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일본, 하우스푸어 구제책은 없었다

개인 투자책임 국가가 보전 안해… 전세입자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는 없어

19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부동산 용어가 있다. ‘토치고로가시’(とちごろがし·땅을 굴린다는 의미)다. 젊었을 때 대출을 끼고 소형주택을 구입한 뒤 차익을 남기고 되팔기를 반복하면서 재산을 증식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일본 도쿄 긴자 거리.

1981년 일본 도쿄의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1채당 2616만 엔이었다. 부동산 버블의 정점에 있던 1990년에는 무려 6123만 엔으로 올랐다. 10년 만에 2배 이상 폭등한 것이다. 수요가 수요를 부른 결과였다. 임상빈 중앙대 교수(경영전문대학원 일본지역 최고경영자과정)는 “한국의 1990년대 말과 유사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당시 일본에 불었다”고 말했다.

버블 붕괴로 하우스푸어 속출
버블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1989년 미에노 야스시 일본은행(중앙은행) 총재는 부동산 버블 잡기에 매달렸다. 그는 집값 안정을 위해 극단적인 처방을 잇달아 내놓았다. 1989년과 90년 사이에 금리를 무려 3.5%포인트(2.5%→6%)나 올렸다. 대출규제 정책도 병행했다. 그 결과 집값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미에노 총재는 일약 ‘서민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버블 붕괴로 이어졌다. 1991년 1억1520만 엔에 달했던 도쿄 23구내 신규분양 75㎡ 맨션의 가격은 현재 5400만 엔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출을 얻어 집을 산 사람들은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금융선진국에서 채무불이행의 대가는 가혹하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동아시아 고문을 맡고 있는 윤성준씨는 “숫자가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어마어마하게 많은 ‘하우스푸어’가 생겨났다”면서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인 손실 보전을 위한 대책을 전혀 강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에선 본인 책임 아래 투자한 것을 국가가 보전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의 전세입자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는 없었다. 임 교수는 “일본은 전세가 없다”면서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재정지출을 인프라 등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 폭락은 주택 구입자의 신용불량→은행의 부실→기업의 도산→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연쇄적으로 버블 붕괴의 후유증이 드러난 것이다. 일본 정부가 뒤늦게 물량공세를 통해 경기부양을 유도했지만 경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행도 금리를 다시 ‘0%’ 수준으로 내렸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하락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1991년부터 2000년까지 9차례 경기부양책을 통해 124조 엔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었다. 임 교수는 “공적자금의 투자 대부분은 인프라 투자였다”면서 “무분별한 인프라 투자로 재정부담만 확대했다”고 말했다.

어떻든 막대한 재정 투입의 결과 일본 정부의 공적 채무는 무려 949조 엔(2010년 말 현재)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 한 사람당 750만 엔씩 빚을 지게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면서 다소 회복이 되었지만 버블의 정점에 있던 20년 전에 비해 50~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