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보수세력은 왜 다양화되는가

통일과 복지에 대한 입장 차이가 보수 내부를 가르는 기준

보수세력이 다양화됐다. 보수의 주요 이데올로기는 ‘냉전’과 ‘시장’이었다. 보수 진영은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를 축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수평적 정권 교체의 경험이 쌓이면서 보수세력, 진보세력 간 경쟁이 제도화됐다. 경쟁을 통해 이념적 경직성도 완화됐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민심을 반영해야 하는데 이념적 경직성을 가지고서는 민심을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7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뉴비전'공청회에서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보수 진영이 다양하게 분열하는 이유를 현실정치에서 찾기도 한다. 이명박 정권의 실패가 한 예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는 “신시장 보수로 대표되는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3년 반이 지난 지금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게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민심 이반으로 총선 패배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보수의 입장에서는 MB정부가 가지고 있던 보수의 대표성을 철회하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MB와 거리두기를 하는 과정에서 보수가 다양화된다는 것이다.

보수가 다양화되는 대표적 기준으로 ‘통일’에 대한 관점이 있다. 이는 흡수통일에 대한 입장으로 갈라진다. 갈릴리교회 인명진 목사는 “보수세력이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들이 보수세력임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 목사는 그 이유로 남북기본합의서를 든다. 그는 “모든 남북간 합의는 존중되어야 하고 보수세력은 남북 문제에 있어서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를 기본 입장으로 해야 한다”며 “남북기본합의서는 흡수통일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수진영서도 ‘분배’ 강조 목소리
반면 한반도선진화재단 박세일 이사장은 흡수통일을 주장한다. 박 이사장은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흡수통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지도자와 국민은 통일을 두려워하며 살았다”며 “지난 10년간 정부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로 통일에 매우 소극적인 국민적 정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독재와 민주는 서로 나눠지는 것이지 그 사이는 없다”며 “그런 점에서 통일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세일 이사장이 주도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에는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진홍 두레교회 목사 등이 함께 한다.

‘복지’에 대한 관점도 보수 내부를 가르는 기준이다. 보수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자유’다. ‘시장경제’와 ‘자유경쟁’에 대한 확신이다. 분배보다 성장의 가치를 중시하고 형평보다는 효율을 앞세운다. 하지만 오늘날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부가 일부에 편중되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보수 진영에서도 분배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친기업’을 주장하던 한나라당이 ‘친서민’을 표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렸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윤 전 장관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수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없다”며 “기존의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은 끝났으며 그 패러다임으로는 사회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에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제시돼 있는데 이는 사회민주주의까지 다 포괄하는 것”이라며 “시장경제의 전제인 경제 정의를 보장하기 위해서 헌법 119조 2항에서는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 분배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세력이 줄곧 ‘자유민주주의’만을 유일한 헌법적 가치로 주장해 왔다면 사회민주주의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관점인 셈이다.

“다양화가 아니라 보수에 대한 배신”

6월 24일 사랑의실천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에 참가한 보수국민연합 등 보수단 체 회원들이 북한 정권의 민주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전원책 변호사는 보편적 복지는 보수 이념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무릇 보수정당이라면 근본적으로 복지는 필요한 곳, 즉 최저소득층부터 집중해야 한다”며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부자들에게까지 밥을 주고 의료를 무상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다급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좋은 복지는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문제 해소”라며 “그러기 위해 우선 SOC 건설에도 적정한 예산이 배분되어야 하며, 노동시장의 유연화에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선별적 복지로 문제점을 보완하자는 주장이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기존의 보수적 가치를 고수한다. 조 대표는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보수의 다양화가 아니라 탈보수이며 보수에 대한 배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반공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이 3대 헌법의 원칙이 보수의 가치이고 이 바탕에서 지향하는 것이 자유통일인데 여기에 동의해야 보수지 그렇지 않으면 보수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보수적 가치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존엄성이고 이는 어떤 국가도 간섭할 수 없다”며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잘 사는 것, 못 사는 것도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포퓰리즘 하겠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며 보수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보수의 스펙트럼이 다양화되는 것에 대해 한신대 윤평중 교수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 교수는 “진보도 마찬가지이지만 보수가 다양화되면서 우리 사회 이념 영역이 정교화되고 연성화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갈등이 증폭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갈등 양상이 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과거에는 적과 동지를 나누어서 보수, 진보가 서로를 적으로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한 정치공동체 안에서 정책 실현 능력을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경쟁자로 진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명지대 신율 교수는 보수 진영의 다양화에 의문을 제기했다. 신 교수는 “보수 진영의 스펙트럼이 다양화됐다고 하기에는 보수 진영이 제시하는 새로운 어젠다가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진보 진영의 경우 근본적으로 노선의 차이가 뿌리깊게 있지만, 보수는 군부독재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빈약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의 축은 국방안보와 신자유주의 간단히 이 두 가지다”라며 “다만 그 중 합리적인 세력들이 보수주의의 축을 적용할 때와 적용하지 않을 때를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