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MB정부에서 ‘투사’가 된 사람들

대통령이 바뀐다고 우리 삶이 달라질까. 정치는 우리네 일상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지난 5년 이명박 대통령으로 인해 삶이 바뀐 사람들이 있다. 평범한 이들 생활인의 소박한 일상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잘못된 정책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강단에 섰던 학자는 현장을 누비는 투사가 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5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또는 누군가를 대신하여 맞서 싸웠다.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자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는 여전히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서울중앙지법은 민간인 불법사찰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관련자 5명에게 모두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구체적인 증언 내용 등 재판 기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재판 기록 열람을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인 김 전 대표뿐이었다. 재판 기록은 14만쪽에 달했다. 재판 기록을 복사하는 데만 3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4월 3일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불법사찰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사찰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진술 내용을 통해 민간인 불법사찰 내용을 이명박 대통령이 보고받았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을 ‘비선’으로 지휘했던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수시로 ‘독대’ 보고를 했다는 내용이다. 불법사찰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김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가 없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하더라도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정운영 책임자가 여기에 책임을 느끼고 이런 일을 다시는 발생시키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차기 정권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을 철저히 재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수사가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부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의혹도 가지고 있다. 김 전 대표는 “검찰이 청와대도 압수수색하지 하고, 겨우 껴맞춰서 수사하는 것 같다”며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는 새로운 정부에서 다시 제대로 수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본인도 불법사찰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하지만, 김 전 대표는 박 전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불법사찰의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간인 불법사찰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당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김 전 대표를 ‘노사모’ ‘좌파 단체에서 활동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는 “마치 내가 사찰을 당해 마땅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며 “지금은 김무성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총괄선거대책본부장 직책을 맡고 있지 않나.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 끔찍하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박사와 종종 상담 시간을 갖는다. 불법사찰 당시의 기억이 여전히 고통스럽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텔레비전 뉴스를 거의 보지 못한다. 그는 “뉴스에서 보도되는 몰상식한 일들, 권력이나 자본에 계속 개인이 파괴되어 가는 것들을 보는 게 너무 힘이 든다”며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차라리 전두환 시절에는 그나마 권력이 여론을 두려워했던 것 같은데 이명박 정권은 아예 그런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부를 잇는 정권이 국민들에 의해 선택이 된다면 너무 끔찍하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힘이 든다”고 말했다.

2월 23일 용산참사 구속 철거민 사면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3·1절 특사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이상훈 기자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 이원호 사무국장
10월 26일 공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용산참사 철거민 김모씨가 가석방됐다. 전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또 다른 철거민 김모씨도 같은 날 가석방됐다. 하지만 아직 6명의 철거민들이 감옥에 수감돼 있다. 가석방된 김모씨도 4년 형기 중 3년 9개월을 마친 상태였다.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수감된 철거민들의 상당수가 이미 법적으로 가석방 대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종교계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철거민들의 사면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 국장은 “이 정도 사회적 분위기라면 진작에 철거민들이 사면이 됐어야 하는 게 정상”이라며 “하지만 청와대 쪽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월에 가석방된 두 사람도 모범수 생활로 일찌감치 가석방 대상자로 명단에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며 “그러나 3·1절, 광복절 등 사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무부가 탈락시켰다”고 말했다. 미뤄지던 가석방이 형기를 3개월 남겨둔 지난 10월 26일(교정의 날)에야 이뤄진 것이다.

이 국장은 용산참사의 진상규명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범대위는 대한문 앞 ‘함께 살자’ 농성촌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이 국장은 “잘못된 개발정책, 무리한 진압작전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참사의 책임은 철거민들만 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당시 무리한 진압작전의 명령권자가 누구인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무리한 진압작전의 직접 책임자라고 볼 수 있는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는 법정진술 한 번 하지 않고 서면진술로 조사가 끝난 상태다. 지난 9월에 국회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 청문회에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쌍용차 진압작전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국장은 용산참사 진압작전도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 선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당시 용산재개발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인 뉴타운 도시광역개발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었다”며 “당시 대통령이든 청와대 차원에서든 명령이나 지휘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부분에 대해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차기 정부가 반드시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용산참사 범대위에서는 유력 대통령 후보들에게 용산참사와 관련한 질의서를 보냈다. 아직 수감된 철거민들 사면과 용산참사 진상규명에 관한 질의였다. 그는 “사면에 대해서 박근혜 후보는 ‘검토를 고려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후보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 진상규명 건에 대해 박 후보는 소극적으로, 문 후보는 좀 더 적극적인 의견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두 후보의 답변이 약간의 온도 차이가 있지만, 이 국장은 두 후보 모두 용산참사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박 후보, 문 후보 모두 용산참사의 현장을 한 번도 찾지 않았고 유가족들도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후보 모두 용산참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이 국장은 “최근 문 후보가 인권선언을 이야기하면서 ‘용산참사’에 대해 잠깐 언급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사건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용산참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새로운 정부에서 용산참사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개봉한 용산참사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은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이 국장은 “2009년 참사 당시에도 시민들 반응에서 느꼈지만 용산참사에 대해 사회적으로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것이 있다”며 “대부분 개발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용산참사에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
지난 6월 20일 한국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 견해를 밝혀온 관동대 박창근 교수를 경찰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낙동강 함안보의 균열 위험성에 대한 박 교수의 지적이 허위사실이라는 게 수공의 입장이다. 11월 20일 국토해양부도 박 교수를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박 교수는 칠곡보 수중찰영 결과 파이핑 현상으로 인해 보의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파이핑 현상이 발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정부기관이 토론을 통해 진위를 가리기보다 고소·고발을 한 것에 대해 “(나의 지적이) 그만큼 아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4대강 현장조사에 나선 관동대 박창근 교수 | 서성일 기자

4대강 공사가 강행되는 지난 5년 동안 박 교수는 끊임 없이 공사현장을 찾았다. 그는 “국토부 공무원들이 현장에 가면 담당자가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공사현장을 불시에 찾아가 방해도 많이 받고 때로는 위협도 받았다. 용역들이 시비 걸고 욕하며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길을 막고 박 교수를 들어내기도 했다. 배를 타고 공사현장을 점검할 때는 용역들이 배를 침몰시킬 듯이 몰아붙인 적도 많았다.

그는 4대강 공사가 가뭄이나 홍수를 막지도 못하고, 녹조현상이나 물고기 떼죽음과 같은 환경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정부에서 4대강 공사로 유일하게 자랑하는 것이 자전거 도로 아니냐”며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제대로 된 평가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객관적 평가를 한 이후에 보를 철거하는 문제까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를 건설할 때 든 매몰비용보다 보를 유지·관리하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면 철거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절차를 밟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포퓰리즘 방식으로 엉터리 사업이니까 철거하자고 하면 이 또한 우리 사회가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며 “공학적 평가, 경제적 평가, 환경적 평가, 사회적 평가 등을 통해 토론의 장을 만든 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4대강 재자연화’의 목소리가 높지만, 차기 정권에서도 ‘4대강’을 원상태로 되돌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