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물]강남 불자 사로잡은 ‘좌파 스님’

명진 스님은 누구인가, 종단 민주화 투쟁 앞장 대중연설의 고수

명진 스님. 그는 지난 2010년 이른바 봉은사 직영 전환과 관련해 세간에 가장 많이 회자된 스님이다. 당시 일요법회를 통해 안상수 대표, 고흥길 의원 등이 거론되고, 청와대 심장부까지 거론하면서 명진 스님의 거침없는 ‘할’은 최고의 뉴스가 되었다. 결국 직영사찰 전환이 이뤄지고, 명진스님은 주지에서 물러났지만, 부주지로 자신을 보좌하던 진화 스님을 후임 자리에 추천해 관철시키면서 봉은사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직영 전환은 막지 못했지만 봉은사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타협을 이뤄낸 것이다. 동안거를 마치고 나면 명진 스님은 봉은사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회주(會主) 등 상징적 소임을 맡겠지만, 봉은사에 대한 영향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김석구 기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지도자로 선정되기도 한 명진 스님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세상을 움찔거리게 하는 ‘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일까. 말 잘하기로 소문난 고수 정치인들조차도 일단 그에게 걸리면 전전긍긍하며 맥을 못 추는 건 무엇 때문일까.

“종단 개혁되지 못한다면 승복 벗겠다”
명진 스님의 진면목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궁금증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필자가 명진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스님이 대승불교승가회를 조직해 활동할 때다. 당시 혜화동의 허름한 주택 2층에 사무실을 두었는데, 스님들은 그곳에서 직접 밥도 짓고 라면도 끓였다. 군사정권 하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차츰 관심이 종단 민주화의 필요성 쪽으로 옮겨가던 시절이었다.
명진 스님은 당시 독일을 방문해 그곳의 민주인사들과 교유를 하고, 국내에서도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감옥에 간 것도 그때쯤이다. 체포되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스님의 사진은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기록이 되었다.

당시에도 명진 스님에게는 늘 선기(禪機)가 흘렀다. 거침이 없었고 시원시원했다. 결단을 할 때는 결단할 줄 아는, 또 어떤 제스처가 필요할 때면 가장 적절한 제스처를 구사할 줄 아는 타고난 인물이었다.

김석구 기자

그가 1994년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고 종단내 민주화를 이루는 종단개혁 당시, 조계사에서 수천 스님들을 앞에 놓고 행한 연설은 지금도 회자되는 광경이다. “이 종단이 개혁되지 못한다면 기꺼이 승복을 벗겠다”며 가사를 벗어 법당 앞에 놓고 쩌렁쩌렁 내뿜던 연설을 보며 사람들은 사자후를 목도했다.

이때부터 명진 스님에겐 가장 대중연설을 잘 하는 스님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 힘은 말할 것도 없이 오랜 선수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은사인 탄성 스님도 선사로 이름난 분이지만, 명진 스님에게 실질적인 스승은 현재 한국불교 최고의 선승으로 존경받는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용주사 조실)이다. 송담 스님은 한국불교 근세의 선지식으로 이른바 ‘북 전강 남 경봉’ 시대를 이끌었던 전강 대선사의 선맥을 이은 종장이시다.

그런 그가 봉은사 주지에 취임한 것은 일종의 사건이었다.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천지 사방을 떠도는 자유로운 바람 같던 그는 표현대로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를 잡듯이’ 봉은사 주지라는 ‘전생의 복덕이 없으면 맡기 어려운 자리’를 맡았고, 그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1000일 기도에 들어갔다. 사판 경력이라고는 학승들에게 이끌려 1987년 서울 개운사 주지를 1년 한 것이 전부인 명진 스님은 성철 스님이 있던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해 해인사와 경북 문경 봉암사 선방에서만 20여년을 보냈다. 1982년 관광객들이 휘젓던 봉암사의 산문을 폐쇄해 1940년대 봉암사 결사의 선맥(禪脈)을 다시 세우는 데 앞장섰다.

선방에서 20년 보내다 봉은사 주지로
오랜 선수행 이력과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된 경력, 종단개혁의 선봉 등 독특한 이력 탓으로 그가 봉은사 주지에 임명됐을 때, 강남의 불자들은 그리 흔쾌히 여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명진 스님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강남의 불자들이 ‘좌파’ 스님을 사랑하게 된 아이러니가 현실이 된 것이다.

한 3년은 감옥생활을 했어야 했는데 두 달밖에 못해서 창피하다는, 잘못한 행보를 하면 그가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유력정치인이든 가리지 않고 꾸짖는, 어느 누구든 그의 법문이나 연설을 듣고 있노라면 시나브로 동화되어 절로 박수를 치게 만드는 명진 스님. 지난해 한 행사장에서 스님을 만났을 때 기자는 ‘스님께선 지금 한국불교 1700년 역사에 없던 일을 하고 계시다. 우리 역사상 어느 스님이 왕(대통령)을 이토록 거침없이 꾸짖은 적이 있었는가’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파안대소하던 명진 스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또 지난해 3월 봉은사 직영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인터뷰 자리에서 “봉은사 주지 자리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다. 봉은사에서 어렵게 일군 한국불교의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 이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불끈 주먹을 쥐던 명진 스님. 조금은 거칠고 또 아주 많이 아슬아슬하지만 그에게서 만해와 만공 선사의 기상을 느끼는 이가 필자뿐일까.

이학종<미디어 붓다 대표기자> urubell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