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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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정치권 진출 땐 절차와 예의 갖춰야”

[시사와 사람]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지난 4월 9일 열렸던 18대 총선 결과 한나라당은 비례대표를 포함해 총 299석 가운데 153석을 얻어, 81석에 그친 통합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이겼다. 총선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진보세력의 위기, 보수의 질주’라고 말한다. 이번 총선은 통해 진보 진영은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이번 총선은 대학가에도 해결해야 할 화두를 던졌다. 총선 때마다 정치권에 부는 ‘폴리페서’(Polifessor는 Politics와 Professor의 합성어로 정치활동을 하는 교수를 의미) 바람이다. 선거에 출마하는 교수가 휴직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 강의에 전념하기 어렵다. 선거운동 때문에 강의는 강사로 대체되고, 심지어 갑자기 폐강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의 몫으로 남는다.

‘폴리페서 윤리규정’ 건의문 서울대 제출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로 출마한 교수는 총 25명이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김연수 교수가 있다. 경기 남양주(을)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육아휴직계를 냈지만 학교에서 반려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휴직 처리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선거운동을 했고, 선거운동 기간에도 대학에서 월급을 받는 신분이라는 이상한 상황이 된 셈. 김 교수는 선거운동 때문에 ‘근무지 이탈’과 ‘교수 의무 불이행’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떨어졌고,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교수 사회와 학생들이 김 교수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 교수 사태를 계기로 서울대 대외협력부본부장인 조국 교수와 81명의 소장파 교수는 ‘폴리페서 윤리규정’ 건의문을 지난 4월 초 대학본부에 제출했다. 대학본부에서도 이 건의문을 받아들여 폴리페서 견제 장치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이 건의안에는 ▲정당 공천 후보로 출마하려는 교수는 공천 신청 직후까지 휴직계를 제출할 것 ▲후보 낙천 혹은 출마 후 낙선 뒤 복직과 당선 후 임기 만료 뒤 복직은 연구 업적 등에 대한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할 것 ▲선거로 인해 휴직한 경우 복직 후 안식년 없는 의무복무 기간을 부과할 것 등이 담겨 있다.

조국 교수가 이번 건의문 작성에 앞장선 것은 동료 교수들 때문이다. 김연수 교수에 대한 일이 학내에 알게 모르게 퍼지면서 젊은 교수들이 울분을 토했고, 조국 교수에게 이 일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서울대 교수가 정치권에 진출해도 대부분 비례대표로 출마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면 자동으로 휴직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교수의 경우 지역구에 출마했고 선거운동 때문에 수업과 학교 행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국회에 진출한 교수가 생기면 동료 교수들 역시 피해를 본다. 국회의원 교수 때문에 안식년을 쓸 수 있는 교수가 매년 1명씩 줄어들고, 휴직 상태기 때문에 교수 충원도 불가능하다. 그만큼 대학교수가 국회에 진출하는 것은 동료 교수와 학사 행정에 많은 영향을 준다.

“만일 김 교수가 국회의원이 됐으면 자동 휴직 처리되니까 문제가 유야무야 됐을 것이다. 문제 제기를 해도 4년 후에나 가능하니까.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떨어졌고 학교에 다시 돌아와야 하니까 문제가 커진 것이다. 김 교수의 이번 사태는 폴리페서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된 셈이다.”

폴리페서 문제는 선거 때마다 불거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정책 능력을 갖춘 교수를 영입하는 것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학 사회는 이런 문제에 눈을 감고 있었다. 김연수 교수는 폴리페서 문제를 공론화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됐고, 조국 교수와 81명의 소장파 교수는 이 문제를 견제하는 규칙을 만든 동력인 셈. 만일 서울대에서 ‘폴리페서 윤리규정’을 만들면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자연스럽게 국회와 관계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 역시 이 규정에 대해 화답할 것이라고 조 교수는 예상하고 있다.

교수와 정치인 역할 되돌아보는 계기로
그렇다고 해서 조국 교수가 대학 교수의 정치 진출을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 출신 중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행정부의 중책을 맡아 봉사하고, 이후 대학으로 복귀해 행정부에서 쌓은 경험을 강의에 반영하는 모범적 사례도 있다. 조 교수는 실력과 연구 능력 없이 교수 타이틀만 가지고 정치권 진출을 바라는 폴리페서를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권에 진출하고 싶다면 절차와 예의를 갖추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번 건의문을 제출할 때 몇몇 교수에게 ‘왜 같은 직장 사람인데 그러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까지 평교수협의회나 교수협의회에서도 이 문제가 조심스러워서 제기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직교수로서 이 문제는 학교 행정에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느끼고 있다. 서울대 구성원 모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OECD 국가는 대부분 교수가 정치권에 진출을 하면 사직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임명직 장관의 경우에도 대부분 휴직 기간이 정해져 있다.

이번 사태는 교수와 정치인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교수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학문을 깊이 연구하지만, 정치인이 되면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수와 정치인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조국 교수가 4년 전 대학신문에 기고한 ‘교수와 정치-지켜야 할 금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 시대에도 교수는 ‘비판정신’을 유지하며 한국 정치의 풍토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교수가 정치권과 관계를 맺거나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경우에도 지켜야 할 금도는 있을 것이다. 정치의 계절에 대학과 교수의 존재 의미를 되새겨본다.”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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