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프리뷰]성군 세종의 인간적 고뇌와 번민

조선 건국과 이방원의 형제의 난, 그리고 한글 창제를 둘러싼 세종의 일대기는 수많은 문화 콘텐츠의 원형으로 인기를 누려온 소재다. 안방극장의 경우만 봐도 유아인, 김명민, 신세경, 변요한 등이 등장해 인기를 누렸던 <육룡이 나르샤>나 한석규, 장혁, 신세경, 윤제문 등이 장안의 화제가 됐던 <뿌리 깊은 나무>, 세종 역의 김상경이 인상적이었던 <세종대왕> 등이 모두 이 시기를 대상으로 한 문화적 산물들이다.

HJ컬쳐 제공

앙코르 무대를 꾸미고 있는 뮤지컬 <세종 1446>도 바로 그 시기 세종대왕의 인생여정을 다루고 있다. 소재적인 특성은 아무래도 인기를 누렸던 안방극장 드라마를 쉽게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육룡이 나르샤>나 <뿌리 깊은 나무>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자주 발견된다. 다만 이들 대중문화 콘텐츠와 차이점이 있다면 세종의 번민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묘사가 심도있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글 창제는 말할 나위 없고, 셋째아들이었던 그가 왕에 오르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아버지의 의지 탓에 장인을 죽이고 아내인 중전을 마주하게 되는 운명, 끊임없이 자신을 해하려 하는 옛 고려의 세력인 전해운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오히려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세종의 인간적인 모습이 강조될수록 그가 단순히 타고난 어진 성군이 아니라 끊임없는 인간적 고민과 번민의 과정을 거쳐야 했던 존재임을 느끼게 하는 매력을 다시 찾게 된다.

무대 속 이야기는 시종일관 격자 모양의 세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정된 세트에서의 움직임이 아니라 때로는 무대의 상하수 포켓에서 등장하기도 하고, 백스테이지에서 나오기도 하며 여러 공간적인 창출에 도움을 준다. 밀고 닫는 여닫이문이 아닌 옆으로 열고 닫는 전통한옥의 미닫이문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극 속의 이야기가 다른 장면으로 효과적으로 전개되는 일종의 틀거리의 역할과 동시에 우리 전통한옥의 구조적인 특성을 반영해 이야기에 호기심을 더하는 장치로서의 역할도 한다. ‘이야기를 열고 닫는다’는 무대용 콘텐츠로서의 뮤지컬의 정체성 또한 반영되어 있어 흥미롭다.

물론, 서양에서 주로 사용하는 미닫이문과 달리 그 확장성이 훨씬 더 신축적인 여닫이문 세트를 활용함으로써 장면의 스케일을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활용하는 절묘한 재미 또한 담아낸다. 동양적인 배경과 시대, 장소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내는 셈이다. 무대 디자이너 김대한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매력이다.

문화프리뷰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전해운 대감과 세종의 만남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최고의 장면이다. 세종이 전해운의 존재와 계략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를 통해 늘 자신을 견제하고 채찍질해왔다는 노랫말은 비록 극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라 전제하더라도 세종에 대한 경외심을 한없이 높여준다. 한국 사람이라면 꽤나 울컥할 만한 감상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위대한 임금, 세종과의 감동 어린 만남을 놓치지 말라 권하고 싶은 이유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