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인물-손학규]살가운 스킨십, 소탈한 대중연설

가까이서 본 손학규

이러면 대가리 박기를 못하잖아. 군인정신은 대가리 박기와 선착순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지난 12월 27일, 경기도 연천군의 한 군부대를 찾아간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장병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개인별 침대 배정 등 막사 환경이 개선되다보니 막사 안에서 속칭 ‘대가리 박기’라는 얼차려를 주기가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말을 농담삼아 한 것. 군대 이야기는 한국 남자의 영원한 대화 주제이자 안주감이라던가. 아니나 다를까, 동행한 국회의원 몇몇이 뒷전에서 “한 번 병장은 영원한 병장이란 건가?”, “근데 손 대표가 얼차려나 줬을까? ‘잘 해’ 이러고 말았겠지”라고 소곤댔다.

손학규 대표가 2010년 12월 25일 수원역 앞에서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손학규 대표가 주변을 대하는 태도는 소탈하고 살갑다. 주변과의 스킨십도 꽤 자연스러운 편이다. 12월 9일부터 시작된 민주당의 민생대장정을 동행해 취재하다보니 이런 모습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매서운 모습과는 딴판이다.

“국민 여러분께 야속하다” 투정
예컨대 겨울 바람이 매섭던 서울광장에서는 이인영 최고위원의 목도리를 매만져줬다. 목도리가 풀어지자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그동안 이 최고위원은 엄마, 아빠의 손길을 받고 있는 아이처럼 다소곳한 표정이었다. 대표실에서 진행된 회의에서는 배석한 다른 국회의원의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질해주기도 했다. 아마도 이러한 살가움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치명적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손 대표가 당심을 잡을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이었을 것이다.

손 대표의 연설도 정치인으로선 수수한 편이다. 지난 12월 10일 서울광장 즉흥연설이 좋은 사례다.

“국민 여러분께서 야당을 욕하지만 저희도 국민 여러분께 야속한 게 많습니다. 저희가 국민 여러분 앞에 나왔습니다. 봐달라고 나왔습니다. 저희 힘에 부친다고, 저희끼리 안되겠다고,여러분 저희 손 좀 잡아달라고 이렇게 나왔습니다.”

시종일관 격앙된 목소리였다. 서명대 앞을 지나가던 시민이 “왜 민주당이 먼저 폭력을 가해서 빌미를 주느냐”는 취지의 말을 하자, 이를 듣고 이런 즉흥연설을 한 것이다. 유권자인 국민은 정치인에겐 일종의 성역이고 금기다. 국민을 비난하거나, 야속한 감정을 말로 드러내는 정치인은 흔치 않다.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를 비난하지 않고 여야의 국회 폭력으로 몰고가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던 터에 민주당 탓을 하는 말을 듣자 미처 (정치적) 계산을 할 틈도 없이 튀어나온 ‘국민 여러분께 야속하다’는 투정 같은 호소는 제1야당의 대표답지 않은 의외적 소탈함을 보여준다.

손 대표는 말을 잘 하는 편이기는 하나 말을 잘 ‘만들지는’ 못한다. 손 대표의 대중연설은 세련되기보다는 우직하고, 날카롭기보다는 투박하다. 비난할 때도 단지 ‘이명박 정부는 참 나쁘다’, ‘한나라당 정권, 이상한 사람들이다’라고 할 뿐 독한 인신공격은 잘 하지 않는다. 화려한 수사나 비유도 많지 않고, 말투도 투박한 구어체에 가깝다.

이는 ‘말로 먹고 살아야 하는’ 정치인 손학규에게는 마이너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외의 소박함이 대중들에게 친밀감으로 다가간다면 ‘한나라당 출신’ 야당 대표 손학규에게는 한편으론 플러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