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동네골목상권 ‘자영업 잔혹사’

이마트 피자·롯데마트 통큰치킨에 밀린 500만명 “안전지대가 없다”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수가 올해 5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경제활동인구(2406만3000명)의 20.8%가 자영업자인 셈. 자영업이 돈이 되기 때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의 2배를 뛰어넘는 국내 자영업자 비율은 외환위기와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기업 구조조정 등에 의한 인력 감축과 명예퇴직, 제대로 된 일자리 부족을 반영한 수치다.

자영업자의 삶은 갈수록 팍팍하다. 대형 할인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밀리고 이마트 피자, 롯데마트 통큰치킨 등에 쫓긴 사면초가 신세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송년호를 맞아 동네 골목에서 늘 마주치는, 장사하는 우리 이웃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서울시 금천구의 상권 중 하나인 독산동 금천우체국 뒤 골목 모습. |조득진 기자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 금천우체국 뒤 1013번지 일대. 이렇다 할 번화가가 없는 금천구지만 이곳은 시흥사거리 일대와 함께 금천구 내에서 손꼽히는 상권이다. 시흥대로를 사이로 건너편에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극장을 낀 대형쇼핑몰 등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까닭에 이 일대는 식당과 주점, 노래방, 부동산 등 서비스업종들이 밀집해 있다. 한파주의보가 내렸던 지난 12월 15~16일, 서민들이 모여 살고, 또 그들을 상대로 서민들이 장사하는 이곳을 찾았다.

“대기업이 6~7평 매장 밥줄도 빼앗느냐?”
동네 사람들이 ‘50m 도로’라 부르는 시흥대로에서 ‘20m 도로’라 부르는 독산동길 사이를 잇는 주상권의 길이는 약 150m 정도. 3~4층 건물이 촘촘히 줄을 잇고 서있는 이곳의 매장은 어림잡아 150여곳으로 파악됐다. 이 중 호프집이 18곳으로 가장 많았고, 부동산과 노래방도 10곳이 넘었다. 이어 고깃집이 7곳, 곱창집과 학원이 각각 6곳, 미용실과 분식집이 5곳, 피자집과 감자탕집이 3곳이었다.

“쇼핑몰과 극장이 생기면서 젊은층을 많이 끌어들였고, 그 때문에 이곳 골목상권도 젊은층을 상대로 한 저렴한 주점과 식당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게 상권 입구 ㅅ부동산 박 사장의 말이다. 이곳에서 개업한 지 4년이 다 되어간다는 박 사장은 “150개 남짓한 매장의 흐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브랜드 있는 매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며 “특히 젊은층을 겨냥한 퓨전형 주점으로 업종 변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개별 브랜드로 개업했다가 프랜차이즈의 마케팅에 밀려 금방 장사를 접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래서인지 이곳 상권엔 음식점을 중심으로 낯익은 브랜드가 상당했다.

골목에서 가장 큰 규모의 ㄷ치킨집 이 사장은 7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손님이 몰릴 저녁시간을 대비해 생닭을 초벌로 튀겨내고 있던 그는 “이렇게 40~50마리를 먼저 1차로 튀겨내고 손님이 오면 다시 잘게 잘라서 2차로 튀겨 내놓는다”며 “준비한 것을 다 팔고 추가로 주문을 받아야 그때부터 진짜 수익”이라고 말했다.

“2007년이 가장 호황이었다”는 그는 “하지만 최근엔 치킨집이 하도 많이 생겨서 이렇게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17년 동안 덤프트럭을 운전하던 그가 치킨집 사장으로 변신한 것은 건설업의 하향세 탓이었다. “일 나가는 횟수도 줄고, 또 마침 아내도 작은 호프집을 하고 있던 터라 트럭 팔아 만든 자본금으로 가게를 냈다”는 그는 “나는 주방에서 일하고 아내는 카운터와 홀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하지만 홀서빙 아르바이트와 배달원 인건비, 재료비를 빼면 수입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속없게 웃었다.

