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사람]차영 통합민주당 대변인

“비례대표 안된 거 서운하지 않아요”

통합민주당(이하 민주당) 차영 대변인. 차 대변인은 한(恨)을 가슴에 묻었다. 그는 광주 MBC 아나운서, 한국영상연구소 전임 강사, 김대중 대통령 후보 미디어 컨설턴트(1992), 조순 서울시장 후보 TV 팀장(1996), 세종문화회관 홍보실장, 청와대 문화관광비서관, KT마케팅 담당 상무 등을 역임한 전형적인 커리어우먼이다.

정치권에서 상품성 있는 그를 내버려둘 리 없었다. 하지만 정치권의 계속되는 러브콜을 거절했다. 성격이 여리고 우유부단한 그는 거칠고 비정한 정치세계에서 버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청와대 문광비서관직을 던지고 미련 없이 비즈니스의 세계로 돌아갔다.

“논평은 단호하게, 그러나 정중하게”
그러나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했다. 그때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야당이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의 전신)이 뿌리내리도록 전공 분야인 브랜드 마케팅 쪽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손학규 대표에게 전화했다. 손 대표와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그가 정계에 입문한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 때문이었다.
“주위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지원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3월 15일 딸이 심장 질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상중에 친정어머니가 부르시더니 아이가 엄마가 국회의원이 되면 어떤 일을 하느냐, 엄마가 국회의원이 되도록 기도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유아교육학과에 다니던 딸은 저소득층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엄마가 국회의원이 돼서 그런 일을 해주길 바랐던 것.

그러나 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손학규 대표의 강력한 추천으로 원래는 비례대표 상위권에 포함됐으나 막판에 교체됐으며, 아예 40번까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서운한 감정을 추스르고 대변인직을 수락했다. “손 대표께서 (비례대표가) 안 될 것 같다고 하면서 미안하지만 대변인을 맡아달라고 했다.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정치라는 것이 꼭 국회의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서민과 약자를 배려해줄 수 있다면 먼저 간 딸의 뜻을 기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정치는 현실이다. 아쉽지 않다”며 비례대표 탈락에 대해 태연했다. 일반적으로 당 선대위 대변인은 당선권에 있는 비례대표가 하는 것이 관례다.

그는 좋든 싫든 상대당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제1 야당의 ‘입’이 됐다. 유권자들은 TV에서 정중하고 침작한 그의 브리핑 모습을 본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 브리핑을 준비하느라 침이 마른다. 그는 유권자들을 유혹해야 할 뿐 아니라 언론도 유혹해야 한다. 언론이 그의 말을 받아 많이 써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총선 기간 내내 시간과 싸움을 치렀다.
그는 대변인을 하면서 상대를 향해 무참히 쏟아내는 ‘저격수’ 역할을 사양했다. “톤을 높이고 사납게 말하는 사람은 당에도 많다. 일부에서는 세게 하라고 요청하지만 나는 품성이 다르다. 멘트는 단호하고 정중하게 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커뮤니케이션 톤은 부드럽고 침착하게 할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뿐 아니라 각 당이 앞다퉈 여성 대변인을 발탁했다. 조윤선(한나라당), 신은경(자유선진당), 이정미(민주노동당), 송경아(진보신당) 대변인이 그들이다. 차 대변인은 사회 상황이 여성 대변인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여야가 극한적으로 대립하던 시대에는 남성 대변인들의 강한 파이팅이 요구되었지만 사회가 안정되면서 여성 대변인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 형식의 브리핑이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남성 대변인을 대체해온 부분이 있다. 사실 여성 대변인이 활약하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정치권서 미디어 컨설턴트로 활약
그는 우리나라에 생소했던 미디어 컨설턴트였다. 김대중 대통령 후보 캠프(1992)와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1996)에서 맹활약했다. 정치에서 이미지 메이킹은 기업으로 보면 상품과 같다. 정치인들의 장단점과 목표를 파악해서 주요한 아이덴티(정체성)를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권자에게 각인시킨다. 연예인들에게 매니저가 있듯이 정치인에게도 컨설턴트는 필수가 됐다.

그가 미디어 컨설턴트로서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은 1995년 민주당 조순 서울시장 후보를 당선시킨 것. 인지도 16%밖에 안 됐던 조 후보가 민자당 정원식 후보를 물리치고 서울시장에 당선한 것은 이미지 메이킹의 성공이었다.

흰 머리와 와이셔츠를 입은 왜소한 조순 후보의 모습으로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서 흰 머리를 감추기 위해 빨간 모자를 쓰게 했으며, 와이셔츠도 흰색 대신 핑크나 파란색 같은 색깔 있는 와이셔츠를 입도록 했다. 조 후보의 복장이 달라지면서 유세 현장에는 청중이 구름처럼 밀려들었고 인지도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탔다. 당시만 해도 컬러 와이셔츠가 귀했던 때라서 색깔 있는 와이셔츠를 구하기 위해 그는 백방으로 뛰었다. 또 당시 인기드라마였던 ‘포청천’을 활용해 조 후보를 ‘포청천 시장’으로 이미지 메이킹 했다.

1992년 김대중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미디어 컨설턴트로 활약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일단 그분의 연설문을 보니까 선동적이었다. 그래서 방송에 맞는 톤으로 바꾸도록 했다.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방송용 멘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때 추진한 것이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플랜’이다. 이런 것이 밑바탕이 돼서 김 대중 후보는 1997년 다시 대선에 도전해서 성공한다.

4월 9일 총선이 끝나면 차 대변인은 사임할 가능성이 크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여의도에 입성한 의원이 대변인을 맡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에게 대변인 이후의 계획을 물었다. “그것은 앞으로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우선 내게 주어진 임무를 열심히 할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든, 사회봉사를 하든 우리 아이가 이루지 못한 것을 할 것이다.”

시사와 사람

차영 대변인은 인도의 전 총리인 네루가 말했던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라는 말을 깊게 새기고 있었다.

<글·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