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수자다]자립생활 장애인 - 자주적 삶 찾아 시설 밖으로

탈시설 장애인들은 자립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세계’인 시설에서보다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1996년 장애인 시설 에바다복지회의 비리사건이 터졌다. 장애인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폭력을 휘두르고, 6억이 넘는 국고를 횡령한 비리시설이 적발된 것이다.

에바다 사태 이후 몇몇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벗어나 자립생활을 하자는 자립생활운동을 시작했다. 탈시설 장애인들은 자립생활을 하면서 ‘만들어진 세계’인 시설에서보다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영화 <도가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지체장애인인 김종훈 서울자립재활센터 사무국장(42)은 후천적 장애인이다. 2010년 국립재활원의 발표에 따르면, 전체 등록 장애인(약 214만명)의 대부분은 후천적 장애인이며, 그 중 34.4%가 김 사무국장처럼 사고로 인한 장애인이다.

활동보조인과 대등한 관계
김 사무국장은 대학생이던 지난 1998년 독일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도중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됐다. 김 사무국장은 “하반신 마비가 온 직후에는 다른 장애인들과 같이 다니는 것이 싫었다. 다시 비장애인이 되기 위해 2년간 재활치료를 열심히 했을 정도로 장애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애초 김 사무국장은 시설에서의 삶을 고민했다. 비장애인들의 시선도 없고,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도 갖춰져 있는 공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 운동에 투신하면서 만들어진 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장애인들에게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위험할 수 있는 권리, 실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장애인들이 신체조건이 불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에 격리시키는 것은 장애인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그는 사고 당시에 받은 보험금으로 얻은 아파트에서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으며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있어 활동보조인의 존재는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자립생활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겪었던 자원봉사자들보다 직업으로서 찾아오는 활동보조인과 더욱 대등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비장애인들도 이 일을 하면서 장애인과 소통하고,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인 한소영씨(20)는 “활동보조 일을 하면서 장애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전보다는 예민해졌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 당장 모든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장애인 활동가는 “비장애인 입장에서 사소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이 장애인들에게 필수적인 경우가 많다. 문턱, 경사로, 엘리베이터, 낮은 싱크대, 초인종 등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자립생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두 가지 유형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다. 이는 대부분의 장애인이 시설에 살고 있거나 살아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다. 탈시설 장애인들은 영화 <도가니>의 흥행 이후 장애인 시설에서의 인권문제가 사회적 공론의 장에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도가니대책위가 강조한 자립생활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시설에 대한 엄정한 관리, 범법 행위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강조됐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시설 여전히 부족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보는 두 번째 시선은 바로 ‘성공한 장애인’이다.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슈퍼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쓴다.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 다케를 비롯해 최초의 장애인 판사, 장애인 박사들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박건희씨는 “언론의 ‘슈퍼 장애인’ 보도는 어느 정도 정형화돼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 역경을 극복하고, 인간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립생활 장애인들은 이러한 시각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묻어 있다고 지적한다. 여전히 장애인들을 비장애인과 다른 독특한 존재라고 본다는 뜻이다. 조백기 도가니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고 인권을 가진 주체다. 장애인이 원하지 않는데 이들을 지역사회에서 분리하고 거부하는 것은 본질적 차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 사무국장도 “장애인 문제가 시혜적 차원의 복지문제가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힘들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자립생활 하는 박건희씨

박건희씨(28)는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시설에서 생활한 뒤에는 자립생활을 했다. 현재 박씨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며 고교 1년 후배와 함께 서울 송파구의 시영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박씨는 “자립생활을 하면 시설에서 살 때보다 물질적으로는 힘들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말하는 자립이란 무엇인가.
“자립이 단순히 자취생활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눈치보지 않고 활동보조인을 통해 식사하고 싶을 때 하고, 씻고 싶을 때 씻는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자립이다.”

시설에 살다가 자립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시설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나면 퇴소를 하거나 성인 시설로 옮겨야만 한다. 나는 대학 진학의 꿈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 합격 이후 자취를 했다. 다행히도 주위에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었고, 비장애인 친구와 함께 살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사회로 나오면 비장애인과 부딪힐 일도 많고, 장애인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 힘들지 않나.
“물질적으로는 훨씬 힘들다. 덜 먹고 더 아껴야 한다. 하지만 인격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시설에서는 반복적이고 통제받는 삶과 어느 정도의 강압이 존재한다. 시설에서는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없다.”

본인도 시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었나.
“그나마 내가 있던 시설은 시내와 가깝고, 원하면 외출도 할 수 있는 등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의사표현이 어려운 지적장애인의 경우 시설 내에서 인격적인 무시를 당하기 십상이고, 구타 경험을 가진 사람도 있다. 단체생활을 하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아도 개인적으로 해소할 공간과 시간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자립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나.
“시설에서 살 때는 그냥 인정하고 사는 부분이 많았다. 이를테면 가게에 가더라도 경사로가 없거나 입구가 좁은 곳은 굳이 가지 않았다. 자립을 한 이후에는 같은 일을 겪어도 주인에게 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비장애인의 자립이 당연히 여겨지는 데 비해,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특별하게 보는 시선도 있는 것 같다.
“맞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시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장애인이나 역경을 이겨낸 슈퍼 장애인이 주로 부각된다. 우리가 몸이 불편하고 안정적 직업을 갖기 어려워서 자립생활이 힘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이 아무리 어려워도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듯, 우리도 평범하게 일상을 사는 것뿐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