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유인태 의원

졸린 이야기들만 하니까 존다

전부터 유인태 의원(56)을 몹시 만나고 싶었다. 이름이 비슷해 '친 오빠'라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고(절대 부인하지 않았다) 청와대 정무 수석 시절 '엽기수석'이란 별명에다 주로 '독설' '구설' '졸기의 달인' 등의 기사들로 소개된 그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서다. 농부처럼 마냥 순박해 보이는 얼굴로 욕도 잘하고 기자들에게 '개새끼'라고 해도 별로 욕을 먹지않는 비결도 듣고 싶었다. 또 요즘 그가 발의해 여야의원 151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사형제 폐지특별법안'의 처리도 궁금했다.

"아휴, 어제 저녁에 정치부 여기자들과 술을 마셨거든요. 너무 많이 마셔서 지금도 속이 쓰려요. 폭탄주는 아니고 중국술을 마셨는데..."

그는 주량이 많이 줄고 예전과 달리 '필름도 끊긴다'고 했다. 그의 과거 주량은 폭탄주 20잔이었으나 요즘은 10잔 정도. 물론 하루 아침에 다져진 실력은 아니다. 장남이어서 제사 때마다 음복하느라 어릴 때부터 술을 마셨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시험공부를 하다 졸리면 동네 포장마차에 가서 막걸리 두 사발을 마시고 오면 머리가 맑아져서 그후 매일 술을 마셨단다. 담배는 고1때 시작, 지금 골초다. 바둑도 잘 두고 골프는 97년에 미국에서 6개월간 생활할 때 처음 치기 시작했는데 골치(노래못하는 음치처럼 골프 못한다는 뜻)지만 즐겁단다. 잘 노는만큼 잠도 잘 잔다.

"문희상의원이 자신도 정말 잘 조는데 유의원이 워낙 잘 졸아서 별로 표가 안난다더라, 왜 그렇게 잘 조시냐"고 물었더니 "시차(時差)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워낙 늦게 자요. 새벽 1~2시에야 잠이 들거든요. 늦게 자니까 당연히 수면이 부족하고 점심만 먹으면 그렇게 졸릴 수가 없어요. 대개 점심 먹고 오후 1시반부터 2시에는 꼭 낮잠을 자요.(그의 의원회관 소파에는 쿠션 대신 베개가 있다) 그런데 꼭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가 그 시간에 열리는 거예요. 잘 시간인데... 물론 대부분 다 아는 이야기고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들이라 졸리기도 해요. 하긴 밥 먹다가도 잔 적이 있어요. 노대통령, 총리 등 다섯명이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제어가 안 될 만큼 졸리는 거에요. 허벅지를 꼬집다가 못견뎌서 졸았죠"

그의 졸음은 유전인 것 같다. 그의 모친은 그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순간에도 꾸벅꾸벅 졸아서 곁에 있던 김지하씨 어머니가 "자네 아들, 사형이래"라고 알려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스스로도 욕을 잘 하고 욕이 자주 튀어나온다고 고백한다. 기자들에게 욕을 하는 것은 "술자리에서 절대 안 쓴다고 약속하고도 쓰고, 취중에 한 농담까지 시시콜콜 다 써서 욕을 한 것"이라며 "욕 먹을 만하지 않냐"고 물었다.

신당 배후세력은 노대통령이 아니다

술자리의 후유증으로 피곤해하는 유의원에게 '그래도 정무수석 때보다 한가해진 것 아니냐, 이 정부의 마지막 정무수석인데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글쎄 내가 술 많이 마시고 마음에 안 들게 해서 노대통령이 아예 그 자리를 없앤 건지 모르지만 대통령 고집이 너무 센 것 같아요. 청와대 참모들도 정무수석이 필요하다고 하거든. 이번 박근혜대표와의 청와대 만찬도 틀어질 뻔했던 모양이에요. 전날까지 못간다, 간다를 번복하고 또 대변인도 배석시키자고 주장해서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죠. 그런 걸 사전 조율하고 조정하는 것이 정무수석이 할 일이거든. 대통령은 정책으로만 말하면 된다고 하지만 당과도 조정을 전담할 창구가 필요해요"

자기 모교가 폐교되면 서운하듯 자기가 맡았던 자리가 사라진 것에 대해 유의원은 조금은 섭섭해했다. 그래도 정무수석 시절의 성과와 보람을 물었더니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깨끗하게 치러진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가 돈 안 쓰고 깨끗한 선거였잖아요. 사람들은 선거법이 개정되어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예전 선거법에도 돈은 못 쓰게 되어 있었어요. 권력자들이 깨끗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가 없어서 혼탁한 선거를 치른 거죠. DJ도 총선 때 주요인사들에게 10억씩 보냈잖아요. 사실 언론에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번 청렴선거의 공훈은 경찰들이에요. 그동안 경찰 인사가 지나치게 적체되어 있고 승진도 되지 않아서 물꼬를 틔워주었어요. '선거사범 단속 특진제'를 제가 주장해 만든 거죠. 강력범 검거만 인사고과에 반영되던 것을 선거사범 잡아오면 특진시키기로 했고 포상금도 200배 올려주기로 했다가 결국 50배로 결정됐죠. 그랬더니 정말 열심히 선거사범을 단속했어요. 물론 열린우리당이 제일 많이 걸리긴 했지만 이번엔 정말 깨끗하게 선거 치렀고 새 역사를 쓴거죠"

