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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수자다]탈학교 청소년들 - ‘학생’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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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의 모든 활동은 대학 입시를 목표로 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쉽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루 평균 209명의 초·중·고교생이 학교를 떠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학업을 그만둔 초·중·고교생의 숫자는 7만6489명이다.

고등학생의 경우 2008년부터 학업중단자의 수가 꾸준히 늘어 2011년에는 3만8787명이 학교를 떠났다. 하루 평균 106명꼴이다.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처럼 ‘이름있는 대학교’ 학생들의 자퇴선언은 언론에서 보도되지만, 탈학교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언론의 각종 청소년 기획 시리즈에서도 비중이 크지 않았다.

탈학교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는 청소년들의 탈학교 원인을 크게 질병, 가사, 품행, 부적응, 기타로 나눈다.

‘대학 강요’에 반발감 생겨 자퇴
고등학교 2학년이던 3년 전 학교를 그만둔 ㅇ씨(여·20)의 탈학교 이유는 품행과 부적응 사이에 놓여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ㅇ씨는 대학 입시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ㅇ씨는 입학 때부터 시작된 선생님들의 ‘대학 강요’에 반발감을 가지고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보고 싶은 책을 읽었다. 그는 “어느 순간 전교의 선생님들에게 찍혀 있었다”고 말했다.

수업시간마다 반복된 교사들의 지적과 꾸지람에 지친 ㅇ씨는 1학기 중간고사 직전 학교를 떠났다. 그는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던 때를 떠올리며 “홀로 계시는 어머니 때문에 망설였지만 교문을 나서는 순간 홀가분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 몇몇 친구들은 내게 부럽다고 했다”고 말했다. ㅇ씨는 2009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현재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민다영씨(여·19)도 고등학교 2학년인 2010년 7월에 학교를 그만뒀다. 비평준화 지역에서도 상위권에 속한 고등학교를 다니던 민씨의 자퇴 사유는 ‘기타’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신념에 따른 학교 거부’다.

중학생 때부터 시험 성적이 좋았던 민씨는 스스로를 “학교 체계에 잘 적응했던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고등학생이 된 민씨는 학내 인권동아리에 가입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경쟁’에 대한 회의를 구체화할 수 있는 계기였다. “1교시부터 7교시까지 마치고 보충학습, 야간자율학습까지 학교에서의 모든 활동은 대학 입시를 목표로 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쉽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민씨는 학교를 나온 뒤 인권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청소년 인권활동가들과 어울리며 학생인권조례 제정촉구 운동에 나섰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 교육을 한 적도 있다. 두리반, 카페 마리 철거 현장도 목격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제적인 독립도 이뤘다.

다른 삶을 살기로 한 민씨의 결정에 친구들이 우호적인 반응만 보인 것은 아니었다. 민씨는 “네가 대학 입시를 거부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헛고생하며 사는 거냐”는 친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막연히 대학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현실이 슬프다. 그나마 나는 이른 나이에 인권과 청소년 운동을 알게 돼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대학 입시를 강요하는 폭력적 현실을 내면화하면서 살고 있었을지도….”

탈학교 청소년들은 ‘학생’이 아닌 삶도 살 수 있는 사회를 희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는 지난 1월 2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1년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에 잘 나타나 있다.

탈학교 청소년 삶의 질 낮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탈학교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경험 비율은 62.0%로, 학교 청소년들의 평균인 27.4%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비율도 탈학교 청소년은 61.1%로 학교 청소년의 44.9%보다 높았다. 평균 노동시간, 임금, 비인격적 대우 등 모든 항목에서 탈학교 학생들의 삶의 질은 학교 청소년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탈학교 청소년들의 현실을 개선하기보다, 이들을 학교에 묶어놓는 데에 맞춰져 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자퇴 의사를 가진 청소년에게 의무적으로 15일간의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복교지원 시스템도 강화할 방침이다.

ㅇ씨는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대학에 진학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그만뒀지만 나는 잘 살고 있다. 학교를 그만두면 안 된다는 말을 한 어른들은 많았지만,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홍지효군(17)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여름 학교를 그만둔 탈학교 청소년이다. 홍군은 “학교에서 하는 입시교육 외에 청소년들이 원하는 교육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학교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사실 중학생 때부터 줄세우기식 일제고사에 반감이 있었고, 학교를 꼭 다녀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수능 모의고사를 보는데, 왜 나는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너무 답답했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는 아니었나.
“수능 모의고사가 싫어서 반 친구들을 선동해 27명 중 20명이 문제를 풀지 않고 찍고 잠을 자게 한 적은 있었지만 말 잘 듣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자퇴서를 제출하자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모두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자퇴를 결정한 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부모님께서 처음에는 ‘남들 다 하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 반응을 보이셨다. 몇 차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부모님께서도 내 고민을 이해해 주셨다. 명절 때 친척들이 ‘대학은 어떻게 할거냐’ ‘사회 부적응자냐’는 말씀도 많이 하셨다. 하지만 이번 설날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더니 내 결심을 믿어보겠다는 반응들을 보이셨다.”

평소에는 어떻게 생활하나.
“사실 대학입시 공부보다 사진과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자기계발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자퇴한 이후에는 하고 싶던 일들을 하며 보내고 있다. 기회가 되면 청소년 인권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부모님께서 대학 진학만큼은 원하시기에 검정고시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을 꼭 가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은 멈추지 않으려 한다.”

탈학교 청소년이어서 불편한 점은 없나.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돌아다니면 피곤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점심 때쯤 지하철을 타면 역무원이 정말 청소년이 맞냐며 신분증 검사를 한다. 트위터로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이야기를 올리면, ‘학생도 아닌 것이 왜 신경쓰냐’며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도 있다. 학생 할인이 되는 곳에서는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할인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커서 취직할 때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는 중·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하는 일종의 매뉴얼이 존재한다. 나는 그런 매뉴얼이 싫었다. 다수의 시민들이 사회가 정한 매뉴얼에 맞춰가기보다는, 사회가 다수 시민들의 여러가지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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