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문의 길]아프리카! 그 희망의 노래 Tomorrow

케냐 지라니어린이합창단 내한공연

아이들아 해님이 있는 것을 믿어라 암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사랑이 있는 것을 믿어라 사랑이 안 보여도 아이들아 하나님을 믿어라 그분이 침묵하실 때도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항상 길 되신 주 큰 고통 절망 낙심 중에도 너희들은 마음 가득히 천국을 찾아라 너의 가슴 깊은 곳에 울려퍼지는 말은 나의 아이야 힘을 내라 이 어려움을 조금만 참아라 나는 해님을 느껴요 암흑 같은 어둠에도 나는 사랑을 믿어요 사랑이 안 보여도 나는 해님을 느껴요 암흑 같은 어둠에도 나는 사랑을 믿어요 사랑이 안 보여도 언젠가 희망이 와요 행복 가득 넘치며 사랑 충만하리라 희망 넘치리
- Z. Randall Stroope ‘희망의 다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행복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아무리 지금 행복하다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그 행복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행복일 뿐이며, 아무리 지금은 불우하다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만 있다면 그 불우쯤이야 희망으로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다. 지난 1월 9일, 과천시민회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케냐 지라니어린이합창단(단장 임태종)의 앵콜공연. 지난해 11월 내한한 이래 전국을 돌며 20여 차례에 걸쳐 펼쳐온 감동적인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였다.

지라니합창단의 단원들은 케냐 고로고초 출신의 어린이들이다. 고로고초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인근의 슬럼가다.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로 ‘쓰레기장’이라는 말뜻이 시사하듯 나이로비의 모든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으로, 사시사철 쓰레기를 태우는 검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 지저분한 먼지로 뒤덮인 곳이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일용직 근로자로, 쓰레기를 주워가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당연히 이곳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엄마 등에 업혀, 조금 더 커서는 스스로 쓰레기장 주변을 배회하며 자라난다. 쓰레기더미는 그들의 놀이터이자 생활의 터전이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대부분 그들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쓰레기장을 벗어나지 못한 채 쓰레기장에 기대 살아간다.

2005년 11월,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 산하 굿미션네트워크의 회장으로 고로고초를 방문한 임태종 목사는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아이를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쓰레기 중의 한 쓰레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초췌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는 아이의 눈망울은 이미 초점이 흐려져 있었고, 그 아이는 의미 없는 몸짓으로 쓰레기를 뒤지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입으로 가져가기까지 했다. 충격을 넘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는 압박이 그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저 아이에게 희망이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일까. 그러나 저 아이가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면,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과 존귀함을 노래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노래가 모든 이의 가슴속에 희망으로 울려 퍼질 수 있다면….

그런데 그 꿈이 실현되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희망을 공유했고, 많은 이의 헌신으로 마침내 그 희망이 현실이 되고, 꿈이 노래가 되었다. 성악가 김재창씨가 지휘자 겸 감독으로 선임 파견되었고, 현지조사와 오디션을 거쳐 합창단원 80여 명이 선발되었다. 2006년 10월, 지라니어린이합창단이 창단식을 열었다. ‘지라니’는 스와힐리어로 ‘굿네이버스(좋은 이웃)’라는 뜻이다. 그때부터 지라니는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는 고로고초의 아이들에게 가장 큰 꿈이자 희망이 되었다.

라우렌스 온양고(14)는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결핵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도 없이 고로고초에 남은 7명의 식구들. 형제자매들이 모두 학교에 다니던 터라 혼자 돈을 벌어야 하는 어머니의 고생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지라니합창단의 창단멤버가 된 후 라우렌스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입단 전에는 여가시간에 집안일을 돕거나 슬럼 안에서 혼자 공놀이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입단 후 그의 생활은 매우 바쁘면서도 활동적이고 즐겁게 바뀌었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학교 독창대회를 시작으로 나이로비 시대회 1등, 전국대회 4등을 차지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라우렌스의 꿈은 파일럿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꿈은 무사히 학업을 마치는 것이다. 현재 어머니의 수입으로는 7명의 학업과 생계를 도저히 꾸려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과연 학업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고민이다. 얼마 전 TV에 출연한 라우렌스는 꿈이 무엇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내년에도 죽지 않고 살아서 지라니합창단에서 계속 노래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쓰레기 더미에서 출발한 지라니합창단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놀랄 만큼 발전을 거듭했다. 제대로 된 악보 한 장 없고, 아이들은 기본적인 음정조차 몰랐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철판으로 사방만 겨우 막은 연습장은 해만 뜨면 찜통으로 변했고, 피아노를 구하기 위해 케냐 전체를 뒤졌지만 멀쩡한 피아노를 찾지 못해 결국 50년이 다 된 고물 피아노를 한국의 새 피아노보다 더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도 가르치는 이나 배우려는 아이들이나 그 열성만큼은 대단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연습장으로 달려왔고, 김 감독은 아이들에게 노래보다 먼저 자신감부터 심어주려 애썼다. 그 결과 가난과 질병뿐 아니라 소외감과 무력감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아이들이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고, 벅찬 희망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006년 12월, 창단공연을 한 이래 여러 차례 특별공연을 거듭했고, 마침내 2007년 6월에는 케냐 대통령궁에서 정부수립기념일 축하공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방한공연을 앞두고 김 감독은 어지간히 몸이 달았다. 정상적으로 출생신고가 된 아이가 11명밖에 되지 않아 비자를 발급받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어떤 아이는 비자 발급 하루 전에 출생신고를 마치고 겨우 비자를 발급받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35명의 단원만이 어렵게 입국할 수 있었다. 한국 공연은 가는 곳마다 감동과 찬사를 불러일으켰지만, 아이들에게는 한국이 주는 경이로움이 더 큰 충격이었다. 그들의 눈에 한국은 천국과 다름 없었다. 어떤 아이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기는 하지만 돌아가기 싫다”고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임 단장은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합창단 과정으로만 끝낸다면 아이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이 본 새로운 세상과 꿈이 현실과 괴리된 채 끝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학업뿐 아니라 직업교육 과정을 운영해오고 있는 터였지만, 저 아이들이 케냐, 나아가서는 아프리카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도울 작정이다.

14일 귀국을 앞둔 아이들에게 고국의 어두운 소식이 전해졌다. 대선과정의 부정투표 시비는 곳곳에서 폭동을 불러일으켰다. 최극빈지역의 하나인 고로고초이니 만큼 예외일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절망의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서 꿈을 키우고 다시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희망만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다. 그들이 바로 ‘아프리카의 내일’이다.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유성문의 길

케냐는 좋은 나라, 문제 없어요. 케냐는 즐거운 나라, 문제 없어요. 케냐는 훌륭한 나라, 문제 없어요.

글·사진|유성문<객원기자> rotack@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