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Place]외로운 커피와 웃긴 와플이 있는 곳

특별한 겨울 음식 시리즈 4탄 - ‘어퍼스트로피 에스 굿 테이스트’

12월이다. 그 남자는 12월이 1년 중 가장 낭만적인 시간이라 생각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른 한파가 몰아치든 어쩌든, 12월이 심정적으로 가장 따뜻한 시기임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터! 까닭은, 이 시간과 이 계절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따뜻함과 달콤함을 갈급하기 때문이다. 그 남자뿐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추워질수록 따뜻한 것을 그리워하고, 건조한 삶일수록 달콤한 무엇인가를 고대하며 산다. 외로운 사람이 사랑을 갈급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하고(이건 아닌가), 여하튼 필요가 생산을 낳듯 이 ‘고독삭막우울시린’ 겨울에는 뭔가 따뜻하고 달콤한 걸 그리워하게 된다는 말씀이시다.

기습 같은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주에는, 눈에 띄게 세련되게 변화한 삼청동 길을 걷고 있었다. 신사동의 가로수 길, 홍대 앞 주차장 골목과 함께 어느덧 서울의 3대 명소(그 남자 지정)로 자리 잡은 삼청동 길에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격조 있는 식당과 카페와 옷가게 들이 반짝반짝 예쁘게 늘어서 있었다. 치기와 실험의 중간 정도, 맛과 멋의 중간 정도를 지향하는 이 가게들은 가수 이상은의 노랫말처럼 ‘외롭고 웃긴’ 가게들인데 딱히 뭘 열심히 팔아보겠다는 의지가 안 보인다는 점에서 스스로 ‘외로운’ 가게인 셈이고 도무지 이걸 팔겠다고 하는 건가, 싶은 것을 버젓이 팔고 있다는 점에서 ‘웃긴’ 가게들이다.

오늘 소개하는 ‘어퍼스트로피 에스 굿 테이스트(’s good taste)’도 마찬가지. 이 가게 역시 참 ‘외롭고 웃긴’ 가게다. 삼청동 옆길 효자로 우리은행 옆에 뜬금없이 위치한 ‘어퍼스트로피 에스 굿 테이스트’라는 질리게 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커피와 와플을 내어 놓는 삼청동에서는 흔하디흔한, 그런 가게다. 개성 있는 블렌딩으로 만들어내는 커피가 훌륭하기는 하지만 그쯤이야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마실 수 있는 곳이 적지 않고, 유기농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곁들인 와플도 썩 훌륭하긴 하지만 이 동네에선 그다지 신선한 아이템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그 남자가 ‘어퍼스트로피 에스 굿 테이스트’를 지면에 담아내는 이유는 이 가게야말로 오늘 같은 겨울날 달콤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허리 펼 여유도 없이 빼곡히 모여 있는 삼청동에서 혼자만 뚝 떨어져 나와, 시린 겨울바람을 두세 배쯤 맞아야 하는 곳에서 문을 열고, 뭐 특별한 것을 파는 것도 아니고, 장사 잘 하겠다고 눈을 뻘겋게 뜨고 있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어퍼스트로피 에스 굿 테이스트’에 들어서면, 일단 정신없이 달려가는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은 이내 33㎡(10평) 남짓 되는 좁은 공간에 질서 없이 배치되어 있는 테이블에서 안도감을 느끼게 되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싼 의자에 몸을 묻으며 약간의 흥분을 느낀다. 벽면 전체의 통유리를 통해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을 확인하며, 커피 마스터가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한 잔 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따뜻해져오고 시럽과 아이스크림이 얹힌 와플을 한입 베어물면 이보다 달콤함은 없을 것이라 혼자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추운 날 따뜻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뭔가를 껴입는 것보다, 그보다 더 혹독한 추위를 떠올리는 편이 낫지 싶다. 외롭다면 더 처절하게 외로운 시절을 떠올리는 편이 아무나 만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외롭고 웃기고 달콤한 가게 ‘어퍼스트로피 에스 굿 테이스트’에서 말이다.

어퍼스트로피 에스 굿 테이스트

위치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찾아가는 길 : 3호선 안국역 4-5번 출구 사이 효자로 우리은행 옆)

그 남자의 Place

문의 02-735-9888

그 남자 탁현민 (tak0518@hanmail.net)
이건 맛집 소개도 아니고 지면 광고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칼럼도 아니다. 이건 그냥 그 남자가 가거나, 듣거나, 가고 싶거나 하는 장소와 그 장소에 대한 이야기다. 한양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겸임교수, 캠페인컨설팅회사 (주)P당의 CREATIVE DIRECTOR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