이 사장 부부가 이것저것 제하고 집에 가져가는 돈은 월 평균 500만원 정도. 근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치킨집이라 손님이 많긴 하지만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가져가는 수익금이 상당해 부부 두 사람 인건비에 불과하다고. “최근 5000원짜리 롯데마트 치킨 때문에 마치 우리가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프랜차이즈 본사에 들어가는 부분이 많다”며 “생닭뿐만 아니라 튀김옷이나 식용유, 무 등도 본사에서 제공하는 것만 받아야 하는데 그 부재료 가격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탓에 폐업 위기 몰리는 동네 사장님들
이 사장의 가게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골목 안쪽으로 두 블록 지나 위치한 ㅌ피자집의 최 사장은 요즘 업종전환을 고민 중이다. 인근 시흥동에서 아내와 분식집을 하다가 2년 전 이곳 상권에 피자집이 적은 것을 보고 문방구 바로 옆 매장에 자리를 잡았다는 최 사장. 그러나 피자헛이나 도미노피자 등 대형 피자업체들이 도로마다 배달전문점을 오픈하면서 위협받기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승부를 걸었지만 최근 이마트가 대형 피자를 1만1500원에 내놓으면서 가격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원 인건비 주기도 힘들어 몇달 전부터는 주방을 아내에게 맡기고 내가 배달에 나섰다”는 최 사장은 “몇천평 대형매장을, 그것도 전국에 수백개 운영하는 대기업이 6~7평도 안 되는 이 조그만 매장의 밥줄까지 빼앗아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독산동길 상권 맞은편엔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대형쇼핑몰 등이 자리하고 있다. 대형 할인마트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지만 수익 역시 이곳이 빨아들인다. |조득진 기자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각종 경기지수는 파란불을 나타내고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들은 폐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동네 사장님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경기가 지표상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며 한숨소리가 터져나오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상은 SSM 문제로 주목받는 슈퍼마켓 사장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형마트 내 서점과 화장품 코너를 비롯해서 임대형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세탁소, 커피전문점, 안경점, 금은방 등이 독점적 지위로 인근 상권을 빨아들이면서 골목 상권의 하루하루가 고달파지고 있는 것이다.

골목 중간께에서 화장품 가게를 하는 홍 사장은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반강제 명예퇴직을 한 경우다. “별도직군이었으니 명예퇴직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그녀는 “남편은 사업에서 망하고 친구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아이들 교육비를 댈 수 없어 3년 전 가게를 열었다”고 말했다.

젊은층이 많고 대형마트 주변이라는 이점에 눈길이 갔다는 홍 사장. 그러나 착오였다. 대형마트 두 곳에서는 중저가 브랜드에서부터 화장 관련 소품들까지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어 그의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은 이미 ‘구매 후’였던 것이다. 게다가 지난 봄엔 골목 입구에 화장품과 액세서리를 구비한 대형 천원숍이 들어서면서 그나마 있던 단골손님들도 발길이 끊겼다.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등 투자금 1억원이 휴지조각이 됐다”는 홍씨는 “그렇다고 문을 닫고 있으면 매장 가격이 떨어질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부동산이라고 사정이 다를 리 없다. 골목 입구 ㅅ부동산 박 사장은 “그나마 중국 교포들의 거주지가 인근 가리봉동을 지나 독산동까지 넘어오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전세·월세 수수료로 연명한다”며 “부동산경기까지 사라져 아마 부동산중개업소가 가장 배 고플 것”이라고 말했다. 1986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 4월 폐점업소 수가 개점업소 수를 넘어선 부동산업계는 추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박 사장은 “사실 음식점과 주점이야 대형마트 영향을 받지 않지만 세탁소, 안경점, 화장품점, 슈퍼 등은 인건비도 못 건진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며 “결국 제 가게 말아먹으면 남의 가게에 가서 일하는 수밖에 더 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2월 9일 국세청의 발표에 따르면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세무서에 세금신고를 하는 자영업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자영업자 수는 2007년 452만명, 2008년 473만명에서 작년 말 487만명을 기록했고, 올해 말에는 5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41만명에 비해 14년 만에 2배가 늘어난 것으로, 국내 경제활동인구(2406만3000명)의 20.8%가 자영업자인 셈이다.

