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그 섬을 사고 싶다

최근 들어 ‘무인도 투자’ 관심 증가… ‘나의 섬’에 대한 낭만적 동경 커져

최근 ‘나의 섬’ 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사이판의 한 섬. <경향신문>

평탄하지만 주변에 나무들이 빼곡히 병풍처럼 둘러선 섬, 산봉우리처럼 급경사로 이뤄져 있는 섬, 만조 때면 꼭대기만 보일락 말락 한 섬….

섬은 이렇게 모양도 가지가지, 풍경도 가지가지다. 크기나 기후도 다 다르다. 이런 섬에 나만의 오두막집을 짓고 지낸다면? 최근 무인도를 매입하려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2월까지 경매로 주인이 정해진 섬이 5개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하나도 없었고 2005년에는 5개의 경매가 이뤄졌다. 지난 1월 29일 전남 진도의 무인도인 대소동도는 감정가가 368만9400원이었지만, 19명이 경쟁에 나서 감정가의 10배인 3955만 원에 낙찰됐다. 3720평의 무인도인 이 섬은 경관은 좋지만 활용가치가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평가에도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2월 23일 경매에 붙여진 경남 통영 소덕도도 15명이 경쟁을 벌여 감정가를 웃도는 가격에 낙찰자가 정해졌다. 무인도의 인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경매의 경우 공개 입찰 과정을 통해 매매 사실이 공개되지만, 개인 간의 매매는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또 워낙 거래 자체가 적어 전문 중개업소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주로 서남해안의 섬들이 거래되고 있으며,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은 100여 개 정도. 섬 크기는 1000여 평에서 10만 평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실제로 매매 의사가 있는 섬은 많지 않다는 것이 중개업소의 분석이다. 즉, 가격을 턱없이 높게 부르거나, 설령 매도할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개발이 불가능한 쓸모없는 섬이 대다수란 것.

그렇다면 무인도의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 섬은 아파트처럼 거래가 자주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 어렵다. 대체로 평당 1만~5만 원 정도로 보면 된다. 물론 극소수의 무인도는 평당 수십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2005년 경매에 붙여진 인천 지내섬은 감정가의 12배인 3억 원에 낙찰됐다. 무인도의 총 면적이 690평이므로 평당 가격은 43만4780만 원에 이른 것이다.

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최근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때때로 있어 왔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섬 투기가 극성을 부려 국세청에서 전국 섬에 대한 토지보유현황을 조사하기도 했다.

외국서는 부를 과시하는 수단

그러나 최근 불고 있는 섬에 대한 관심은 그때와는 성격이 분명 다르다. ‘부동산 투자(투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완전히 정착돼 가고, 웰빙이 대중화되면서 섬에 대한 인기도 따라서 올라가고 있다. 사람들이 푸른 바다에 떠 있는 낭만적인 ‘나의 섬’을 갖기를 원하는 것이다. 통신기술, 태양전지와 풍력 등 에너지 등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무인도에서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가능하게 해준다.

물론 섬을 희소성 때문에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태인 이영진 이사는 “낙찰된 섬 중에는 경사가 가파른 등 개발이 안 되는 섬도 있다”면서 “섬의 희소가치 때문에 단순히 소유하려는 개인의 취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서울 등지 외지인들의 ‘나만의 섬’을 갖고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섬을 ‘골동품’처럼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바다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한 무인도. <마린토피아 제공>

외국에서도 ‘나의 섬’을 가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부를 과시하기 위해 휴양섬을 소유하려고 한다. 외국에서는 ‘프라이빗 아일랜드(Private Island)’ 관련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한 예로 섬 중개업체인 프라이빗아일랜드온라인(www. privateislandsonline.com)에는 세계 각국의 섬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가격은 보통 100만 달러(약 9억5000만 원)가 넘어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사기 힘들다.

지자체 해안권 개발도 호재로 작용

낙후한 서남해안을 적극 개발하려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지도 섬의 인기를 올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국가균형발전위는 그동안 소외되고 낙후한서남권을 발전시키기 위해 총 사업비 22조 원 가량을 들여 무안·목포·신안 일대를 개발하는 종합발전안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다도해 지역을 국제해양관광 복합리조트 단지로 조성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서남해안포럼에 따르면 유대인 자본가가 전남 도서지역을 둘러본 뒤 투자의향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이것이 실현되면 서남해안 섬의 각종 인프라는 크게 나아진다.

