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2010년 함축한 올해의 말

미국‘Refudiate’, 일본 ‘서(暑)’, 중국 ‘창(漲)’ 선정

한 해를 정리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미국인들은 해마다 ‘올해의 말(Word of the Year)‘을 선정하는 것으로 한 해를 정리한다. 미국인들이 선정한 2010년 올해의 말은 무엇일까. 미국 사회의 정치·문화·사회 지형이 그 한 단어에 압축적으로 들어 있다.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지난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던 그는 지난 7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사전에 없는 단어를 쓰면서 ‘올해의 말’ 주인공으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AP/연합뉴스

‘Refudiate’. 뉴 옥스퍼드 아메리칸 사전(New Oxford American Dictionary)이 선정한 ‘2010년 올해의 말’이다. 주인공은 지난 200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던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다. 안타깝게도 이 말은 번역할 수 없다. 기자의 영어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 말은 영어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다. 그렇다면 미국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신조어인가? 그것도 아니다. 이 말은 페일린이 ‘발명한’ 단어다.

잇단 말실수로 미국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던 페일린은 올해도 ‘한 건’ 했다. 지난 여름 미국은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9·11 테러 발생 장소) 인근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페일린이 이 논란에 끼어든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지난 7월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이슬람 사원 건립을 거부하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면서 발생했다. 문맥상으로 보면 페일린은 ‘거부하다’는 뜻을 가진 ‘repudiate‘를 사용했어야 한다. 그런데 페일린은 ‘refute(논박하다)’와 ‘repudiate‘를 합성한 것으로 보이는 ‘refudiate’를 사용했다. 단순한 실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지난 대선에서 ‘무식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자질 논란에 휩싸였던 터라 미국인들은 이 또한 그의 지적 빈곤을 드러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 편집자는 지난 11월 15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지난 7월에 이미 이 말이 올해의 말에 등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면서, 자신을 스페인의 남아공 월드컵 우승을 맞힌 독일 문어 ‘파울’에 비견하는 너스레를 떨었다.

미국 방언학회 지난해 ‘트위트’ 선정
‘올해의 말’ 가운데 미국에서 보다 유명한 것은 미국 방언학회(American Dialect Soceity)가 선정하는 ‘올해의 말’이다. 이 학회가 선정한 ‘2010 올해의 말’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투표 결과가 이듬해 1월에 발표되기 때문이다. 이 학회가 선정한 2009년 ‘올해의 말’은 ‘트위트(tweet)’였다.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해마다 ‘올해의 한자’를 선정한다. 일본인들은 올해의 한자로 더위를 뜻하는 ‘서(暑)’를 뽑았다. 1995년부터 공모를 통해 올해의 한자를 선정해온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는 지난 12월 12일 ‘올해의 한자’로 ‘서’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한 달 동안 응모에 참여한 28만5406명 중 1만4537명이 이 한자를 추천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올해는 기록적인 무더위로 열사병 환자가 속출했고, 채소가격이 급등하는 등 서민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 선정 배경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은 한자는 ‘중(中)’이다. 센카쿠 열도 영유권 문제로 일본과 날카로운 긴장관계를 형성한 중국을 뜻하는 한자다. 민주당 정권이 등장했고, 신종인플루엔자가 기승을 부린 2009년에는 ‘신(新)’이 올해의 한자로 선정됐다.

중국 네티즌들은 올해의 한자로 ‘오르다’는 뜻인 창(漲)을 꼽았다. 11월 채솟값이 1년 전보다 62.4%나 상승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창’은 지난 2007년에도 올해의 한자로 선정된 바 있어, 물가상승에 대한 중국인들의 우려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