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물]“봉은사 직영은 청와대 의중 반영”

봉은사 외압 폭로한 김영국씨

2010년 3월 21일 명진 스님은 서울 삼성동 봉은사 법회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 13일 오전 7시 30분 프라자호텔 식당에서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놔둬서 되겠느냐’고 한 얘기를 들었다”며 봉은사 직영 외압설을 제기했다.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는 부인했다. 그러나 프라자 호텔 만남에 동석했던 김영국씨(당시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는 이틀 뒤인 3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봉은사 외압은 모두 사실이다”라고 폭로했다. 이동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기자회견 전날 김영국씨에게 기자회견을 취소하라며 외압을 가했다는 주장이 추가로 제기돼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홉 달이 지나 해가 바뀌었다. 그 사이에 안상수 의원은 원내대표에서 당 대표가 됐고, 이동관 홍보수석은 지난해 7월 청와대를 떠났으나 연말 개각에서 언론특보로 청와대에 복귀했다. 김영국씨를 지난 1월 7일 종로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봉은사 직영 관련 외압설 의혹 기자회견 이후 9개월 남짓 지났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연경 사회문화정책 연구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연구소 출범을 준비 중이다. 불교계 차원에서 사회정책과 문화정책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을 하려 한다. 1월 말 창립과 동시에 1차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기자회견 이후 힘들지 않았나.
“나야 어차피 불이익을 각오하고 한 일이어서 괜찮았지만 주위 사람들을 괴롭힌 셈이 됐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다. 현 정권이 나를 만난 사람들을 상대로 내 행적을 캐묻고 다닌 모양이다. 내가 누굴 만나고 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김영국을 어떻게 아느냐,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위축돼서 나한테 연락하는 걸 꺼리게 되고, 나도 그런 얘길 듣고 나니 연락을 자제하게 됐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중진급 스님들로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분들이었다. 정부가 그분들을 예의 주시해왔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기자회견 하루 전날 이동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외압을 행사한 것과 관련해 이 수석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까지 당했다. 당시 다른 외압은 없었나.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기자회견 전날에는 아예 전화기를 꺼놨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전화가 엄청나게 왔더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었다. 기자회견 전날 나와 만나 기자회견 철회를 요청한, 청와대 소속 인사라고 알려졌던 이는 내 후배다. 순수하게 나를 걱정해서 전화한 것으로 생각하고 연락해서 만났던 것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이동관 전 수석이 청와대 언록특보로 복귀한 개각 인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오죽하면 그렇게 했겠나 싶다.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해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가 좌파 스님 발언에 대해 ‘기억은 안 나지만 사과한다’는 식으로 사과했다. 그러고는 최근 ‘자연산’ 발언을 한 자리에서 ‘사실 그때는 억울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안상수씨가 왜 억울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그럴 거라면 왜 사과를 한 건가. 억울하다는 말도 공식적인 인터뷰를 통해 한 것이 아니라 ‘자연산’이니 뭐니 헛소리를 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며칠 전 봉암사에서 명진 스님께서 한마디 하시더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최근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손학규 현 민주당 대표와도 인연이 있다.
“손학규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시절 도지사 홍보특보로 일했다. 2006년 유력한 한나라당 대선후보군이 이명박씨, 박근혜씨, 손학규 대표였다. 2006년에 이명박씨를 두 번 만났다. 나한테 ‘손 대표는 가능성이 없으니 나와 같이 일하자’고 했다. 두 번은 거절했는데 세 번 만나면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한나라당에서 10년 이상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명박씨든 박근혜씨든 대선후보가 되면 도와야 할 상황이었는데, 이념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내 정체성이 그 두 사람과는 안 맞았다. 그래서 2007년 2월 2일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대학 시절 은사였던 지관 스님(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을 찾아갔다. 총무원 종책특보로 일했다.”

봉은사 직영 전환이 청와대의 외압 때문이었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나.
“봉은사 직영은 청와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직영할 이유가 없다. 봉은사 재정이 한해 120억원 정도인데, 직영할 경우 총무원이 가져갈 수 있는 돈은 10억원 정도다. 총무원 재정 때문에 직영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정권 차원의 불교 폄하로 비칠 만한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일반 신자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불자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편향이 아니냐는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다. 불교계와의 갈등은 정부가 기독교적인 시각을 갖고 행정을 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템플스테이만 하더라도 불교 사업이 아니라 정부 정책사업이다. 정부는 예산을 깎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예산을 주면 마치 선심 쓰는 것인양 여긴다. 나는 조계종이 템플스테이 예산만 반납하는 게 아니라 템플스테이 사업 자체를 반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관계에서 조계종 총무원의 입장이 모호한 것 같다. 봉은사 직영 외압 논란이 터졌을 때는 정부를 비판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예산안 처리 통과 이후에는 강경한 입장이다.
“명진 스님이 봉암사 법회에서 ‘불교계가 예산 몇 푼에 정부에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며 ‘정부의 종교편향, 민족문화에 대한 무지 등이 드러난 만큼 총무원과 자승 원장스님이 불교의 자주성을 내세워 정법대로 간다면 헌신적으로 도울 생각’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얘긴 거꾸로 쇼하지 말라는 얘기다. 예산안 날치기 통과 이후 총무원장이 정부·여당 인사들의 사찰 출입을 금지한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본심이 아니다. 한두 달 금지했다가 다시 슬그머니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스님들 생각은 어떤가.
“조계종 지도부가 정권과 밀착해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한다. 지난해 기자회견 직후 불교문화재단 대외협력위원 일을 그만두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친분이 있는 스님들을 만나면서 지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모두 그렇게 얘기한다. 공개적으로 말하는 분들은 드물다. 그러나 한국 불교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들 생각한다. 그동안은 명진 스님만이 목소리를 내왔지만 앞으로는 다른 스님들이나 불자들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동안거가 끝나면 명진 스님은 어디로 가나.
“명진 스님은 ‘중이 어느 절에든 못 가겠느냐’며 ‘이 정권을 그냥 두고볼 순 없지 않겠나’라고 말씀하신다. 스님 말씀이 맞다. 이 정권이 끼리끼리 나눠먹고 있지 않나. 서민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경제는 엉망으로 만들고, 안보는 불안하게 하지 않나. 명진 스님은 이런 정권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차원에서 활동할 것이다. 명진 스님을 지지하는 스님들과 재가신도들도 그분을 도와드려야 한다.”

<글·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