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서울대 법대 82학번의 ‘진보개혁’ 리더십은

나경원 서울시장 출마, 조국 교수 <진보집권플랜>으로 주목

다시 ‘그들’이 주목받고 있다. 계기는 나경원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BS는 올해 초, ‘출세’를 주제로 한 스페셜 리포트의 한 꼭지로 서울대 법대 82학번의 오늘을 다뤘다. 나 서울시장 후보는 이 리포트에도 출연했다. 법대 동기이자 동료 현역의원 두 사람과 함께. 원희룡, 조해진 의원 역시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세 국회의원의 ‘학연’을 소상히 기술한 보도는 제법 많다.

서울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과 경찰들이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다. 1984년 10월.

공교롭게도 이들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들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다. “젊어서 진보가 아니라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 보수가 아니라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말마따나 이들 82학번도 보수화된 것일까.

졸업앨범 편집후기 저자는 조국
이들이 대학에 입학한 1982년은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기였다. 학교와 강의실에는 학생들을 감시하는 사복경찰과 정보기관원이 상주해 있었다. 이들이 입학한 첫해, 학내는 조용했다. 한 경제계 인사의 회고에 따르면 “등사된 유인물을 화장실에서 몰래 돌려 읽는 정도”였다. 광주민중항쟁 2주년인 그해 5월, 폭발했다. 졸업정원제 반대 데모였다. “우리 세대야 워낙 학생운동이 격렬한 세대였기 때문에 자주 거론되는 것 같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김남근 변호사의 말이다. 그 역시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역사, 민중, 지식인… 우리는 격동의 한국현대사 속에서 이제 법대 학사모를 쓰게 되었다. 학우여! 이 학사모가 번쩍거리는 신분상승의 도구됨을 거부하자! 이 학사모는 민중의 권익옹호를 위한 무기이며, 마침내 다가올 정의롭고 해방된 이 땅을 위한 거름이어야 한다. 그리고 학우여! 4년 전 정의의 여신 앞에서 엄숙히 맹세했던 그 뜨거운 열정을 잊지 말자!” 82학번들의 졸업앨범 편집후기다. 이 편집후기의 작성자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조국 교수에게 물었다. 입학한 지 내년이면 30년, 동기들의 그 ‘맹세’는 지켜지고 있을까. “동기들의 삶에 대해 내가 평가할 위치는 아닌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보면 조금 생경하고 과격한 어투가 있을 수 있지만, 당시엔 어색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82학번 전체를 놓고 보면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은 역시 법조계다. 올해 초 작성된 ‘동기주소록’을 보면 법원에 47명, 검찰에 19명, 변호사 124명, 변리사 1명이다. 행정부로 진출한 경우도 12명이다. 주로 법학교수로 있는 학계에는 32명이 나가 있다. 경제계 인사도 꽤 된다. 이를테면 포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김상헌 대표가 법대 82학번이다. 언론계에는 고태성 ‘뉴스1’ 부장, 신홍기 SBS 윤리경영팀장, 이태전 SBS 기획팀 차장, 신효섭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동헌 YTN 팀장 등이 있다. 용태영 KBS 기자는 환경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외부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법조계 내로 진출한 82학번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개혁적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재성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법원 내 진보적 목소리를 대변해온 ‘우리법 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정태상 법무법인유한한울한결 변호사는 민주화 보상법 제정에 앞장섰다. 특이한 점은 법조계 진출인사 중 과거 학생운동 경력을 가진 경우도 꽤 된다는 것. 82학번이 ‘유별나게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에 대해 조국 교수는 “졸업정원제의 시행으로 인원이 많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가 겪었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풀이했다. 변호사 출신으로 시민사회에 관여하는 인사로는 김남근 변호사 이외에도 김진욱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법무법인 가인 대표변호사), 장주영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법무법인 상록 대표변호사) 등이 있다.

82학번은 크게 세부류
82학번의 정원은 모두 364명이었다. 졸업정원제의 시행으로 1년 선배인 81학번부터 법대 정원이 크게 늘었다. 학창시절, 이들은 대충 세 부류로 분류된다. 첫째는 도서관파.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고시 패스를 목표로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에서 생활하던 그룹이다. 두 번째는 학생운동파. 동기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50~60명가량이었다. 마지막이 놀자파, 속칭 ‘날날이’파다. 그 경계는 애매하다. 게다가 학생운동을 한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당시 서울대의 운동은 언더서클 중심이었다. 막연하게 어느 언더팀 소속일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 같은 서클의 멤버가 아니면 서로 알 수가 없다. 조국 교수는 언더서클에 가입하지 않았다. 대신 공개 서클인 법대편집부 피데스에서 활동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의 대담집 <진보집권플랜>에서 조국 교수는 “당시 선배들이 농반 진반으로 ‘너는 눈에 금방 확 띄어서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뒤에 있어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눈에 확 띈다’는 것은 그의 외모를 말한다. 당시 서울대 82학번들 사이에서는 공인된 ‘3대 킹카’가 있었다. 킹카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얼짱’이다. 조국 교수, 김재호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부장판사, 그리고 이응진 로플렉스 대표변호사다. 김재호 판사는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남편이다. 김 판사와 나 후보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82학번 MT사진이라고 인터넷에 퍼진 사진. 확인 결과 이들은 82학번 동기가 아니라 서울대 법대 국제법학회 회원들이 85년에 간 MT 사진이다. 가운데 아래 여성이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다.

