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퇴직 남편·미취업 자녀 대신 ‘일하는 50대여성’ 는다

일자리를 구하러 나서는 50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살림을 꾸리기 위한 보조적 수입원에 그치지 않고 주수입원으로 바뀌는 가정도 늘고 있다. 가정 내에서 경제활동을 맡는 역할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고 청년층의 실업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버지와 자녀를 대신해 경제활동에 나서는 어머니들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 사이 5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평균치는 59.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52.6%에서 2007년 55.7%로, 2011년엔 58.7%를 기록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올해 8월까지의 50대 여성 중 경제활동인구 평균치는 217만명으로 2007년 163만명에 비해 약 33% 증가했다. 해마다 50대 여성 경제활동인구가 약 11만명씩 늘어난 셈이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져 한국고용정보원은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서 2020년 50~5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7.3%, 55~59세 여성은 57.4%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50대 여성 중 경제활동인구도 2020년엔 265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한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취업박람회에서 여성 구직자들이 구인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연령대별 경제활동 증가세 가장 높아
여성 경제활동인구 중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도 50대 여성의 증가는 유독 두드러진다. 30대 여성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율이 2007년 56.3%에서 2011년 55.5%로 감소했고, 40대 여성의 경우 2007년 65.8%에서 2011년 66.2%로 0.4%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성별 비교에서도 50대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7년 86.7%에서 2011년 87.5%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쳐 50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세가 가장 가파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베이비붐 세대 남성들의 퇴직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남성 노동자들의 정년퇴직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사업장의 70% 이상인 단일정년제 채택 사업장의 평균 정년은 57.4세로 1955년생이 올해 정년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규정상의 정년이 아닌 실제 체감 정년 연령은 53세 안팎이라는 점에서 최근 5년 사이에 퇴직자가 꾸준히 늘어왔으며, 이 추세가 올해를 시발점으로 더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화되면서 퇴직 연령대인 55세 이상 인구는 2010년 476만명에서 63%나 증가해 2020년이면 773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50대 여성들이 남편의 은퇴에 대비하는 등 가정의 경제적 형편 때문에 노동시장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면서 “당장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하러 나서고는 있지만 중·고령층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자리의 질을 볼 때 소득·소비수준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중·고령층 여성의 평균임금이 가계의 주수입원을 대신하기엔 부족할 정도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의 올해 3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0~54세 여성 노동자의 72.6%, 55~59세 여성 노동자의 77.5%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임금총액 기준으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35% 수준에 불과하다. 2011년 여성가족패널조사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 가운데에서도 30대 이하 연령대의 평균임금이 145만원, 40대는 131만원선인 데 비해 50대의 평균임금은 109만원에 불과해 연령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희 교수는 “같은 세대의 여성 노동자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금수준이 더 낮아지는 악순환을 맞을 우려가 있고, 가사도우미나 간병인과 같이 개인적인 대면으로 노동계약이 이뤄지는 일자리의 경우 최저임금도 보장받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 남편 은퇴가 주원인
50대 여성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일자리가 저임금·비숙련 노동 위주인 현실은 여성 노동자가 불가피하게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경력단절 문제와 관련돼 있다. 50대 여성의 경우 낮은 학력과 함께 직업훈련이 미비하다는 점 때문에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이 경력단절의 주된 이유였다. 20·30대 여성이 출산과 육아 문제로 직장 경력을 도중에 중단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김종숙 연구위원은 “50대 여성들의 일자리는 경기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 음식·숙박업 등의 서비스 업종이나 도소매업에 집중돼 있다. 영세한 사업장에서 일용직·임시직으로 고용되기 때문에 고용 안정성이 낮아 한 직종의 경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50대 이상 여성들은 30·40대에 비해 비교적 학력수준도 낮기 때문에 여성 노동시장 안에서도 주변부 일자리로 밀려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경력단절의 임금손실 추정’ 보고서에서 이러한 경력단절 때문에 재취업 때 이전 직장에서의 임금에 비해 적게는 15%에서부터 많게는 27%까지 낮아진 임금을 받게 돼 상당한 임금손실을 겪는 것으로 추정했다.

애초에 사별이나 이혼 등의 이유로 남편이 없어 경제적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여성가장(가구주) 가구의 경우 저소득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201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가구조사를 보면 배우자가 없는 여성가장 가구가 전체 수급자 가구 중 10%를 차지했다. 배우자 없는 남성가장 가구는 2%인 점에 비하면 여성가장 가구의 빈곤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가구주 성별 빈곤가구 분석자료에서도 남성가장 가구 중 빈곤가구 비율은 7%인 반면 여성가장 가구 중 빈곤가구의 비율은 21%로 나타나 여성가장이 겪는 저소득 문제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활동과 가사를 병행하는 만큼 50대 여성이 느끼는 스트레스도 심각했다. 여성가족패널조사 결과를 보면 50대 여성의 36.2%가 장시간의 노동 때문에 가정생활에 지장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35.1%가 가사노동이 과다해 직장생활에 지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를 반영하듯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심한 스트레스 반응 및 적응장애’에 대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50대 여성 10만명당 398명이 스트레스 문제로 진료를 받아 성별·연령별 집단 중 가장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