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사장

세계가 주목하는 여성지도자

올해는 행운의 여신이 김성주 사장(48-성주인터내셔널)에게 집중적으로 사랑을 주고 있다. 지난 5월 세계여성지도자대회 운영위원장으로 서울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다 10월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는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다. 11월 8일에는 세계적인 권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주목할 만한 세계 여성기업인 50명' 가운데 사주(社主)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하포그룹 회장이며 토크쇼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

지난주에는 [비즈니스위크]지가 주최하고 상해에서 열린 CEO포럼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참가,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수상과 북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15일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가죽제품과 패션회사인 MCM 독일 본사로부터 해외 영업권 및 공동경영계약을 체결했다.

얼마든지 우아한 공주병 환자로 평온한 삶을 누릴 수도 있으련만 그는 평화로운 왕궁을 떠나 전사의 길을 걷고 있다. '왕따'를 자칭하며 우리 사회, 정부와 기업, 자기 친형제들은 물론 여성들에게까지 날카로운 직언과 때론 과격한 비난까지 서슴지 않고 쏟아낸다. 나지막한 소리로 그런 말을 해도 충격적일 텐데 그 긴 팔과 손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커다란 목소리로 퍼부어대니 상대방들이 흥분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숱한 오해도 받았지만 이제야 김성주 사장의 직관과 진실을 이해해주는 이들이 많아졌다.

서울 압구정동 MCM 매장에서 만난 김성주 사장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그의 키는 176㎝다) 올해의 업적과 성과를 축하해주었다.

"제가 다양한 활동을 하니까 기업가인지 사회운동가인지 정체성을 밝히라는 분들도 있어요. 정치적 야심이 있는 게 아니냐고 오해하는 분들도 있고요. 전 정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좋은 기회를 얻은 사람이기에 그걸 사회에 환원하려고 생각합니다. 헌신한다는 생각으로 사심없이 뛰는 겁니다. 무엇보다 여자도 기업 할 수 있다, 정직하게 경영해도 성공할 수 있다, 한국 패션사업이 무너져 가지만 글로벌화로 성공할 수 있다란 걸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뻐요."

'노무현 대통령이 김 사장의 능력을 인정하고 예뻐해서(?) 국회의원 공천설, 장관 기용설도 있었다'고 물어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인수위의 글로벌자문위원을 맡았었지만 절대 현 정부의 총애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정치엔 정말 관심없고 소질도 없어요. 거짓말을 하면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표정을 못 감추거든요.

또 정치를 하는 것보다 경영자로 몇 배 더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자부합니다. 현재 우리회사 직원이 350명이고 하청공장까지 합하면 8,000~1만 명의 고용창출을 하고 그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요. 이 일이 훨씬 더 보람있습니다. 만약 정치를 하려면 전 재산을 헌납하고 뛰어들어야겠죠. 권력과 재물을 다 갖는 것은 옳지 않아요."

공주에서 전사로

외모까지 빼어난 재벌의 딸, 미국 앰허스트와 하버드 대학, 영국 런던 정경대학 출신, 완벽한 외국어 실력, 남들에겐 축복일 수 있는 좋은 것들이 그에겐 십자가였다고 그는 고백한다.

보수적인 경상도, 특히 남녀차별이 강한 집안의 7남매 중 막내딸인 그는 어릴 때부터 '여성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란 세뇌를 받고 자랐다. 어렵게 미국 유학을 갔지만 국제결혼을 한 것 때문에 아무 지원도 못받고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다. 귀국해서도 모든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월급 18만원짜리 직원으로 창고일 등부터 시작했다. 구치 등 명품의류를 수입하는 '성주인터내셔널'을 설립하면서 사회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존 부패관행을 철저히 거부할 것을 선언했다. 술대접이나 골프 사교를 하지 않겠다, 봉투를 돌리지 않겠다, 세금을 제대로 내는 투명경영을 하겠다고 주장했고 그 말을 실천했다. 진흙탕 관행을 피하려다보니 그 대신 엄청난 자갈밭과 등 뒤에서 날라오는 화살, 숱한 폭탄을 맞아야 했다.

상품이 잘 팔리는데도 백화점 매장이나 면세점에서 어느날 자리가 사라지고, 쌓아둔 물건이 도난당하는 등 상납관행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고 "그래 너만 잘났다, 얼마나 버티나 두고보자"는 등의 손가락질은 물론 "미친여자"란 소리까지 들었다.

개인적인 억울함은 그래도 견딜만 했다. 사업을 하거나 다른 일로 만난 소위 한국의 엘리트라는 집단이 보여준 무능함과 뻔뻔함에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단다. 세계적인 큰손 조지 소로스, [제3의 길]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 등이 내한했을 때 수행과 통역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깨달았다.