이는 고정사업장이 없는 보따리상이나 노점상 등까지 포함하는 통계청 분류상 자영업자가 2005년 617만명을 정점으로 10월 말 현재 562만명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밑바닥 자영업자들이 도시빈민으로 떨어져 나가는 반면 신규로 점포를 내 창업하는 ‘생계형 자영업자’ 수는 크게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5000원 족발·보쌈이라고 안 나올까?
우리 사회는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겪은 이후 구조조정이 가속화한 데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까지 겪으면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조기 퇴직자가 늘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이들이 ‘제2의 인생’을 위해 ‘마지막 보루’로 찾은 것이 자영업. 그러나 경기침체와 대기업의 진출에 이마저도 자리 잡기가 힘들어졌다. “최근 경기회복 과정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의 최대 피해자가 자영업자들”이라는 게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김경배 회장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대형마트들은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올 소매판매액은 작년 대비 3.5% 증가에 그친 데 비해 대형마트는 10.6%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재래시장과 기타 소매점포는 마이너스다. 2010년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서민 창업 업종인 음식업·숙박업의 3년 생존율은 28%, 8년 생존율은 15%에 불과했다. 결국 재래시장과 소규모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대기업의 배만 불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통 대기업들의 서민 상권 침해는 할인마트라는 업태가 들어설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당시 가장 큰 피해자로 지목된 곳은 바로 지역 재래시장이었다. 2008년 이후 표면화된 할인점 매출 정체에 따라 기업형 슈퍼마켓인 SSM이 들어설 때는 동네 구멍가게들이 분노했고 이마트 피자로, 롯데마트 치킨으로 대형 유통업체들의 보폭이 넓어질 때마다 논란의 불똥은 서민 상권으로 옮겨 붙었다. 그러나 이들 대형 유통점들의 경우 매출 정체에 그쳤을 뿐 순이익은 계속 늘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막강한 구매력을 통해 매출이익률을 계속 높여왔기 때문으로, 이마트와 롯데의 동네상권 진출은 기업의 생존이 아니라 확대성장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서민경제를 대표하는 자영업자들의 체감경기를 살려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영업자가 문을 닫으면 거기에 딸린 직원들과 무급 가족종사자도 함께 실업자 대열로 접어들어 사회적으로 심각한 지경에 놓이기 때문이다. 치킨집을 예로 들어보자.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현재 치킨 관련 전체 시장 규모는 5조원으로 가맹점 수만 5만여개. 1개 가맹점당 종업원 수를 최소 1명만 잡아도 자영업자를 포함하면 10만명에 이르고, 가족 구성원을 2명만 잡아도 20만명 이상의 생계가 걸리게 된다. 여기에 치킨 전문점과 연계되는 각종 산업 종사자(원·부자재 납품업자)를 더하면 40만명 이상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게 이 소장의 계산이다. “골목 영세상인이 무너지면 취업자 30%가 무너지는 것”이라는 경제개혁연대의 논평도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상권 제일 안쪽의 ㅂ치킨집 김 사장은 “그나마 롯데마트에서 치킨을 팔지 않겠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에서 팔면 이마트도 팔 거고, 홈플러스도 팔 것 아닌가”라는 그는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치킨집 다 문 닫으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사장의 안도는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다. 기름 값을 낮춘다는 이유로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허가하고, SSM의 기습적 개점이 멈추지 않는 한 ‘소비는 이념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던 이마트 최고위층의 논리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ㅅ부동산의 박 사장은 말했다. “손님을 불러 모으기 위해 피자, 치킨을 파는 대형마트가 떡볶이와 어묵은 왜 못 팔겠는가? 족발·보쌈을 5000원에 팔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그때 가서 또다시 영세상인들이 ‘떡볶이·어묵 파는 상인 다 죽는다’ ‘족발·보쌈 원가가 얼마인데 그렇게 파느냐’고 항변해봐야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안전지대가 없는 자영업자들. 치킨집 이 사장이나, 피자집 최 사장, 화장품가게 홍 사장이 연말이나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매장 문을 여는 이유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