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장벽의 문명사 外

지구 곳곳 장벽의 역사적 고찰

<장벽의 문명사> 데이비드 프라이 지음·김지혜 옮김·민음사·2만원

2200년 전 진나라의 시황제와 현재 최강 미국의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두 인물 모두 긴 장벽을 세운 인물로 유명하다. 또한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이들이 세운 것으로 알려진 두 장벽이 이미 이전부터 상당 부분 건설돼 있던 상태였다는 점도 비슷하다. 시황제는 이미 존재하던 장성들을 연결했을 뿐인데 만리장성을 쌓은 군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 장벽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이전에 세워진 장벽이 국경 곳곳에 있었고, 트럼프 집권기의 신설 장벽 구간은 그리 길지 않다. 대부분 기존의 장벽을 보수하는 작업이 ‘트럼프 장벽’의 실질적 내용이었다.

책은 이렇듯 익숙한 고대와 현대의 장벽은 물론이고 지구 곳곳의 장벽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며 인류 문명사를 조망한다. 4000여년 전에 세워진 고대 시리아의 장벽에서 출발해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중국, 로마, 몽골 등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중앙아메리카 등에 이르기까지 벽이 보여주는 양면성을 역사에 대입해 설명한다.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벽을 세우고 문을 닫아거는 폐쇄성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장벽을 쌓음으로써 교류가 촉진되는 개방성의 사례들도 넘쳐난다는 것이다. 특히 21세기 들어 장벽은 놀랍게도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인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케냐, 튀니지 등에서 새로운 장벽이 솟아나고 있다. 난민의 유입과 테러, 전염병, 마약 등에 대한 두려움이 장벽 건설을 전 세계적 현상으로 만든 것이다. 어찌 됐든 고립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과거 냉전시대의 고립을 대표했던 베를린 장벽의 최후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