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안철수, 박원순 현상의 공통점은 SNS 민주주의”

서울시장 선거 국면에서 SNS 여론 흐름이 승패 갈라

“솔직히 잘 나가는 정치인은 아닙니다.” 청중들로부터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무대에 선 이는 심상정 진보신당 전 공동대표. 지난 9월 29일 저녁 동국대. 그가 발표할 주제는 ‘사랑’이었다. 그는 “여러분은 사랑하고 계시나요?”라며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의 대상은 가족, 이성친구, 이웃, 공동체다. 78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그가 찍은 ‘인물 좋은 남자’들은 영락없이 다 운동권이었다.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데모에 나갔다. 대학 3학년 때 공활을 갔다가 ‘노동현실’을 알고 교육자의 꿈을 접었다. “노동운동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범야권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현장투표 결과 선출된 박원순 변호사가 손을 들어 유권자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오연호, 선대인, 김여진의 공통점은
공존, 정의, 변화, 행복, 희망, 사랑. 지난 9월, 각 대학을 순회하며 열린 ‘2011 캠퍼스 투어 청춘 토크파티’의 주제다. 심 전 의원 앞에는 인디밴드 ‘일단은 준석이들’이 나와 공연했다. 노래를 마친 ‘일단은 준석이들’의 한 멤버가 “집이 가까워서 좋네요”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청중석에서는 다시 웃음이 일었다. ‘청춘 토크파티’에 발표자로 참석한 사람들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용현,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 배우 김여진, 세금혁명당 대표 선대인, 전 KBS 사장 정연주, 그리고 심상정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난 1년, SNS를 통해 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안’들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토크 콘서트’, ‘북 콘서트’ 등의 행사로 익숙한 사람들이다.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를 기점으로 처음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1월 오연호 대표와 <진보집권플랜>을 낸 후 전국 독자와 만나는 자리를 ‘북 콘서트’ 형식으로 한 것이 맨 처음 시도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사실 시국강연회 식으로 딱딱하게 행사를 진행하면 아무도 안 옵니다. 독자와 대화를 하면서 중간에 노래도 하는 것이 일종의 연성화 프로젝트였는데, 그게 대중 감성과 맞아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서울시민 고유라씨(35·여). 강원대병원 가정의학과 의사다. 월차휴가를 내고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오프라인 팬미팅 행사에 참석했다. 고씨는 박원순 팬클럽 ‘박원순과 함께 꿈꾸는 서울’의 운영진이다. 이전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집안 분위기에 따라 보수후보에 투표해 왔다. ‘열린 의사회’ 등에서 자원봉사활동은 했지만, 정치인 팬클럽 활동은 처음이다. 학교에 나갈 때를 제외하곤 팬클럽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는 10월 3일 범야권 단일후보 경선 현장에서의 ‘역전’을 이렇게 기억했다. “페이스 북과 다음 카페에 개설된 팬클럽을 통해 홍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주로 트위터를 통해 투표를 독려했어요. 팬클럽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파워 트위터리안’을 섭외해서 젊은 20~30대의 투표 참가를 부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조국 교수나 공지영씨 등 당사자들이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덧붙여 내놓은 아이디어가 ‘인증 샷 놀이’다. 투표장에 방문해 ‘파워 트위터리안’과 기념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다시 투표 참가를 호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증 샷을 찍어 간 사람들이 어림잡아 600여명. “오전에는 민주당의 봉고차 부대 사람들이 많았아요. 지금 상황이 8대 2로 밀린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RT(리트윗·트위터 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글을 소개하는 것)를 부탁했고, 오후가 되자 그것을 보고 왔다는 젊은층이 많았습니다.”

이튿날 언론은 박원순 승리의 요인으로 일제히 SNS를 지목했다. ‘SNS 돌풍’이 선거 결과 분석기사에서 단골 소재가 된 것은 한참됐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도, 올해 4·27재·보궐선거에서도 선거 결과를 좌우했던 결정적 ‘변수’로 언론은 SNS를 지목했다. 정당정치 위기 담론이 나왔다. 보수매체들은 결국 후보를 못낸 민주당을 ‘불임정당’이라고 불렀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10월 6일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지금 상황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우리 정치 전체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정당정치 대 시민정치의 제로섬 게임?

정보사회와 ‘새로운 주체’의 탄생
‘안철수 현상’에 이은 ‘박원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공통된 설명은 이것이다. “정당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의 결과다.” 하지만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 분석은 일면적이다. “1987년 이후 예외 없이 지속되어 왔던 투표율 하락이 이명박 정부 이후에 반전되는 양상을 보인다. 정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과거처럼 정당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9월 30일 뉴욕주 코티 공원을 점거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대를 한 참가자가 아이패드로 사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신 교수에 따르면 정보사회는 새로운 주체를 가능케 했다. 과거 노동과 거주의 공간, 즉 장소성에 결박된 정치적 정체성에 안주했다면 정보사회에 접어들면서 물리적 장소성을 완전히 벗어나는 정체성 형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 SNS와 같은 새로운 소통수단은 ‘상당히 광범위할 뿐 아니라 집중적인’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기존정당의 정치적 소통도 변화는불가피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전통적인 정치를 특징짓는 것이 연설, 구애(“~이번만 믿고 찍어주세요”), 계몽정치였다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해진다. “물론 정치인들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열심히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오히려 더 잘 활용한 사람들은 흔히 ‘소셜테이너’라고 이름을 붙였던 사람들이었다.” 소셜테이너들은 SNS를 능숙하게 다뤘거나 SNS 상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리고 새로운 대중의 탄생. 뉴욕대 언론학대학원 클레이 셔키 교수는 최근 발간한 책 <많아지면 달라진다(Cognitive Surplus)>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시민들이 종전에는 TV 시청에 소비하던 여가시간을 보다 ‘의미있는 일’로 돌리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브리태니커 사전이 못해냈던 업적을 달성한 참여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단적인 예다. 그는 이것을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의 탄생’으로 불렀다.

