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프랑스에 집배원 대통령?

“올해 대통령 선거의 변수는 집배원이다.” 이렇게 말하면 전국의 1만5000여 집배원은 “그게 무슨 말?”이라며 의아해할 것이다. 정치중립적인 우리 집배원들이 특정 후보에 표를 몰아준다는 것은 상상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현직 집배원으로 프랑스 대선에 출마한 브장스노 후보.

그렇다면 ‘집배원 변수’란 무슨 말인가. 우리나라 대선이 아니라 4월 22일 실시되는 프랑스 선거 얘기다. 프랑스에선 집배원 표심이 아니라 집배원 후보의 득표율이 관심이다. 올해 32세인 집배원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극좌파인 혁명공산주의자연맹 소속 후보로 공식 출마했기 때문이다. 선관위(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해 1만3000유로(1370만 원)의 국가보조금을 받는 후보 12명 중 한 명이 현직 집배원인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에 사상 최초의 현직 집배원 대통령 탄생?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장난은 아니다. 브장스노가 대선에 출마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는 2002년 27세 때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선후보로 나서 득표율 4.25%, 130만 표를 얻은 바 있다. 당시 후보 16명 중 8위. 1~3위를 제외한 4위 이하의 득표율이 6~4%로 고만고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과다. 이번에도 그의 득표율은 선거의 판도를 바꾸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우파의 사르코지, 좌파의 루아얄, 중도파의 바이루 등 선두권 세 후보 중 누구도 과반 득표가 안 되어 결선투표를 치를 것이 예상되는 상황. 여기서 그가 좌파 표를 얼마나 잠식하느냐에 따라 대세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

브장스노는 대체 어떤 집배원이기에, 프랑스 집배원은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누리기에 대선을 좌지우지하는 후보가 된단 말인가. 같은 일을 하는 세계 각국의 집배원 노동자들이라면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브장스노는 1974년 파리 근교에서 교사이며 심리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공산주의자청년동맹에 가입했고, 파리 10대학에 진학해 역사학을 전공하는 동안에는 혁명공산주의자연맹(LCR)에서 활동하는 등 일찍부터 ‘운동권’의 길을 걸어왔다. 대학 졸업 후인 1997년 우체국(La Poste)에 입사해 파리 근교에서 집배원 생활을 시작했다. 대졸 집배원은 과거에는 거의 없었으나, 최근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는 게 주한 프랑스 대사관 측의 설명이다. 공무원 중 비교적 국민의 호감을 사는 직종이 집배원이라는 것. 브장스노도 그렇게 해서 대졸 집배원이 됐다. 하지만 정치활동은 계속했다. 1999년 휴직하고 LCR의 유럽의회 파견관으로 나간 적도 있으며, 이후 LCR 대변인 자리에 올랐다.

LCR은 공산당보다 더 왼쪽 집단이다. 당의 강령이 대통령제 폐지, 혁명적 사회주의 시행이다. 브장스노 자신도 폴란드의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를 역할모델로 삼고 있다고 밝힌다. 부의 분배, 최저임금 인상, 수익 기업에선 해고금지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우리의 삶은 그들의 이익보다 값지다”는 친노동자 문구를 선거 구호로 외친다. 워낙 과격해 모든 사상을 포용한다는 프랑스 국민들조차 거부반응을 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우리 눈으로 보면 극좌 사상으로 무장한 집배원이 두 번이나 대선에 출마하는 관대한 정치풍토, 사회 분위기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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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장스노 후보는 대선출마 기간 중 우체국에 휴가원을 내 현재 무급휴가 중이다. 예상대로 낙선하면 곧장 복귀해 우편배달 현장으로 돌아간다. ‘집배원 대통령’이 되는 꿈의 실현 시기를 5년 뒤로 미루면서.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종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