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인물]한나라당 ‘소금’ 비판적 지지자

인명진의 역할론, “여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인명진 목사는 20대인 1972년부터 12년 동안 서울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의 총무로 일했다. 유신 시절 도시산업선교회는 그 약칭인 ‘도산’처럼 무시무시한 의미로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곤 했다. 도산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오종세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등 많은 재야·노동운동가의 산실이자 활동 근거지였고, 그 또한 그로 인해 긴급조치 1·4호 위반, 9호 위반, YH사건, 김대중 내란예비음모사건 등 여러 시국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시절의 인명진 목사. 부적격 후보들에 대한 공천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외곽세력 가운데 그가 특별한 존재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과거 인맥은 한나라당이 이른바 진보, 좌파, 심지어 ‘빨갱이’로 부르는 인사들이다. 이는 역으로 그가 여권에서는 드물게 반대진영과 깊이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반대진영 역시 그렇다. “야당보다 여당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게 그가 여권에 남아 있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정파적 또는 이념적 구획보다 “진보든 보수든 필요한 역할을 한다”는 그 특유의 ‘역할론’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그는 남북문제 외에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사태 등의 해결에 숨은 역할을 했다. 그는 최근의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고 있다. “김진숙이라는 여성이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한 친서민이니 공정사회니 백번 얘기해도 소용없다”며 여권 요로에다 호소하고 있다.

그가 여권과 인연의 고리를 건 것은 1987년 대선국면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김대중(DJ)·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다. 그는 6월항쟁을 이끈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대변인을 맡은 인연으로 양김씨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 야권 후보 문제를 놓고 재야가 ‘비판적 지지파’(비지)와 ‘후보 단일화파’(후단)로 양분될 때 그는 후단 편에 섰다.

용산·쌍용차 사태 해결 숨은 역할
“YS와 인간적 관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아직 군부가 시퍼렇게 살아 있고, 비록 오해였지만 DJ에 대한 국민의 거부반응이 존재했기 때문에 YS로 단일화하는 게 유리하다는 생각이었다. YS가 먼저 하고 그 다음 DJ가 하는 패키지를 만들었다. 뒤에 할 사람은 70% 지분을 갖고 당을 장악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민주화세력의 10년 집권 플랜을 만들었다.”

당시 후단 입장에 섰던 재야인사는 그와 이재오 특임장관, 고 조영래 변호사 등 소수였다. 그 인연으로 그는 3당합당 후 집권한 YS정권의 외곽세력이 됐고, 그 맥을 이은 한나라당에 ‘소금 역할’을 하기 위해 윤리위원장을 맡았다.

“후단 입장에 섰을 때 비난을 많이 받았다. 운동권 치고 비지를 안 하면 죄였다. 그 때문에 오랜 우정을 나눈 같은 목사끼리도 서먹서먹해졌다. 평생 그렇게 갈 수 없어 나중에 설교를 핑계로 김상근 목사를 초청했다. 지나고 보니까 어떠냐, 내 주장이 맞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노태우 정권 5년 허송세월하지 않았을 것이고, 민주화세력 나눠지지도 않았을 것 아니냐,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는다고 했던가. 그의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는 뒷날 어떤 역사적 증명을 남길까.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