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인물]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싸우고 있다

홍대 청소·경비 노동자의 삶과 투쟁

홍익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학교 점거농성을 시작한 지 47일이 지났다. 지난 2월 12~13일 홍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만났다. 투쟁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유도할 필요는 없었다. 투쟁은 그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지난 시절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싸웠고, 지금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다. <편집자 주>

홍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홍익대 총무과 사무실에서 이불과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이기며 47일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정지윤 기자

주초에만 해도 기온은 영상이었다. 하지만 벌써 봄이 올 리 없다. 공기가 다시 차가워졌다. 영하 3도다. 수십년 만의 맹추위였다는 1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체감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밖으로 나온 지 5분도 안 돼 몸이 오그라든다. 움츠린 어깨가 뻣뻣하다.

2월12일 오후 2시쯤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학교 문헌관 앞. 10분 가까운 발언을 마친 송성훈씨도 떨고 있었다. 기자의 명함을 받아드는 오른손이 심하게 흔들렸다. 송씨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노조 지회장이다. 그는 아산공장 노조원 200여명과 함께 이날 오전에 서울로 출발했다.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 상경투쟁에 합류하기 위해서다.

송 지회장은 울산, 아산, 전주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2차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견된 지 2년이 지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7월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이번에 다시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요지부동이다. 울산공장, 아산공장, 전주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이날 양재동에 모이기로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길 때까지 하면 되지 않겠어요?”
울산공장과 전주공장 사람들은 이미 양재동에 도착했을 터였다. 아산공장 노조원들은 먼저 홍대부터 들렀다. 지난 1월 3일부터 문헌관에서 농성 중인 이 학교 청소·경비 노동자 170여명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아산공장 노조원들은 대부분 20~30대다. 평균 연령이 약 60세인 홍대 노동자들에게 현대차 노조원들은 자식뻘이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다. 그러나 고용주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간접고용의 굴레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같은 처지다.

정리집회를 마치고 양재동으로 출발하려는 아산공장 노조원들을 홍대 청소노동자 이숙희씨(53)가 배웅했다. 이씨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이 자연의 이치를 꿰뚫고 있거나 무슨 영험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는 아니라고 해요.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요?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답니다. 그러니 기우제를 지내면 100% 비가 오는 것처럼 보일 밖에요. 우리 싸움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이길 때까지 하면 되지 않겠어요?”

언제 ‘비’가 올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여론의 압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홍대만 해도 그렇다.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문헌관 안 학교 총무과 사무실을 점거해 24시간 투쟁을 시작한 지 40일이 지났지만, 단 한 번도 총장과 만날 수 없었다. 학교 측은 정식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숙희씨의 믿음은 굳건하다. 곧 있을 졸업식과 입학식, 뒤이은 개강 등의 학사일정이 학교 측에 빠른 타결을 압박하는 힘이 될 거라고 짐작한다. 학교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그가 낙관적인 기대를 하게 만드는 힘이다.

“노조 100% 가입, 든든했어요”
이씨는 민노총 산하 전국공공서비스노조 홍익대 분회장이다. 홍대에서 6년 반 동안 청소일을 했다. 노조에 부정적인 사람의 눈에는 소위 그가 ‘주모자’로 비칠 것이다. ‘노조원’이나 ‘노동자’는 법률적인 규정일 뿐이다. 노동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그러나 용역업체는 원청업체의 눈치를 보고 원청업체는 용역업체 고용자들을 책임지지 않는 간접고용의 구조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지닌 인간적 자존심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것이었다. “아주머니들이 연령대도 높고 자신들보다 배움이 적다고 생각해서인지, 용역업체나 학교 사람들이 은연 중에 무시하는 태도였어요.”

이씨와 비슷한 나이인 김영희씨(가명)는 강의실만이 아니라 교수휴게실과 교수연구실도 청소했다. 교수휴게실 청소가 계약조건에 없는 일이라는 걸 김씨는 노조에 가입한 뒤에야 알았다. “처음에 교수들이 와서 좀 치워달라고 하기에 멋도 모르고 거기까지 다 했어요.”