나 후보는 앞의 ‘분류’에서 도서관파에 속했다는 것이 학번 동기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학생운동 쪽이었던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는 “나 의원은 학생운동 그룹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학생운동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지금이라면 보수와 진보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입장이었지만, 당시 졸업정원제나 군사독재 정부에 대한 반대가 보편적인 정서였다. 비록 도서관에서 공부하지만 심정적으로 지지한다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테면 최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에세이집으로 유명해진 김난도 교수의 경우, 학생운동 출신은 아니지만 청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책에서 드러내고 있는데, 그 역시 그 시대가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풀이다.

학생운동 그룹은 조금 더 ‘과격’했다. 원희룡 의원은 원래 학생운동 그룹에 속했다. 동기 노창동씨는 당시의 원희룡을 이렇게 기억했다. “들어왔을 때 원희룡이 전국 수석을 했다. 법대에 진학하면 그래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인데, 그 중에서도 제일 잘했던 것이다. 그래서 ‘저 친구도 데모를 할까’ 하는 시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공법학과와 사법학과가 나뉘는데, 보통 공부만 하는 도서관파는 사법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원희룡도 사법학과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공법학과를 택하더라.”

원희룡은 그 후 8년 동안 운동의 길을 갔다. 학생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소위 현장 투신을 했다. 그러다가 1990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3년의 공부 결과는 사법고시 전체수석. 또다시 ‘화제’를 모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학생운동 출신 중에서 고시공부로 돌아선 이들이 많았다. 정대화 법무법인 정세 변호사는 “이념적 혼란도 없진 않았고, 원희룡의 합격 소식에 자극받은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임성택 변호사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꿈이 변호사였다”며 “다른 길이 더 정의로운 삶이고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운동을 한 것인데, 다시 변호사를 하더라도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동기들을 보면 다 각자 다양한 삶을 살고 있지만, 80년대 고민했던 정의의 문제나 균형감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지평지성에는 임 변호사와 양영태·최승수 변호사 등 동기 3인이 소속되어 있다.

50대 목전, 여전히 ‘개혁지향’인 까닭
‘언더서클’을 거쳐 지하운동으로 간 인사도 있었다.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김영환씨의 경우다. 김영환·정대화 변호사, 그리고 하영옥씨(학원강사)는 본부서클 고전연구회 멤버였다가 나중에 구국학생연맹을 만들게 된다. 구학련은 한국에서 NL운동의 모태로 일컬어진다. 반제청년동맹 이른바 민혁당 사건 이후에 이들은 갈라섰다. 한현갑 LG 유플러스 정보통신노조위원장은 조금 다른 경우다.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97년 노동법 날치기 사건 이후 뒤늦게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한 위원장은 “그전까지는 딱히 고민하지 않았지만, 노조 역할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고민에서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82학번을 흔히 386세대의 핵심 학번으로 일컫는다. 몇 년 전부터 486이라는 조어가 나왔지만, 내년 또는 내후년이면 이들 대부분이 이제 50대에 접어들게 된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의 생각은 과거에 비해 어떻게 변했을까. 이들이 50대에 접어들면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로 변하게 될까. 일단 정치적으로 82학번 내 진보개혁 인사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올해 초, 조국 교수는 진보개혁세력의 대안적 리더십으로 주목을 받았다. 노창동 사단법인 굿모닝부산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야권 후보로 부산에서 출마할 계획이다.

정대화 변호사는 “꼭 법학과 82학번은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 과거 10년간 진보정권이 있었고, 5년 보수정권을 겪고 있는데 보수적 가치를 내건 현 정부에 실망해 오히려 진보쪽으로 돌아선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생운동 출신 동기들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나라당에 3인방이 있는데 진보개혁 쪽도 3인방을 ‘대항마’로 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김남근 변호사는 “정치적 규정이 아니라 생활적인 측면으로 볼 때 건전보수라고 볼 수는 있겠다”면서도 “82학번이 겪은 독특한 경험이 있다면 1학년 때는 거의 사복경찰이 상주했던 반면, 2·3학년 때는 거의 매일 학내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경찰이 학내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노력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자신감이 이들 82학번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이라는 의견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