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문·안 단일화]文의 ‘큰 형님론’ vs 安의 ‘새정치론’ 전쟁

안 후보 포용 ‘통큰 형님’ 연출하는 文, ‘헌 정치 대안’ 강조하는 安… 어느 쪽이 먹힐까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간의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이 한 차례 격랑 속으로 휘말려들어간 가운데 문 후보와 안 후보의 프레임 전쟁이 눈길을 끌고 있다. 프레임 전쟁이란 두 후보 측에서 야권 단일화 협상정국에서 차별화된 구도를 짜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말한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행보를 살펴보면 안 후보가 대선 출마를 정식으로 선언한 지난 9월 19일 이후 두 후보 모두 일관된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 후보는 ‘형님’ 대 ‘아우’ 구도를 계속 만들고 있으며, 안 후보는 ‘새정치’ 대 ‘헌정치’ 프레임을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전태일 열사 42주기인 11월 13일 서울 창신동 전태일재단을 방문한 뒤 청계천 전태일다리로 도보로 이동하던 중 포장마차에 들러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통큰 자세’ 부각 전략 지지도 상승
우선 문재인 후보 측의 전략을 보면 문 후보는 ‘통큰 형님’의 이미지를 연출하며, ‘아우’인 안 후보를 끝까지 너그럽게 포용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문 후보는 시종일관 ‘양보’ ‘사과’ 등의 용어를 쏟아내며 안 후보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일화 협상 중단사태와 관련해서도 문 후보는 “혹여라도 우리 캠프 사람들이 뭔가 저쪽에 부담을 주거나 자극하거나 불편하게 한 일들이 있었다면 제가 대신해서 (안철수 후보에게) 사과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문 후보는 안 후보를 ‘똑똑한 아우’로 치켜세우고 있다. 문 후보는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안철수 후보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대세론을 무너뜨렸고, 정치에 무관심했던 무당파와 중간층을 함께 정치무대로 끌어들이는 등 이미 한국 정치에 큰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문 후보는 안 후보 측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문 후보가 양보할 수 없는 단일화 전쟁에서 통큰 자세를 부각시키는 것은 국민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안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 논의과정에서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과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실제로 문 후보는 한때 호남에서의 일방적 열세를 따라잡는 등 야권 단일화 후보 지지도와 적합도에서 안 후보와 대등한 관계에 올라왔다. 최근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도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야권 지지층이 문재인 후보가 야권후보 단일화를 먼저 제안했고, 이를 안철수 후보가 응해서 단일화 협상이 성사됐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여론조사 전에 실시되는 안 후보와의 TV토론에서도 이 같은 전략을 유지할 예정이다. 문재인 캠프의 한 관계자는 “안철수 후보가 어떤 주장을 하든 문재인 후보는 포용하고 양보한다는 말을 할 것”이라며 “다만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 측의 제안에 보완할 수 있는 점들을 추가해서 함께 발전시켜보자고 동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문 후보는 안 후보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국정경험이 많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킬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와 함께 문 후보 측은 민주당 조직을 총동원, 지지자 배가운동을 벌이는 등 정당 후보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정치컨설팅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문재인 후보가 야권후보 단일화 선언 이후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것은 문 후보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봐야 한다”며 “야권 지지층에서 안철수 후보의 ‘타이밍 정치’에 식상해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11월 12일 부산 장전동 부산대학교 경암체육관에서 ‘과거에서 미래로 갑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이에 비해 안 후보는 출마선언 이후 지금까지 정치개혁을 외치며 ‘새정치’를 주장하고 있다. 즉 안철수식 ‘새정치’만이 기존의 낡은 정치(‘헌정치’) 테두리에 갇혀 있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실 안 후보가 대선에 출마한 명분도 국민이 동의하는 정치쇄신이다. 안 후보가 ‘새정치론’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안철수 현상’의 결과물이 ‘새정치’의 실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야권 단일화 협상 파행이후 다시 재개하는 조건으로 민주당의 혁신을 요구했다. 안 후보는 문 후보에게 “국민이 요구하고 민주당 내부에서 이미 제기되고 있는 당 혁신 과제를 즉각 실천에 옮겨달라”고 촉구했다.

‘새정치공동선언’ 강조 시간끌기 주효할 듯
안 후보 측은 정치권에서 ‘새정치’를 함께 실현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민주당을 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의지가 없고, 다만 민주당은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안 후보 측은 야권후보 단일화 그 자체보다는 양측이 곧 발표할 ‘새정치 공동선언문’을 더 신경쓰고 있다. ‘새정치 선언문’에는 총리의 헌법상 인사제청권 보장, 대통령의 고위직 임명권 축소, 비례대표 확대, 중앙당 기능 축소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안 캠프 관계자는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해야지만, 단일화도 정치쇄신이라는 큰 틀에서 해야 한다”며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새정치 선언’이 전제이며, ‘새정치 선언’은 국민의 요구에 화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안 후보 측은 야권 단일후보로 안 후보가 돼야 본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안 후보도 “후보 단일화에 대한 분명한 원칙은 ‘국민이 이기는 단일화’”라며 “단일화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고 국민이 이기는, 상식이 이기는, 미래를 이기는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안 후보 측에서는 표의 확장성 측면에서 문 후보보다 안 후보가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안 후보로 단일화되면 진보성향의 문 후보 지지층은 안 후보에게로 올 수밖에 없지만, 중도·무당파 성향의 안 후보 지지층은 문 후보로 단일화되면 일사불란하게 문 후보로 갈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안 후보 측은 문 후보로 단일화되면 박근혜 후보와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이유는 투표율 때문이다. 안 후보 측은 안 후보로 단일화되면 20대 투표율이 40% 이상 되겠지만 문 후보로 단일화되면 30%대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럴 경우 50만표 내외의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여야 대선후보 싸움에서 야권 단일후보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안 후보 측에서는 선거비용 마련을 위한 ‘안철수 펀드’ 판매에 사활을 걸고 있다. 펀드 판매를 통해 선거비용 마련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안철수 바람’의 핵심 역할을 할 지지층의 결집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 가입자들은 이름, 계좌번호, 전화번호 등을 공개하면서 가입할 만큼 충성도가 높은 지지자들이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철수 후보 측에서 ‘새정치 공동선언’을 강조하면서 시간을 끄는 전략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며 “결국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여론조사 방법론도 막판에 시간에 쫓겨 안 후보 측이 원하는 대로 합의해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