1998년, 조지 소로스가 한국 정-재계 인사들을 만난 후 'IMF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했을 때 런던 정경대 후배임을 밝혀 분위기를 푼 후 그렇지 않노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기든스와 만난 학자, 관료들 역시 맹렬한 토론보다는 '다 잘 될 것'이라며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다가 정작 행사를 마칠 무렵 갑자기 몰려들어 기념사진만 찍는 모습을 보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단다.

자신의 체험담과 한국시스템에 대한 경고문을 담아 2000년에는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주변에선 그 책을 폭탄, 혹은 고발장이라고 했다.

사회와만 싸운 게 아니다. 딸이란 이유로 땅 한 평 받지 않았지만 1998년 자금난을 겪을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대성그룹으로부터 지급보증을 받아 30억원을 빌렸다. 그후 아버지가 타계하고 오빠가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MCM 경영권을 둘러싼 오누이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김성주 사장은 MCM 경영권의 확보에 성공했고 현재 핸드백과 의류 등이 연매출 1천억원 규모이며 가방만으로는 백화점에서 루이비통과 구치를 앞서서 판매 1위를 차지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90%의 에너지를 인간관계와 향응에 쏟아붓고 10%만 일하는 현재 관행으로는, 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엘리트집단들로는 한국의 앞날은 막막해서 정신적 혁명, 아니 쿠데타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가 갑자기 잔다르크처럼 보인다.

여자도 군대 가야 한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비단 남성들이나 정-관계 엘리트들에게만 퍼부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올해의 여성상으로 선정된 기자회견장에서도 그는 '여자들도 군대 가야 한다'는 말을 해서 주변을 또 놀라게 했다.

"21세기에 여성들이 일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많은 교육을 받은 한국 여성들이 자신이 받은 교육을 사회에 환원해야지요. 맥켄지의 '우먼코리아'란 보고서에서 나타났듯 한국의 미래는 여성 인력을 얼마나 잘 활용하냐에 따라 선진국 진입이 결정됩니다. 여성들이 대한민국의 구원투수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요즘 한국 여성들,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너무 나약해요. 실패도 경험하고 좌절도 해보고 육체적 한계도 느껴야 진정한 자기극기력이 생기고 남들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도 군대에 가서 강인함을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창 일할 나이의 남성들만 군대에 보낼 것이 아니라 여성들도 군대 가서 극기수업을 받아야해요. 물론 원하는 여성들에게, 1년 정도만 근무하게 한다거나 가산점을 주는 제도 등이 마련되어야죠. 남성 두뇌만이 아니라 여성의 두뇌와 힘,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성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 겁니다."

미혼 여성들의 군입대는 물론 주부들에게도 키부츠 입소를 제안한다. 가정 안의 나른한 안일함에 안주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개발해 사회에 환원하라는 주장이다. 보육 문제 역시 정부나 국가에만 기대지 말고 교회, 구청 등이 손잡고 여성들이 보육교사, 어린이 교재 개발 등을 통해 창업도 하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스스로 해결사'가 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단다. 모든 것을 정치에만 의존하지만 이젠 경영마인드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김성주 사장의 철학이다.

"지구 전체가 글로빌 빌리지로 수억 개의 웹사이트에서 모든 정보와 지식이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지금, 나태하게 살 수는 없죠. 더구나 한국은 중국이란 커다란 사자의 입속에 들어 있는 형편이잖아요. 바짝 긴장하고 보다 정직하고 최선을 다해 각자 일을 하지 않으면 또다른 식민지가 됩니다."

자신의 회사들만 운영하기에도 하루 24시간을 72시간으로 쪼개 쓸 만큼 바쁘지만 그는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외국 언론에도 인터뷰를 하고, 숱한 국제행사에도 참여한다. 또 일요일이면 시설의 아이들을 목욕시켜주는 등 몸으로 자원봉사도 하고 순수익의 10%를 기부하며 사회에 환원한다.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가진 자의 사회적 책무를 실천하는 것이다.

수시로 해외출장을 가고, 매일 수많은 결정을 하고, 숱한 사람을 만나다보면 지칠만도 한데 그는 생생하다. 올해 두 번이나 5㎞의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며 "40대 아줌마가 대단하지 않냐?"고 자랑스러워했다. 건강 비결은 "욕심없는 마음이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하나님께 의지하는 신앙의 힘"이라고 덧붙였다. 이광요 싱가포르 전 수상 앞에서도 따지고 들 만큼 겁없는 그도 하나님 앞에선 착한 소녀처럼 기도를 드린단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