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인물]한국 대학은 ‘비정규직의 전당’인가

청소·경비원에서부터 시간강사까지… 그들 없이는 하루도 힘들어

"그녀들이 없다면 홍익대는 단 하루도! 깨끗할 수 없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투쟁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한 플래카드의 문구다. 홍대 투쟁의 주축인 청소노동자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제 자신들을 ‘진리의 전당’으로 포장하기조차 포기한 대학들은 각종 필수 직종들을 비정규직으로 쓰고 있다. 각 대학들이 ‘높은 취업률’을 홍보 수단으로 삼고, 시설투자의 대가로 대기업 총수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나눠주며 수천억원의 적립금을 축적하는 동안,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감단직 노동자, 시간강사들이 불안정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 비정규직의 보이지 않는 노동 없이 대학은 운영될 수 없다. |백철 기자

감단직은 ‘감시적·단속적 노동자’의 준말이다. 감시 업무, 간헐적인 업무를 하는 노동자란 뜻이다. 대학 건물의 경비원들이나 전기·수도 등 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여타 노동자들에 비해 실질적 업무시간이 적거나 대기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상 주 40시간 근로 및 휴식시간 보장의 예외로 취급되어 왔다. 최저임금 역시 올해 말까지 현행 시간당 4320원의 80%인 시간당 3456원만 인정된다.

감단직 노동자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
이 때문에 대학 감단직 노동자들은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의 경비 K씨(55)는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한다. K씨는 학교 내 80명에 달하는 경비원들이 건물 관리뿐만 아니라 주차장 관리, 교수·직원의 잔심부름까지 도맡아서 한다고 밝혔다. 일부 교수들의 경우, 아침 출근시에 경비원이 건물 안에서 문을 열어주며 정중히 인사를 하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린다고 한다. 휴식시간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하는 11시간 동안 30분 넘게 맘 편히 쉬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1층에서 30분만 넘게 쉬고 있어도 직원들이 눈치를 주기 때문에 6층짜리 건물을 오르내리며 내부 순찰을 돈다고 한다. 이렇게 매일 출근해서 받는 돈은 월 120만원. 월 30일 기준으로 했을 때 최저임금인 114만원보다 약간 높다.

K씨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보일러 시설 담당 기술직 C씨(53)는 격일로 아침 8시에 출근해 다음날 같은 시각에 퇴근한다. 1년 노동시간으로 치면 무려 4380시간으로, OECD 평균 연간 노동시간인 1763시간은 물론, OECD 최장시간인 한국의 연간 2256시간(2010 OECD 팩트북)의 거의 2배에 달한다. C씨는 일하는 시간보다는 직장의 안정성이 문제라고 말했다. 여름이 되면 난방을 할 일이 없기 때문에 학교 측에선 두 달 정도 출근을 하지 말라고 통보한다. 이때가 재계약 시즌이다. C씨는 이 기간에 보통 재계약에 실패하는 경우는 없지만, 직원이나 교수에게 소위 ‘찍힌’ 사람들이 학교를 떠나는 일도 가끔 벌어진다고 전했다.

지난해 말 H대학의 신문은 교내 감단직 노동자의 사연을 절절히 풀어내 주목을 받았다. H대의 노동자 G씨는 C씨와 마찬가지로 격일로 24시간 근무했지만 받는 돈은 100여만원이었다. G씨의 고용형태는 더욱 놀랍다. H대가 용역을 준 업체가 다시 또다른 용역업체와 계약을 한 ‘이중 용역계약’ 끝에 G씨는 H대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공휴일과 연휴 때에도 어김없이 출근했고, 근로계약서에 없는 화단 관리, 눈 치우기까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했지만, G씨는 최근 H대를 떠났다. 학교 측에서 용역 회사를 바꾸면서 자연스레 해고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투쟁본부의 김동애씨가 부산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투쟁본부 제공

이들이 한결같이 원한 것은 고용의 안정성과 경제적 어려움의 해소였다. 일부 대학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록 청소노동자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서울시내 28개 대학 중 11개 대학에서 자발적인 노동조합이 생겼다.(오마이뉴스 실태조사) 여성 비정규직의 경우, 노조가 있는 대학의 평균 임금은 99만5000원으로, 노조가 없는 대학의 92만1000원보다 8% 이상 높았다. 노조의 존재 여부에 따라 인간적으로 휴식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여부도 갈렸다. 홍익대 노동자들은 무노조 시절 휴식시간에도 마음 편히 건물 밖에 나갈 수 없었다고 전했다. 반면 노조 설립 7년이 되어가는 고려대 노동자들은 주어진 휴식시간만큼은 관리자들의 눈치보지 않고 넓은 휴식공간에서 편하게 담소도 나누고 누워서 한숨 자며 보낼 수 있다.

또다른 비정규직 시간강사들 역시 고용 안정과 경제적 어려움 해소를 위해 고등교육법상 교원 지위를 요구하고 있다. ‘오래된 문제’이기도 한 시간강사 처우 문제는 한 강사의 희생이 있고 나서야 공론의 장으로 올라왔다. 지난해 5월 조선대학교에서 시간강사 일을 하던 서정민 박사(당시 45세)는 전임교수와의 관계,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 이로 인해 높아진 사회적 여론에 밀려 지난해 10월 25일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가 대학 시간강사를 고등교육법상의 ‘교원’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작년 말의 ‘날치기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서서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고용 불안정·경제적 어려움 호소
국회 앞에서 1200일 넘게 천막농성 중인 대학강사 교원지위회복투쟁본부 김영곤씨(61)는 “비정규 교수(시간강사) 문제는 대학 내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공개한 서씨의 유서에 따르면, 두 자녀를 둔 서씨는 2000년부터 10년간 강사를 하면서 월 100만원가량의 돈을 받았다. 넉넉지 못한 수입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졌고, 죽어서도 1000만원가량의 빚을 남겼다. 실제로 교과부가 지난해 ‘대학 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자료, 2009년 국회 국정감사 자료 등에 따르면, 7만명에 달하는 전국 대학 시간강사는 평균 시간당 3만500원, 연간 1012만원(주 9시간 기준)의 돈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88%의 강사가 학기 단위로 강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기준으로 대학 수업의 33.7%를 담당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은 전임교수들과 사실상 같은 일을 하면서도 갖가지 불이익을 받고 있다. 김씨에 따르면 “교수 연구실은커녕 휴게실도 제대로 없는 시간강사들이 강의, 학생지도뿐만 아니라 성적관리, 연구까지 도맡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임교수에게 잘 보여야 임용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교수들의 횡포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서 박사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유서에서 경제적 문제보다도 전임교수와의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의 주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전임교수를 위해 수십 편의 논술을 대필했다는 서 박사는 유서에서 이를 “종속관계”로 묘사했다.

청소부터 강의까지. 아침에서 밤까지. 대학 비정규직은 언제 어디서나 대학이 유지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그들 없이 대학은 단 하루도 유지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