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산책]작년 상금랭킹을 들여다보니...

이창호(30)-유창혁(39) 9단이 30대이고 목진석 8단은 25세, 이세돌 9단은 22세, 최철한-박영훈 9단과 원성진 6단은 갓 스물이며 송태곤 7단은 19세다. 이들의 뒤를 이어 조한승 8단(23)이 7900만원으로 9위, 그리고 '정관장배' 우승에 빛나는 박지은 5단(22)이 6500만원으로 당당 10위에 올랐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 모르지만 수입은 어쨌든 성적순이다. '수입=행복'은 아닐지라도 아주 깊은 관계인 것이 사실이고, 더구나 대부분 20대 초반이니 가벼이 볼 것도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다니는 미니 벤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박지은 5단이 눈에 띈다. '여류기사'라는 단서를 붙여 "바둑사상 최초로 어쩌구 저쩌구..." 하면 칭찬을 해도 비난을 받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대견하지 않은가. 여류기사들에게는 큰 자극과 희망이 될 것이다.

아니, 더욱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위의 랭킹에 들지 못한 조훈현 9단이다. 조9단은 6100만원으로 11위. 그로서는 기사생활을 시작한 후 수입 랭킹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본인도, 주변에서도 금석지감을 떨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수입 랭킹 자체가 별 의미가 없었다. 수입이란 것이, 특히 다른 분야와 비교해 보잘것 없었고, 기사들 사이에 차이는 있었지만 그것도 도토리 키재기에 지나지 않았다. 프로기사의 수입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 후반부터. 새로 창간된 세계일보가 상금 1억원짜리 대회를 만들고, 뒤따라 몇몇 신문이 그와 엇비슷하게 대회 규모를 키웠으며, 세계대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30년 가까이 그게 그거였던 바둑계의 볼륨이 한꺼번에 2배 이상 커졌다.

연수입 1억원을 돌파해 '억대 시대'를 개막한 사람은 물론 조훈현이었다. 그는 1989년에는 제1회 '잉창치배' 우승으로, 그것 하나로 40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3억원)를 벌기도 했다. 그랬던 조9단이 그때로부터 십몇년이 지나자 더 늘기는커녕 6000만원에 그치면서 10위권에서도 밀려났으니 그것 참....

1등 5억6000만원의 이창호 9단도 수입만으로 생각한다면 크게 좋아할 일이 아니다. 작년 시즌에 이미 9억원이 훌쩍 넘어 10억원 돌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는데 올해 오히려 절반에 머문 것 아닌가.

요즘은 게나 고둥이나 입만 열면 억억 하는 세태지만 그래도 5억이면 크다. 그러나 사실은 굉장히 작다. 한 분야에서 세계 일인자의 수입이라고 말하기에는 쑥스러운 액수다. 다른 스포츠나 대중문화 쪽을 보자. 타이거 우즈나 슈마허 같은 사람은 생각지도 말고, 국내에서만 보더라도 광고 한편 출연료도 안 된다. 말이 좋아 걸어다니는 벤처지, 1년에 5억원 수입을 벤처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좀 그렇다.

바둑산책

바둑으로 돈을 만들고 싶다면, 바둑도 스포츠라고 하면서 대한체육회에 들어가니 마니 하기 전에 마케팅을 먼저 연구해야 할 일이다. 스포츠 마케팅, 좋지 않은가. 스포츠에서는 다 하는 것 아닌가. 마케팅이 되면 돈이 될 것이고, 체육 쪽에서 거꾸로 러브콜을 하지 않을까. 마케팅이 어렵다면 돈 많은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돈 많은 동네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 것도 없고, 그냥 바둑의 길로 갈 일이다.

[바둑평론가 이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