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프리뷰]100년의 삶, 두 세기의 패러다임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 소설은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 100만 부가 팔리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고, 이후 35개국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다. 언뜻 보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건들로 점철된 이 이야기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주)연극열전 제공

일단 이 작품은 허구인 주인공 알란의 삶과 실제 역사적 사건의 교차점을 교묘하게 엮어내면서 현실과 가상, 소설과 역사를 아우르는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1905년 스웨덴의 한 시골에서 태어난 주인공 알란이 스웨덴과 스페인,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곳곳을 방랑하면서 본의 아니게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설정은 다소 억지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대의 역사적·사회적 흐름 안에서 나름 가능할 법한 상상력을 펼쳐놓고 있어, 허구인 줄 뻔히 알면서도 흔쾌히 속아주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알란이라는 인물이 살아온 100년의 세월을 통해 20세기와 21세기 역사를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펼쳐진다. 하나는 100세 생일을 앞두고 양로원을 도망친 노인 알란이 벌이는 소동이고, 또 하나는 알란의 지난 100년간의 인생사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알란의 100세 생일을 전후로 각각 20세기와 21세기에 펼쳐진 그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는데, 두 개의 모험은 그 규모나 성격에 있어 매우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면서 20세기와 21세기라는 서로 다른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양로원에 들어가기까지 알란이 살아온 인생은 격동의 20세기 현대사라 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갈등의 현장에서 알란은 프랑코·트루먼·스탈린·마오쩌둥 등 역사적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이념과 사상이 세상을 리드하고, 힘의 논리가 사람들을 지배하던 20세기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폭탄 전문가로서 활약한 그의 이력 역시 파괴와 폭력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은유하는 하나의 장치라 볼 수 있다.

한편 100세 생일을 앞두고 양로원을 도망친 알란은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데, 이 모험의 여정에서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난 세기 만난 거물들과는 다른, 낯선 카테고리의 인물들이다. 우울증에 걸리기 직전인 무료한 노인, 22년째 졸업을 못 한 만년 대학생,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농가의 주인과 그가 기르는 코끼리 등 알란의 새 동료들은 주로 사회의 주류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소외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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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서로를 보듬으며 따뜻한 연대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여기엔 팽팽한 긴장의 20세기가 끝나고 난 뒤,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열어가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 있다. 11월 26일부터 2020년 2월 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김주연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