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프리뷰]가상현실 예술 선구자 「빌 비올라」

코로나19 이후 전시를 소개할 때는 물론 기획 단계에서부터 ‘온택트 전시회’, ‘랜선 전시회’ 같은 용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이런 온라인화 흐름에 가장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각예술 장르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TV는 물론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장치에서도 감상 경험 전달이 가능한 영상 기반 예술작품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영상작품에 한해서는 방구석 미술관을 벗어나 굳이 미술관까지 가서 전시를 볼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지난 10월 21일부터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시작된 전시 <빌 비올라, 조우>에서 그 답을 확인해볼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빌 비올라의 작품 ‘놀라움의 5중주’(위)와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 중 ‘대홍수’편. / 필자 제공

내년 4월 4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미국 출신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빌 비올라의 1970년대 초기 작업부터 비교적 근작인 2014년 작품에 이르기까지 16점의 영상 설치 작품들을 미술관의 4개 전시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이런 장점 외에도 미술관이기에 가능한 감상의 백미도 있다. 각 전시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주제관으로 주제별로 최적화된 감상이 가능한 동선을 관객들에게 제공한다.

예를 들어, 2001년 작품으로 총 5개의 영상을 통해 수면을 뚫고 가라앉거나 솟구쳐 올라가는 인물들을 슬로 모션으로 보여주는 ‘밀레니엄의 다섯 천사’는 거대한 전시실의 3면을 통해 상영되고 있는데, 전시실 가운데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은 어느새 자신이 수중에 있거나 마치 칠흑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즉 기록된 영상을 ‘보고 있다’는 관객과 작품 간의 객관적 거리감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주관적 체험의 영역으로 관객을 이끄는 전환공간을 미술관이 제공하는 것이다.

2002년 작품으로 총 5개의 영상으로 구성된 대작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는 작품의 사건 속으로 관객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끈다. 전시실의 한 면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상 속 사람들의 행렬은 전시실의 입구로 들어선 관객의 감상 방향과 일치하며, 입구 반대쪽 벽면 영상 속 ‘건물’은 관객이 걸어가고 있던 ‘길’을 막아선 채 어디로 갈 것인지를 관객에게 묻는다. 영상 막바지에 이르러 건물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급류가 끝나면 건물 안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길이 생기지만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건물 안의 세계, 혹은 우리 앞의 미래로 계속 나아갈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문화프리뷰

영상 속 상황을 경험하고 판단을 요구하면서 주관적 체험의 영역으로 이끄는 빌 비올라의 작품들은 아직 태동기에 머무는 가상현실(VR) 예술작품들의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기에 아직 미완성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가상현실 기술이 구현하는 ‘체험’의 수준이 미술관의 전시 경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상 방구석 미술관이 현실의 미술관을 대체할지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정필주 문화예술기획자·예문공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