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천안함 침몰에 ‘비통’, 연평도 포격에 ‘철렁’

올해의 사건 사고, 트위터 열풍에 공정사회 신드롬

사회는 복잡한 인과관계와 영향관계로 엮여 있는 하나의 네트워크다. 한국 사회라는 커다란 네트워크 안에서 여러 사건들은 서로 밀도를 달리하며 다른 사건들과 연결돼 있다. 2010년 한 해 동안 여론의 관심을 모았던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월 23일 북한군 포격으로 연평도가 포연에 휩싸여 있다. |이상훈 기자

올해는 연초와 연말에 북한 관련 초대형 사건이 터졌다. 지난 3월의 천안함 침몰 사건과 11월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다. 그 어느 해보다 한반도 안보 위기가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지난해에도 북한이 위성을 탑재한 로켓을 발사하고 잇달아 2차 핵실험까지 강행하면서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됐지만, 북한 공격으로 지목되는 천안함 침몰과 한국전쟁 이후 남한 영토에 대한 최초의 직접적 무력 공격으로 기록된 연평도 포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3월 26일 21시 22분(국방부 최종 발표) 백령도 해상에서 해군 제2함대 소속 1200톤급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해 해군 장병 46명이 실종됐다.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국방부의 공식 발표와 진보개혁 진영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이 엇갈렸다.

정부는 지난 5월 20일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 발표를 통해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합조단은 발표와 함께 ‘1번’이라고 표시된 어뢰 추진체를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양판석 교수(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분석과 분석실장), 이승헌 교수(미국 버지니아대 물리학과)와 언론 3단체 천안함 공동조사위는 어뢰 추진체 흡착물질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지방선거 여권에 역풍 불러
천안함 후폭풍은 정치판을 흔들어놓았다. 합조단 천안함 침몰 진상규명 발표는 6·2 지방선거를 불과 열흘 남겨둔 시점에서 발표됐다. 야당과 진보개혁 진영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한편으로 천안함 침몰 이후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를 덮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보 불안을 선거에 활용하려는 전형적인 북풍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과는 천안함 사건이 오히려 여권에 역풍으로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지방선거를 통해 광역단체장(16곳 중 12곳)과 기초단체장(230곳 가운데 155곳)에서 압승했던 한나라당은 6·2 지방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6곳과 기초단체장 81곳에서만 승리했다. 지방의회도 여소야대 구도로 재편되면서 선거연합에 참여한 야당들의 공동지방정부 실험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됐다.

지방선거는 소셜네트워킹 서비스인 트위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젊은 세대의 투표를 결집시킨 것이 휴대폰 문자 메시지였다면, 6·2 지방선거에서는 트위터를 통한 투표 독려 현상이 두드러졌다. 트위터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새로운 1인 미디어로 부상했다. 지난 8월에는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 관련 글이 트위터를 타고 빠른 속도로 퍼졌다. 개정안은 이미 6개월 전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기성 미디어는 이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 트위터는 기성 미디어가 놓친 특종을 알리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속보 경쟁에서도 앞서 나갔다. 지난 10월 1일 부산 해운대 아파트 화재 사고를 생생한 현장 사진과 함께 가장 먼저 전달한 것도 트위터 사용자였다.

윤덕용 민군합동조사단장이 지난 5월 20일 국방부에서 천안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방선거 패배로 정국 주도권이 약화된 정부는 개각을 통해 면모를 일신하려 했지만, 장관 내정자들의 월권, 병역비리, 재산형성 의혹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오히려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등이 결국 사퇴했다. 장관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는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이후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프레임이 돼버린 ‘공정사회’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과정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비리의혹이 있는 후보자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견제 여론이 형성되면서 ‘국민 검증시대’라는 말이 통용되기도 했다.

공직 후보자 각종 의혹으로 잇따른 낙마
‘공정사회’는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공정사회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출판계는 올 한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정의란 무엇인가>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베스트셀러가 된 배경에 정부가 내세운 공정사회 구호가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서양 철학사의 정의 개념을 살핀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금까지 60만부가 넘게 팔렸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신자유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11월 초에 출간된 후 한 달 만에 15만권이 넘게 팔리면서 지금까지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공정사회 열풍이 함축하고 있는 ‘상식과 정의가 통용되는 사회’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지난 가을 여론을 들썩이게 만든 타블로 학력 논란을 이해하는 맥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인터넷 카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와 ‘상진세’(상식이 진리인 세상)를 중심으로 제기된 타블로 학력 논란은 결국 상진세 카페가 자진 폐쇄되고, 타진요 운영진에 대한 인터폴 수사 요청으로 마무리됐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지난 10월 「Weekly경향」에 기고한 글에서 타블로 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한 네티즌들의 경우 황우석 교수를 지지했던 이들과는 달리 “사회 정의를 위해서 진실이 승리해야 한다는 ‘신념’이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틀린 것으로 판명되긴 했지만, 이들이 비합리적인 우중이기는커녕 ‘정의’와 ‘상식’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바탕으로 나름의 합리적 추론을 통해 의혹을 제기했다는 얘기다.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에는 서해 연평도 해병대 기지와 민간인 마을에 북한군이 쏜 포탄이 떨어졌다.사망자는 민간인 2명과 군인 2명으로 김대중 정권 당시 1, 2차 연평해전보다 적었지만, 그 충격은 비교할 수 없이 컸다. 휴전 이후 최초의 남한 영토 포격으로 연평도 주민들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 행렬을 연상케 하며 육지로 피신했다. 천안함 침몰의 경우 북한의 공격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지만, 연평도 포격 사건은 북한의 도발임이 명확했다. 국민들은 한반도가 휴전 중이라는 사실을 몇십 년 만에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한반도 안보 불안은 이 사건을 계기로 최고점에 도달해 아직까지 그 수위가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0년은 천안함 침몰로 시작해 연평도 포격으로 끝난 한 해였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