게다가 인천시, 신안군 등 지자체에서는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유인도나 무인도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예컨대 신안군의 경우 유인도를 연륙·연도교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경우 무인도로의 접근성이 훨씬 수월해진다. 또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소로 지자체가 섬을 대여해 주기도 한다. 드라마 ‘풀하우스’는 인천의 신도, ‘천국의 계단’은 인천 무의도, 영화 ‘실미도’는 인천 실미도에서 촬영했다.

‘나의 섬’을 갖는다고 돈과 낭만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섬을 잘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무인도를 사서 개발하기까지에는 까다로운 규제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서남해안 개발은 2020년까지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로 당장 가시적인 효과는 없다. 최소 4~5년은 있어야 어느 정도 인프라가 확보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해양수산부가 마련, 국회에 계류중인 ‘무인도서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올해 안에 시행될 전망이다. 법이 시행되면 해양부는 전국 연안에 있는 무인도서를 절대보전·준보전·이용가능·개발가능 등 4가지 유형으로 관리하게 된다. 해양부 관계자는 “규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보존할 것은 보존하고, 개발할 수 있는 것은 개발하기 위한 법률”이라며 “국가적 차원에서 섬의 바람직한 이용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중개업자는 “이미 여러 가지 규제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법률을 또 만들어 관리하는 것은 섬 소유주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이라면서 “이는 사유권 침해 요소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중개업자는 “아무래도 섬 개발이 어려워지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더욱 더 섬 매입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인도 개수는 고무줄

무인도는 매립 등의 이유로 그 수가 변한다. <경향신문>

우리나라 섬 개수는 몇 개일까.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도서는 3167개이며, 이중 무인도는 84%인 2675개다. 무인도 중 절반 이상이 개인 소유고, 나머지는 국가 소유이거나, 지방자치단체 소유이다. 무인도 소유자들은 대부분 1970년대 이전에 소유권을 확보했거나 재정난에 시달린 지자체들이 팔려고 내놓은 무인도를 매입한 경우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 발표한 무인도 개수 2675개를 정확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간척지 매립사업으로 섬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 최근 몇 년 간 목포 장구도 등 8개 섬이 매립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는 섬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섬에 대한 규정이 담겨 있는 유일한 법은 도서개발촉진법. 이 법은 연육(육지와 다리를 놓아 연결)된 지 10년이 지난 섬은 도서에서 제외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연륙교가 세워진 섬이 점차 늘면서 섬의 개수에 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일단 섬은 물이 찼을 때 드러난 부분이 있어야 도서로 인정된다. 그런데 바위 하나만 덜렁 있는 것 같은 무인도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몇 개의 섬은 과거에는 밀물에 윗부분이 보였지만, 현재는 안 보인다. 썰물 때만 그 모습이 드러난다. 이 경우 무인도에서 제외된다. 우리나라는 간만의 차가 심해 썰물 때 수만 평이 보이지만 밀물 때는 고작 1000여 평만 드러나는 섬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무인도의 개수를 정확하게 산출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무인도의 개수는 고무줄이란 말도 나온다.

부부가 꿈으로 일군 외도

외도의 해상농원. <경향신문>

섬을 개발해 자신의 꿈과 낭만을 이뤄낸 대표적인 사례가 경남 거제의 외도다. 배용준·최지우 주연의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외도는 거제도에서 4㎞ 가량 떨어진 섬이다. 2003년 작고한 고 이창호씨가 1969년 낚시하러 왔다가 태풍을 만나 우연히 이 섬에서 하룻밤 민박한 것이 인연이 돼 이 섬을 매입했다. 주민들이 몇 명 살지 않는 무인도에 가까운 섬으로 전기와 전화는 물론 선착장 하나 없었다. 이씨는 부인 최호숙씨와 함께 1976년부터 수십 년 간 삽과 괭이로 땅을 갈아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원시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각종 초목과 온대·아열대 식물을 대량으로 심는 등 해상농원으로 개발한 것. 외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해금강과 함께 꼭 거쳐가는 명소다. 봄철에는 하루에 1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