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Place]오리엔탈 파스타 전문점 알리오 Aglio

이태리식 짬뽕을 알리오(Aglio)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든 이탈리아 정통 파스타 집이 있고 이제는 대충 한 끼 때우기에 적합한 음식 중 하나가 스파게티, 파스타가 되었으니, 왜 그 많은 정통 파스타 집들이 이탈리아에 있지 않고 한국에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 됐다.

피자집이 처음 생긴 1980년대 후반, 멋진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여자후배들을 몰고 피자집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다들 피자라는 음식을 처음 접한 터라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주문해야 하는지 몰랐다. 예나 지금이나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을 남자들은 대부분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보는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하니, 결국 이 따위는 잘 알고 있다는 투로 웨이터에게 주문했다. “가만 있자, 우리가 총 5명이니까. 피자 5개(판)하고 커피 주세요”

낯선 음식을 맞닥뜨릴 때의 긴장은 의외로 상당한 스트레스가 된다. 더구나 편치 않은 사람들 혹은 그가 멋지게 보여야 할 대상 앞에서는 더욱 그러한 법. 이럴 때 ‘그’의 입맛에도 잘 들어맞고(토속적이고), 동시에 이탈리아 정통 레스토랑의 면모에도 뒤지지 않는 그런 곳이 바로 서교동에 있는 알리오(aglio)다. 이탈리아 음식들도 프랑스 음식 못지않게 긴 이름 때문에 난감해질 때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각각의 음식에 친절한 주해(註解)를 달아놓아 실패의 확률을 줄여주었다. 게다가 오리엔탈이라는 수식어 그대로 동양적인, 아니 한국적인 입맛에 맞도록 느끼함을 줄이고 담백함을 살려 보수적인 남자들 입맛에도 그리 부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란드페세

하지만 단지 그 정도 때문에 이곳이 그 남자의 Place가 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밤새 접대로 찢어진 속을 달래야 할 점심 식사 시간. 문제는 약속한 ‘그녀’가 남의 속(?)도 모르고 파스타 집으로 데리고 간 것이었다. 언짢은 표정으로 메뉴판을 뒤적거리던 ‘그’가 발견한 것은 ‘알리오-그란드페세(1만3000원)였다. 메뉴판의 주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태리식 짬뽕’. 그렇다. 그것은 ‘짬뽕’이었다. 해장의 최고봉이며 모든 술꾼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 그래서 ‘짜장면’은 ‘자장면’이라 부를 수 있지만 ‘짬뽕’은 절대 ‘잠봉’이 될 수 없는, 이름부터가 시원한 ‘짬뽕’말이다. 8종류의 해산물과 매콤한 파스타, 청경채와 양배추로 국물 맛을 더한, 두반장 소스와 고추기름까지 들어간 제대로 된 짬뽕 ‘그란드페세’.

작업 중인 그녀와 함께라도 좋고,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해장국집으로도 그만이다. 주문을 하면 아예 포크가 아니라 젓가락이 나온다고 놀라지 마시라, 짬뽕을 포크로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알리오

위치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7-13 W&H B/D 1F

그 남자의 Place

문의 02-312-7775

그 남자 탁현민 (tak0518@hanmail.net)
이건 맛집 소개도 아니고 지면 광고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칼럼도 아니다. 이건 그냥 그 남자가 가거나, 듣거나, 가고 싶거나 하는 장소와 그 장소에 대한 이야기다. 한양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겸임교수, 캠페인컨설팅회사 (주)P당의 CREATIVE DIRECTOR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