“그러게 교수들 방을 왜 했어?” 듣고 있던 박성희씨(57·가명)가 핀잔을 줬다. “난 처음부터 안 했어요.” 박씨가 말을 이었다. “여기 처음 온 게 2005년인데 다들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나는 안 했어요. 다들 하는데 나만 안 한 거지. 아마 이상한 아줌마라고 뒤에서 말도 많았을 거야. 한 번은 새로 온 여자 교수가 교수휴게실을 치워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딱 가서 그랬지. ‘저기요, 여긴 제가 맡은 곳도 아니고 예전부터 청소해본 적 없어요. 오늘은 특별히 부탁을 하셨으니 치워드리는데, 다음부터는 스스로 치워주세요.’ 그 뒤로는 그런 얘기 안 하더라고요. 당당해야 해요.”

지난 2월 12일 오후 2시쯤 홍대 노동자들을 방문한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노조원들이 정리집회를 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그런 그도 노조를 만든다는 소식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나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안 하면 어떡하지? 나만 찍혀서 잘리면 어떡하지? 심장이 뛰었다. “그런데 막상 노조 총회를 한다고 해서 가봤는데, 세상에, 100% 가입했어요. 서로 말을 못하고 있었던 거지 다 같은 생각이었던 거죠. 든든했어요.”

홍대 노동자들이 대학과 계약한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로 일하면서 받은 처우는 비슷하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인간적 무시 등이 그것들이다. 그 이전까지 살아온 길은 제각각이다. 그 제각각의 삶에서 유일한 공통점은 가사 노동이든 공장 노동이든 식당 노동이든 가정을 꾸리고 먹고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해야 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송병아씨(62)의 고향은 경기도 이천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미아리 섬유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일은 결혼하고 그만뒀다. 다시 밖에 나가 임금을 받기 시작한 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집안이 기우뚱했다. 식당에 나가 음식을 만들었다. 매달 170만원을 받았다. 3개월에 한 번 상여금까지 나왔다. 청소일과 비교하면 “최고의 대우”였다. 식당일이 몸에 무리를 줘 그만뒀다. 홍대에서 청소일을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가난 벗어나기 위해 안해본 일 없어”
이소희씨(55·가명)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라남도 고흥 사람이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열아홉에 서울 가리봉동 공단에 취직했다. 결혼은 공장을 그만두고 다시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 했다. 남편이 일정한 수입을 올린 적이 없다. 살림만 할 수 없었다. 파리 잡는 끈끈이를 만드는 일부터 온갖 부업을 섭렵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는 10년을 일했다. 옷을 바느질하고 단추를 다는 일이었다. 한 주에 6일 동안 일하고 매달 200만원을 받았다.

그는 홍대에서 청소일을 시작한 지 8일 만에 해고됐다. 청소일을 하기 전 4개월 동안은 보모일을 했다. 오전 9시까지 아이가 있는 집으로 가서 5시까지 일했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 힘들지 않았다. 5일 동안 일하고 120만원을 받았다. 홍대에서 청소일을 하기로 한 건 망원동 집에서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 보모일을 한 집은 강남이었다. 이씨는 여지껏 단 한 달도 그냥 논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무조건 절약하고 살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김옥희씨(55)는 홍대에서 8개월 동안 일했다. 김씨의 고향도 고흥이다. 고향에서 스물넷에 결혼해 농사를 지었다. 오이 농사는 쉽지 않았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1994년에 상경했다. 서울에서는 식당일을 오래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했다. 100만~160만원을 받았다. 그는 “식당에서 일할 때 가스를 많이 마셨다”고 했다. 혈압에 문제가 생겨 청소일로 바꿨다. 청소일을 하면서는 먼지를 많이 마셨다. 그의 남편도 비정규직이다.

경비로 일한 지 1년 된 한형수씨(가명)는 경비 일을 “바닥”이라고 표현했다. 처음부터 ‘바닥’에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전문대학교 전기과를 나와 공기업에서 일했다. 노조 간부로 일한 적도 있다. “어용노조였기 때문에” 노조 간부라는 이유로 별스런 노조활동을 하진 않았다.

회사는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정리해고 대신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두 딸이 대학에 다니고 있는 그의 가계는 매달 150만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가 버는 돈 이외의 다른 소득은 없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명퇴하면서 받은 돈으로 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버티고 있어요.”

