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서거]‘정국 파장’ 당혹스러운 청와대

‘정치적 타살’ 논란 불씨 가능성… ‘제2의 촛불’ 도화선 될지 주목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정국은 일순 정적에 빠져들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추모의 뜻을 표할 뿐 입을 닫았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 앞에서 정치적 해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폭풍전야 분위기다.

노 전 대통령 측근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타살’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일부 누리꾼은 노 전 대통령을 옭아맨 ‘포괄적 뇌물수수죄’를 패러디해 ‘포괄적 00죄’라고 인터넷상에서 거론했다. 모두 청와대를 겨눈 말이다. 이 표현은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선택하게 할 만큼 ‘무리하게’ 수사한 검찰의 뒤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여권 향후 정국 방향 전환 불가피
노 전 대통령 측근인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은 5월 23일 “이명박 정부가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고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것은 사실상 정치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은 격앙된 목소리로 “노 전 대통령을 모셨던 참모의 입장에서 볼 때 정치적 타살이 맞다”면서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분을 구체적인 물증도 없이 혐의만 갖고, 모욕과 창피를 주기 위해 여론재판을 했다”고 말했다. 이 전직 비서관은 “검찰 수사 뒤에는 당연히 청와대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직 비서관은 “검찰의 수사는 정상적이지 않았다”면서 “삼성 이건희 회장 수사 때도 이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들과 딸을 참고인으로 수사하며 심리적 압박을 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공식 논평 역시 청와대를 향해 있다. 김유정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누가, 무엇이, 왜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했는지 국민과 역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정부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보고받은 후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라면서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지시했다. 한나라당은 “참으로 큰 충격이고 애통한 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노 전 대통령께서 갑작스레 서거하시게 된 점에 대해 충격과 비탄을 금할 수 없다”며 “현재 진행중인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종료할 것”이라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여권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해 최대 예우를 표한 것이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고운 시선만 보내고 있지는 않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여권으로서는 향후 정국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방향 전환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정치적 영향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친이 인사인 권택기 의원은 “할말이 없다”며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 전문가들도 변화 가능성을 추측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씨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검찰 수사가 무리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책임론이 대두할 것”이라면서 “이런 부분이 여권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유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국정 운영을 계속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면서 “반대를 배제한 국정 운영이 아니라 앞으로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치평론가 김종배씨 역시 여권의 국정 운영의 방향이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김씨는 “여권이 국정 운영의 방향을 바꾸더라도 그것은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혹시 (제2의 촛불시위와 같은) 거리정치가 확산될 것을 우려한 차단책에 불과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립적인 성향의 국민이 안티MB 세력의 주장에 동조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예방주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적 타살’ 논란은 향후 정국에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높다. 권택기 의원은 ‘정치적 타살’ 주장에 대해 “지금은 추도할 때고 시간이 흘러간 뒤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따져야지 지금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너무나 안타깝다”면서 “검찰 수사가 문제라기보다 언론에 공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는 진실 규명 차원에서 필요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국민에게 중계되듯 알려진 점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주 의원은 “정치적인 수사라고 할 수 없다”며 “노 전 대통령 주위에서 이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된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본래 뜻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김도종 교수는 “검찰 뒤에 청와대가 있다는 주장을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나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을 볼 때 인간적 괴로움을 표시한 것으로,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길거리 추모’ 어떻게 진행될지 촉각
‘정치적 타살’ 논란이 단순히 논란으로 그칠지, 아니면 지난해 촛불시위와 같은 거리정치가 재연되는 도화선이 될지 주목된다. 만약 제2의 촛불시위로 옮겨갈 경우 이명박 정부는 ‘촛불-글로벌 경제 위기’에 이어 또 다른 해일을 만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 23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분향소가 차려져 수백 명의 시민이 분향했다. 앞으로 ‘길거리 추모’가 어떻게 진행될지 여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한 전직 비서관은 “(현 상황에 대해) 울분은 쌓일 수 있으나 (추모 외에) 거리로 뛰쳐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추모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촛불시위처럼 폭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다수 정치 전문가도 ‘제2의 촛불’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김도종 교수는 “가능성은 있을 수 있으나 (그렇게 번질 정도로) 사회적인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씨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너무 정치적인 공방거리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다”면서 “이 문제 자체로 정국이 극단적으로 제2의 촛불정국으로 가는 것은 당장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김종배씨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권에 직접적으로 파장을 줄 수도 있고 아니면 거리정치를 통해 정국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 사람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대중심리가 작동할 수 있고 검찰 수사의 단초가 된 것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응 여부가 거리정치의 촉발 여부와 폭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정국에 대해 김씨는 “거리 정치가 없다면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면서 “다만 이명박 정부가 미디어법안과 같은 현안을 연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치학자는 익명을 전제로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이 정부도 청렴해야 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점을 각인시켜줬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