 일이 그런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회관에 가서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실에 들어가서 ‘형님 술 한 잔 합시다’ 이러면서 막후에서 조율하는 역할이다. 말하자면 일을 안 한 것이다. 박효종 교수를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안다. 한때 가톨릭 신부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 그런 일을 과연 잘할 수 있을까.”

MB정부가 시민사회와 소통하려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 ‘촛불시위’를 불러왔다는 것은 진보·보수를 떠나 보편적 인식이다. MB정부 초기에는 참여정부에서 있었던 시민사회수석을 없애고 그 역할을 특임장관과 정무수석에게 맡겼다. 촛불을 겪고 난 다음에야 사회통합수석실 아래에 시민사회비서관 직제를 부활시켰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도 과거 MB정부와 똑같은 ‘시행착오’의 길을 걷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까지 인수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청와대 직제개편안을 보면 사회통합수석을 폐지할 뿐 아니라 특임이나 정무수석까지 폐지하는 것이 거론되고 있다. 말하자면 소통채널을 MB정부 초기보다 더 닫아버리겠다는 계획이다. NGO 연구자인 박상필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최근 들어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ODA(해외개발원조), 국제협력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 시니어교육 등을 포괄하려면 오히려 그 중요성은 더 커지는데 거꾸로 전담인력을 없앤다고 하니 답답하기만 하고, 이러다 또 큰 문제에 부닥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인수위 쪽에서는 청와대에 시민사회 전담부서를 없애는 대신, 국무총리실 산하에 시민사회비서관을 만드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통부재가 불러온 MB정부 촛불시위
“그런데 꼭 정권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시민사회 내부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전진한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의 말이다. 전 소장은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의 출마 이후로 시민운동 인사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이동하면서 시민사회에 큰 구멍이 생겼다고 부연했다. 지난 대선은 시민사회의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안철수와 문재인이라는 진보개혁 성향의 두 후보가 나오면서 시민사회의 자원 대부분을 휩쓸어갔다. 지난 1월 초 국회에서 열린 좋은정책포럼 토론회에 참석한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전 소장)는 “우연히도 나는 안식년으로 해외에 나가 있었기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그 바람에 휩쓸려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총장은 “지난 대선 때 경실련 임원들의 거의 전부가 양 캠프로부터 선거 참여 삼고초려 요청을 받았다. 거절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 위기’ 담론이 나온 것은 참여정부 초기였다. 시민운동의 부상과 더불어 ‘백화점식 시민운동’이나 ‘시민 없는 시민운동’과 같은 우려가 쏟아져나왔다. 세대갈등은 시민사회 내에도 존재한다. ‘시민정치’를 주장하며 정치권으로 존재를 이월한 ‘486시민운동 선배’들에 이어 시민사회를 떠맡게 된 이후 세대들로부터 비판은 쏟아져나온다.

주요 운동단체의 시민사회운동이 침체되는 한편, 새로운 형태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진은 지난 1월 현대차 비정규직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울산 철탑으로 향하는 희망버스에 탑승한 사람들. | 홍도은 기자

시민사회는 이제 위기를 넘어 고사(枯死)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만으로 10년차 중앙단체에서 상근자로 일하다 최근 지방으로 옮겨 풀뿌리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힌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참여정부에서 보수정부인 MB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단체 재정은 쪼그라들었는데, 더 큰 문제는 리더십을 발휘할 만한 사람들이 정치로 훅 빠져버리면서 시민사회가 일종의 진공상태가 돼버린 셈이다. 486선배들이 정치로 진출하면서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그 뒷세대로 교체되었는데, 아무런 자원도 남지 않은 그 사람들에게 능력을 강조하고, 각자도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그는 자신이 그만두기 직전 시민사회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망을 찾기 어려운 것은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몇몇 선배들이 정치권으로 가면서 다른 일을 찾으면 그런 이야기가 스멀스멀 나온다. 너는 국회의원도 못할 거면서, 아니면 국회 보좌관이라도 안 할 거라면 그동안 왜 그 일을 했니라는 식의. 그럴 때면 정말 그동안의 활동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덧붙였다. “지역에 와서 보니 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중앙만 보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각 단체의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세대가 40세 전후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으로 나간 인사들이 40세 전후에 단체에서 차지했던 위상을 떠올린다면 확실히 다르다. 그런데 그걸 지금 일을 떠맡은 후배 책임만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일까.”

시민사회, 시민자신의 참여로 바뀌어야
반면 중앙의 큰 단체를 중심으로 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풀뿌리운동은 어차피 중앙과 무관하다. 정권보다 오히려 자치단체장이 누구냐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오히려 풀뿌리의 시각에서는 시민사회가 더 발전된 측면도 있다.” 하승창 싱크카페 대표는 “중앙의 전업적 시민운동이 침체된 것은 사실이지만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시민사회 범위가 오히려 넓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업운동을 하지 않는 대신 생계와 운동을 일치시키려는 새로운 운동 유형이나 다른 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에 운동을 하는 등 다른 형태의 운동이 확산되고 있고, 과거 단체 중심으로 벌어지던 운동이 1인 시민운동, 인디활동가들의 네트워크 형태로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정권 출범 6개월 만에 벌어진 ‘촛불시위’는 이명박 정부가 시민사회와 소통을 등한시한 결과라는 것이 보수·진보 시민사회 인사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사진은 지난 2008년 5월,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침묵시위. | 김영민 기자

결국 박근혜 정부와 시민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을까. 현재까지의 모습으로 볼 때 박근혜 정부가 진보든 보수든 시민사회 파트너십 구축을 중요시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를 견제할 만한 시민사회 리더십도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보수단체 연대체인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의 임헌조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시민사회 정책이나 마인드를 보면 시민사회가 더 위축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럴수록 박근혜 정부의 성공은 어려워진다”며 “(박근혜 정부가) 선진국일수록 거버넌스 차원에서 시민사회를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승창 대표는 “기존 단체, 즉 참여연대·경실련 등을 중심에 두고 박근혜 정부와 관계설정만 생각한다면 헛발질일 수 있다”며 “지난해 ‘희망버스’ 사례에서 보여지듯 오히려 다양한 경로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총장은 “경실련을 비롯해 한국의 시민운동 역사를 보면 이미 30∼40년의 연륜이 쌓여 제도화했다고 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시민사회가 위축되는 경향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시민사회가 초심으로 돌아가 각 부문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쌓고 제 역할을 한다면 시민사회의 재활성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이형용 거버넌스21 상임이사는 “그동안 주류 시민단체가 주도해온 한국의 시민사회는 주도하는 사람들의 헌신성과 능력이 강조되어 왔는데, 역설적으로 과거의 그런 모습이 일반시민 참여에 걸림돌이 된 측면이 있다”며 “앞으로 시민사회는 말 그대로 시민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모습으로 바뀔 것이며, 박근혜 정부가 그런 시민의 자발적 흐름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관계가 결정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