배애미씨(60)는 목청이 크기로 유명하다. 그의 이야기는 목소리만큼이나 거침이 없었다. 배씨의 고향은 경남 창원이다. 서울에 처음 온 건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68년이다. 그는 공부보다는 노는 데 관심이 많았다. “서울에 온 것도 공부하기 싫어서야.” 무작정 상경해 2년 동안 친척집에서 집안일을 하다가 다시 창원으로 내려갔다. 반강제로 선을 보고 결혼을 했다. 스물다섯이었다. 아들 하나, 딸 둘을 낳았다. 1982년에 다시 상경할 때까지 창원에 눌러 살았다.

상경하기 직전 3년 동안은 창원에서 함바집을 했다. 창원에 공단이 들어서면서 건설 수요가 많을 때라 수입이 좋았다. 당시 돈으로 한달 매출이 수백만원이었다. 1982년 상경한 뒤로는 10년 동안 식당을 했다. 1994년부터는 낚시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밥을 팔았다. 제주도 빼고는 안 가본 데가 없다. 이때도 장사가 잘 됐다. 낚시꾼들이 많을 때는 관광버스 20대를 타고 움직이기도 했다. 번 만큼 많이 잃기도 했다. 남편의 사업은 번번이 실패했다. “술이나 마시고 다녔어. 친척들이 돈을 빼돌린 적도 있고.” 지금은 남편과 함께 언니집에서 산다.

“세상을 진보적 입장으로 보게 됐죠”
청소일을 하는 이들이라고 해서 빈곤층에 속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한정금씨(60)는 서울 토박이다. 홍대에서는 8개월 동안 일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일했다. 그는 “집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내 발로 걸어나와 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서교동에서 30년 가까이 장사를 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수입품을 팔았고 나중에는 옷을 팔았다. 장사에 물이 오를 무렵이던 1980년대는 경제가 호황이었다. 한씨의 장사에도 날개가 돋쳤다.

남편과는 7년 전에 사별했다. 1980년대 초반 제본일을 하면서 만난 남편은 성격이 유난스러웠다. 서른여섯 때 받은 암수술을 비롯해 지금까지 네 차례 큰 수술을 받은 한씨는 “결혼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래도 아직까지 남편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던 남편과 함께 가본 곳들의 풍광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씨는 돈 문제로 고민한 적이 없다. 서교동의 3층짜리 건물이 한씨 소유다. 게다가 지금도 아들과 딸이 매달 150만원씩 생활비를 보내고 있다. 농성장에서 고생할 이유가 있을까. “의리 때문이죠”라고 한씨는 말했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경제력을 기준으로 하나로 묶을 순 없다. 인맥이나 학맥으로도 묶을 수 없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연대의식이다. 그 연대의식은 농성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자각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연대의식은 정치의식도 바꿔놓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이다.

한형수씨는 자신이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다. 총선과 대선에서는 오랫동안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노조 간부로 일한 적도 있지만 민노총이나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었다. 학생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보는 신문도 보수적인 논조의 신문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이 특이한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이전에는 세상을 나 자신을 중심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세상을 좀 더 진보적 입장으로 보게 됐죠.” 그는 이제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이라면 “자원봉사라도 하고 싶고” 민노총에 대해서는 “상식이 통하는 진보”라고 생각한다.

송병아씨는 “전에는 투쟁한다는 사람들을 욕했는데 알고보니 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사람들이 이런 걸 알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파업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면 저 사람들은 왜 파업이나 하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니까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어요.” 김영희씨의 말이다.

홍대 노동자들의 연대의식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다. 2월 12일 홍대를 방문한 현대차 노조원들에 대한 홍대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한정금씨는 “아까 그 청년들을 보니 다 어린 사람들이더라고요. 우리 같은 사람이야 나이도 많고 자리도 잡았지만 그 사람들은 한창 일해야 할 나이인데 추위에 고생하는 걸 보니 마음이 너무 찡했어요”라고 말했다.

홍대 노동자들에게는 세상 비정규직들의 문제가 모두 내 문제 같다. 김영희씨가 말했다. “홍대 학생들도 졸업하면 비정규직이 되는 아이들이 있을 게 아니겠어요? 우리는 별 문제 없어요. 적게 받으면 적게 받는 대로 살면 되는 거지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떡해요. 우리가 여기서 고용보장을 받으면 다른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데도 조금은 도움이 될 거 같네요.”

홍익대 노동자들이 기다리는 비는 언제 올까. 이숙희 분회장이 말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비가 올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걸까. 인간의 일을 장담할 순 없지만 계절의 변화는 순리다. 곧 3월이다.

<정원식·박송이·백철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