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FTA폭풍 비껴간 우체국보험

지난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국민의 주된 관심은 쇠고기와 자동차였다. 농산물 개방으로 입을 손실을 자동차 수출에서 얼마나 만회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언론의 관심은 온통 이 부문에 쏠렸고, 협상이 타결된 뒤 평가도 이 부문의 득실을 따져 내리는 분위기다.

서울 광화문 우체국에서 한 고객이 보험 상품 가입과 관련해 상담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막판까지 협상단의 피를 말리게 한 또 하나의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우체국보험이다. 더 큰 문제에 가려 국민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체국보험은 금융부문의 최대 쟁점이었고, 미국의 파상 공세가 가해진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진동수 재경부 2차관이 지난해 7월 “앞으로 협상과정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주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그대로였다. 한국에서 영업 중인 외국 보험사 8개 중 5개(AIG, 푸르덴셜, 라이나, 메트라이프, 뉴욕)가 미국계라는 점에서 보험시장에 매달리는 미국의 사정은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미국의 요구는 한마디로 ‘우체국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을 모두 없애라’는 것이었다. 우체국을 아예 민영화하든지, 그게 아니면 민영보험이 우체국보험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게라도 해달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우체국보험이 불공정 게임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우체국보험이 민간 보험상품에 비해 유리한 점은 크게 두 가지다. 국가기관에서 운용하는 만큼 떼일 위험이 없고, 세금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민간 보험상품은 회사가 망하면 돈도 찾을 길 없지만, 우체국보험은 정부에서 지급보장을 하기 때문에 100% 안전하다. 또 민간회사는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내야 하지만, 우체국은 그런 비용 부담이 없어 수익성이 그만큼 높다. 우체국보험 사업 규모가 2005년 기준 5조9000억 원으로, 생명보험 시장의 8.1%를 점유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특장에 힘입은 것이다. 이에 반해 외국 보험사의 자산규모는 8개사를 다 더해야 10조6000억 원(14.4%)이다. “소액보험은 우체국에서 싹쓸이해간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절대 물러설 수 없다던 미국이 마지막 순간 우체국보험의 특수성을 인정하겠다고 하면서 극적 타결이 이뤄졌다. 정부 지급보장, 세금면제 등 우체국보험의 특장이 고스란히 지켜지는 순간이었다. 대신 몇 가지 족쇄를 채우는 데 합의했다. 우선 현재 취급하고 있는 상품은 그냥 두지만, 신상품 영역의 진입은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변액보험, 퇴직연금보험, 손해보험상품을 우체국보험에선 내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우체국보험 가입한도액을 현행 4000만 원에서 엄격히 묶어두기로 했다. 가입한도액을 높일 때에는 금융감독위원회와 사전 협의하도록 해 쉽게 올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우체국보험의 관련 위원회 위원 절반을 금감위 추천인사로 선정해 어느 정도 금감위 감독을 받게 한다는 데에도 양국이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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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기존 우체국보험 가입자에게 불리한 내용은 전혀 없다. 금감위의 감독 기능이 도입돼 보험의 건전성·투명성은 오히려 강화되는 셈이다. 하지만 금융사업을 통해 자산규모를 늘려가던 우정사업본부로서는 적지 않은 타격이다.
우본 보험기획팀 강성태 사무관은 “기존에 취급하는 상품 영역에 대해서는 개선이 가능하므로 보험사업을 유지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면서 “다만 신상품 개발 제한으로 장기적 성장세는 다소 둔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종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