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예술가 피 물려받은 문호근·문성근

아버지 고 문익환 목사의 예술가적 DNA를 가지고 태어난 문호근 연출가와 문성근 최고위원, 두 사람은 정치와 예술의 동반자이자 조언자 관계였다.

통일운동가 고 문익환 목사는 <두 하늘 한 하늘> <새삼스런 하루> 등 시집을 낸 시인이다. 구약성경을 민중의 입장에서 해석해 펴낸 <히브리 민중사>나 1970년대 공동번역 성서 번역사업에 참여한 이력이 도움이 됐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문 목사가 음악과 언어 감각이 뛰어난 분”이라며 “특히 7년 동안 구약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시인의 역량을 쌓은 것 같다. 구약은 모두 시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번역하면서 시인의 세계를 리허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왼쪽 _ 문호근씨의 졸업식을 맞은 가족들(왼쪽부터 동생 문성근, 할머니 김신묵, 할아버지 문재린, 어머니 박용길). | 경향신문 오른쪽 _ 2001년 당시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을 맡았던 문호근 연출가.

문 목사의 예술적 기질을 자식들도 이어 받았다. 문 목사의 4남매 중 장남 고 문호근 오페라 연출가와 막내인 문성근씨가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았다. 문 연출가는 막내 문성근 최고위원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공연예술계에 끼친 영향이 크다. 문 연출가는 서울대 작곡과 출신으로 서울시립오페라단 기획위원, 민족예술인총연합 음악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예술의전당 공연사업본부장 겸 예술감독을 지내다가 2001년 5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문 연출가의 아내도 유명 성악가이자 여성 최초로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지냈던 정은숙 세종대 교수(음악과)다.

형 문호근 공연예술계에 큰 영향
지난해 5월, 문 연출가의 10주기가 되는 해에 음악전문지 <음악춘추>에서 좌담을 마련해 그의 예술세계를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문 연출가는 한국형 오페라를 알리려고 노력했던 예술가다. 이 좌담회에서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원)는 “문호근 선생은 본격적으로 오페라 연출을 하면서 직접 번역을 했다”면서 “당시에는 영문학자들이 오페라를 번역했기에 음악과 우리말 가사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문 연출가가 1986년 ‘한국음악극연구소’를 만든 것도 ‘우리 시대에 알맞은 음악극을 만든다’는 취지였다. 한국음악극연구소를 통해 이탈리아 오페라를 패러디해 영어로 발표하고, 사회 지배계급의 갈등을 풍자해 인기를 얻었던 영국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구로동 연가>(1988)는 당시 한참 일고 있던 노동운동을 다룬 작품으로, 100회가 넘는 장기 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문 최고위원에게 형은 예술적 동반자이자 조언자였다. 문 최고위원은 “둘이 만나면 작품이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호근이형은 연출가이자 작가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배우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문호근 연출가와 문성근 최고위원의 정치적인 지향점도 비슷하다. 문 연출가도 통일운동과 관련한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을 무대에 처음 올린 이도 문 연출가다. 문 연출가는 2001년 당시 배우인 동생이 노무현 대통령 후보 지지 활동에 나섰을 때 “너의 판단이 옳은 것 같다. 열심히 해라”고 격려했다.

아버지 고 문익환 목사의 예술가적 DNA를 가지고 태어난 문호근 연출가와 문성근 최고위원, 두 사람은 정치와 예술의 동반자이자 조언자 관계였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