"문희상실장은 물론, 이해찬-정대철 등 다들 분당, 신당에는 반대했죠. 천-신-정이 분당을 주장했고요. 내 생각엔 과거의 틀로는 호남당으로 굳어져 어차피 한나라당에 1등을 줄 수밖에 없었어요. 망해봤자 2, 3등인데 10명이건 20명이건 어떠냐고 생각했죠. 과거 DJ는 장사가 안 되면 음식 메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간판만 계속 바꿔다는 식당처럼 선거 때마다 당명을 바꾸며 6번이나 '신장개업'을 했잖아요. 국민회의,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등등요. 그건 국민을 속이는 거죠.

노대통령이 신당의 배후세력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당시 민주당 인기도가 꼴찌였고 대통령은 '나는 어차피 공천권도 없지만 내가 밀어줘도 확실히 당선될 곳이 한 군데도 없는데 남의 정치운명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무리'라며 나서질 않으셨어요. 그 사이에 나는 천신정 만나서 계속 분당하자고 부추겼죠. 이번 정부가 문씨 세상이라고 하지만 분당의 최대공신은 '문팔괘'란 여성이에요. 이미경 의원의 머리채를 낚아챈 그 여자요. 그걸 보고 다들 '같이 일 못하겠다'며 당이 깨진 거죠. 그 사건이 아니었고 공천 방식이 바뀌지 않았으면 열린우리당 탄생도 없었고, 제1당도 못 되었을 겁니다"

총선을 앞둔 당시엔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3등이어서 그 역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야 했다. 정초에 최병렬씨를 찾아가 인사를 하며 '이제 우리 시대는 지나갔다'며 거의 정계은퇴를 결심했지만 열린우리당의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당 지도부들에 비해 훨씬 선배인 그마저 구원투수로 나섰던 것.

"원래는 고향인 제천에서 나가라고 하대요. 그런데 아홉살 때 떠난 고향에 찾아가보니 여당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큰 겁니다. 대충 1,000명은 취직시켜줘야겠고 철도청도 옮겨 달라는 등 청탁과 부탁이 줄을 이어요. 선조들이 400년간 살아오신 고향인데 국회의원 한번 해먹고 평생 죽일놈에 사기꾼 될 것 같아 포기했죠"

1992년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도봉갑에서 14대 의원으로 당선되었던 그는 도봉을에 다시 출마, 그는 17대 의원이 되었다. 2000년엔 설훈씨에게 공천에서 밀렸고 2002년에는 한나라당으로 옮겨 공천을 받았다 빼앗기는 설움을 겪기도 했던 그는 새정부들어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회의원 등으로 과거의 아픔을 다 해소했다.

청와대는 포장기술이 부족하다

유인태의원은 목소리가 아주 좋다. 그 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과격한 표현을 해서 듣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순진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독특한 표현을 써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수시로 '설화'에 시달리는 동병상련의 그는 어떤 생각일까.

"노대통령이 현장에서 비유를 들 때는 상당히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고 아무런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런데 그게 문장으로 표현되면 이상하단 말이죠. 아마 노대통령은 스스로 말을 잘 한다는 믿음이 있어 현장 분위기에 도취되어 애드리브로 하는 표현이 과해지는 것 같아요. 과거 대통령들은 써준 원고만 읽으니 문제가 없었죠.

무엇보다 청와대가 포장-홍보 기법이 부족하고 보안문제가 부실해서 그래요. DJ 시절에 권노갑, 한화갑 등 숱한 가신이 드나들었어도, 나중에 언론과 관계가 별로 안좋았을 때도 그런 기사가 단 한차례도 나간 적이 없어요. 커튼을 쳐서 가려준 거죠.

지금 우리는 정치사에 새로운 실험을 하는 거예요.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엔 '선생님'이나 '총재' 말씀에 일사불란하게 충성하고 또 상도동 동교동에 눈도장 찍어 충성을 다해 공천을 받으면 됐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당지도부에 공천권이 없으니 초선의원이 대들어도 누가 말도 못하고 대중적 인기만 얻으면 되거든요.

국민들은 과거 제왕적 정치에 염증을 내면서도 은근히 백가쟁명 시절의 자유분방함에 걱정을 하고 질서를 요구하는데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이니까 다소 불안하더라도 애정을 갖고 지켜보셨으면 해요. 다들 대통령이나 17대 국회에 대해 걱정들 하시는데 다음 세대엔 올바른 평가를 받을 겁니다"

당과 청와대 사이의 조율사로 능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그에겐 정치인보다 다른 일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 역시 이번에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으면 국립공원 관리공단 이사장을 하고 싶었단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등산반이었고 산을 워낙 좋아해서다. 훗날 어느 산에선가 살짝 술에 취해 나무그늘에서 졸고 있는 그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