스마트폰과 SNS라는 새로운 디지털 수단을 든 대중들이 의미있는 일을 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셔키 교수는 그 예로 한국의 ‘촛불시위’를 들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대면접촉의 붕괴를 염려하지만, 세계에서 유선 및 무선 연결이 가장 잘된 서울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디지털 도구는 대인접촉과 실제 세계 활동을 통합 조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보자. <주간경향>은 지난 2월, 중동에서 벌어진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한 민주화 혁명 도미노 현상을 “스마트 데모크라시 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한 바 있다. 정보가 통제된 권위주의 사회에서 SNS는 정보유통과 행동에서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SNS가 차단되면,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은 적극적으로 정보유통 방법을 고안해 제공했다.

그렇다면 서방세계 또는 한국은? 최근 미국에서 조직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SNS를 타고 미국 전역의 도시들로 확대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점령’ 행동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유튜브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통해 퍼져나갔다. 10월 5일, 뉴욕 폴리스퀘어에서 행진하던 시위대의 손에는 다음과 같이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ARAB SPRING, EUROPEAN SUMMER, AMERICAN FALL(아랍은 봄, 유럽은 여름, 미국은 가을)….” 미국에서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월가 점령운동은 올해 초에 벌어진 아랍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있다는 주장이다. 중심 없는 저항, 축제 같은 시위. 다양한 요구의 분출. 우리로서는 상기되는 경험이 있다. 촛불시위다. 심지어 초기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노동시민단체들이 결합하는 양상까지 닮아 있다.

한국의 촛불시위에서 아고라와 커뮤니티가 담당했던 ‘집단지성’의 역할을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한 토론이 해내고 있다. ‘거리정치’ 또는 ‘직접행동’ 모두 SNS는 정보 확산과 여론 확대, 네트워킹과 목적의식적인 동원 등에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도구로 판명났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국제행정학과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 혹은 전자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철수 현상이나 박원순 현상은 기존 대의제 정치집단에 대한 ‘경고’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그것이 결실을 맺으려면 대의제를 통해 제도권에 수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장기적으로 운동의 모습도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단일거대 이슈 중심에서 최소 강령에 기반한 다양한 흐름의 운동이 SNS를 통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이슈가 퍼져나가는 속도는 겁날 정도다.

관련 연구자들에 따르면 최근 영화 ‘도가니’를 둘러싸고 전개된 급속한 여론 변화의 추동력은 바로 SNS였다. SNS 상의 여론이 전통 미디어에 의해 주목되고 그것이 다시 SNS 상의 토론으로 증폭되는 방식이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이것을 ‘이슈의 눈덩이 효과’라고 불렀다. 송 교수는 “과거 ‘키보드 워리어’라는 말도 있었듯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괴리되는 현상도 지적되었지만, SNS가 발달함에 따라 더 이상 온·오프는 별개의 세상이 아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실제 SNS에서 이슈가 만들어지는 것을 관찰해보면, 정보의 빠른 확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가 선택되어 지식 또는 견해로 재구성돼 SNS로 유통된다는 것”이라며 “최근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나 안철수·박원순 현상이 벌어졌을 때 SNS 상에서 상당히 안정적인 실체가 있는 여론의 흐름이 지속된다는 게 발견된다”고 말했다.

2012년, 보수진영 SNS 탈환 가능할까
2012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SNS가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감하는 일이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변수가 세대다. 송경재 교수는 “우리 사회 변화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87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이미 학교 반장 선거에서부터 가정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에 익숙한 세대들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일상에서 수평적 네트워크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20~30대의 마음을 누가 얻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장우영 교수는 “보수·진보 할 것 없이 SNS의 중요성이 역설되고 있지만, 아직 측정할 만한 지표가 없는 상태에서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며 “현재 SNS 공간은 진보가 거의 독점하는 체제이지만, 보수 입장에서도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온라인 공간도 점차 세력균형 형태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6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선거대책본부 발대식에서 홍준표 대표는 인터넷·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만들고 있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에게 전화를 걸어 “황금시간대에 한 시간만 대담하자”고 요청했다. 소식을 들은 누리꾼은 “홍 대표가 아직 개념을 모르는 모양”이라며 조소했다. 팟캐스트는 청취자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다운받아 듣는 인터넷방송이라는 것을 홍 대표가 모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장 선거 국면까지는 확실히 진보개혁진영 쪽이 SNS 여론에서는 이니셔티브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4월 총선, 12월 대선까지 그 우위가 지속될까.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