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Place]단호박 스프와 세 가지 만족이 있는 곳

-이탈리아 레스토랑 폴(PAUL)

음식점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일단 맛에 비해 소름끼치도록 음식 값이 비싼 경우가 있다. 맛은 좋으나 너무 비싸 현기증이 날 정도라면, 제대로 식사를 즐기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음식보다 분위기가 우선하는 경우도 문제다. 푸지게 차려 있기를 기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먹는 것보다 보는 것이 많은 경우도 그 남자는 왠지 불편하다.

물론 그 남자는 맛이 좀 없더라도 그 분위기를 즐기며 식사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한 끼를 즐기기보다 한 끼를 때우는 것에 익숙한 민족성 때문인지 ‘음식은 맛’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아!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곳을 찾기란 그렇게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꼭 꼬셔주고 싶은 상대가 생겼다거나 본래 가지고 있는 이미지보다 좀 더 근사하게 보이고 싶은 날이라면 아! 정말 괜찮은 식당 하나,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그런 레스토랑이 사무치게 그리운 법. 해서 올가을 음식과 분위기는 물론 동반한 상대까지 모두 만족스러워 할 만한 곳 하나 소개해드리니 바로 ‘폴(PAUL)’,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다.

위치가 분당이니 특별 시민들 입장에서는 ‘뭘 분당까지 가나’ 싶기도 하겠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여기는 한 끼를 때우러 가는 곳이 아니라 한 끼를 즐기러 가는 곳이니 생각 고쳐 드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분당구민들이야 지근 거리에 있으니 완전 ‘쌩유!’하실 것이라 사료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제대로 신경 쓴 테라스와 마당이 있고 1, 2층 레스토랑 안에도 대충 허투루 가져다놓은 소품 따위는 없다. 이렇게 분위기에 잔뜩 신경 쓴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그릇이나 인테리어가 주는 위압감 때문에 부담스러운 경우도 간혹 있는데, ‘폴’의 경우는 결코 그런 것들이 음식과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으니 안심해도 좋다.

음식의 종류는 다양하다. 피자와 각종 스파게티를 비롯해서 횡성 한우로 만든 스테이크와 별도의 코스 메뉴도 마련되어 있다. 250종류의 와인이 있고, 미국인 소믈리에 노엘 니콜스씨가 직접 서빙까지 하는 친절함과 배려도 돋보인다. 쌀쌀한 가을날 ‘폴’에 찾아간 그 남자는 양고기 스테이크와 단호박 스프, 그리고 리소토를 먹었는데 그중 단호박 스프의 맛이 아직도 삼삼하다. 단호박의 속을 파내고 양파와 버터, 생크림과 우유를 넣고 닭 육수로 맛을 낸 단호박 스프는 날이 추울수록 더욱 못 잊을 맛을 선사하니, 필히 드셔 보시길 권한다. 메뉴 중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담담한 맛이 있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깔끔함을 선호하는 주방장과 대표의 취향을 반영했다고 한다.

음식 하나하나 특별하게 디자인했다는 느낌은 같은 음식이라도 조금씩 데커레이션이 다른 까닭인데 제대로 된 ‘요리 작품’을 만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다만 흘러나오는 음악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 남자가 조만간 격조(?) 있는 음반을 제공하기로 했는지라 한층 멋진 레스토랑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가을,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창가 자리는 곧 겨울이 오면 마당에 쌓이는 눈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니 가시거든 그쪽으로 자리 잡으시는 것이 좋을 듯.

폴(PAUL)

위치 경기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306-8

그 남자의 Place

문의 031-718-4296

그 남자 탁현민 (tak0518@hanmail.net)
이건 맛집 소개도 아니고 지면 광고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칼럼도 아니다. 이건 그냥 그 남자가 가거나, 듣거나, 가고 싶거나 하는 장소와 그 장소에 대한 이야기다. 한양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겸임교수, 캠페인컨설팅회사 (주)P당의 CREATIVE DIRECTOR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