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56) “이렇게 말을 털어놓으니 맘이 후련하네요”

이게 뭐라고 여지껏 속에 품고만 살았는지…. 한 번도 이런 마음을 입 밖에 내본 적이 없어요. 내가 무너질까봐. 그런데 괜찮네요. 그동안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이 많이 슬퍼했을 거예요.” 순간 눈물 고인 눈이 반짝인다.

날씨가 참 무덥다. 몸도 마음도 축축 처지는 계절에 K세미나 하우스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인다. 낯익은 얼굴도 있고 낯선 얼굴도 보인다. 서로 반갑게 맞이하며 안부도 묻고 포옹도 하며 그간의 그리웠던 마음을 전하다 보니 어느 새 온몸에 생기들이 돈다. 그 광경을 부담스러워하며 다소 경계하는 낯선 얼굴들도 보인다.

“처음 오셨나 봐요? 반갑습니다. 오시는 길은 어떠셨어요?”

“아~ 네~ 초행길이지만 괜찮았어요. 근데 서로 다 아시는 분들이 오셨나 봐요.”

“아니에요. 여러 번 오신 분도 있고 처음 오신 분도 계셔요. 혼자라서 좀 어색하시죠?”

“네. 제가 제일 나이도 많은 것 같고, 모두 젊어 보이고, 서로 아는 사이들 같아서 처음에 당황했어요.”

“그랬겠어요. 나이가 드니까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면 어쩐지 눈치가 보이죠? 저도 종종 그래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조금 낫네요. 혼자 뻘쭘했는데 다가오셔서 얘기 나눠주시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요.”

“다행입니다. 이렇게 마음속에 불편한 마음들을 들어주고 말하면서 풀자고 모인 거예요.”

그렇게 그녀와 나의 만남은 시작됐다.

해마다 여름·겨울휴가를 집단상담에서 보낸 지 십수 년이 된다.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조금씩 내려놓고 돌아가는 모습을 무수히 보았다. 그래서 이 시간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에 소중한 시간이 된 지 오래다. 밖에서 평범하게 만났다면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그들의 아픔을 마주하면서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일부를 만나게 되는 마법의 시간들이었다. 집에 돌아갈 때는 매번 예상치 못한 내 안의 나를 발견하고 때론 놀랍고 기뻤지만, 처음 올 때는 아픈 부분을 만나는 작업이 싫고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영화 '장수상회'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해마다 여름·겨울휴가를 집단상담으로

“우리같이 나이가 들었다면 남편이나 자식들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지만, 젊은 친구들은 한참 좋을 나이에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안 그래요?”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미심쩍은 듯 동의를 구한다.

이번 집단상담에도 여지없이 한참 좋을 나이의 젊은이들이 대거 참여했다. 모두들 그들의 당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기 좋아하고, 부러워했다. 그래서 더욱 그들이 부모들의 행동으로 괴로워하며 오열하는 모습이나, 어린 시절 일방적인 폭력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던 자신을 마주하며 눌러왔던 눈물을 끊임없이 흘릴 때, 집단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적잖이 놀란 듯했다.

“엄마도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아요. 그런데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외롭고 힘들어요. 수십 년이 지났고 지금은 전혀 딴 세상에서 사는데도 그 일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6살짜리 꼬마애가 그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동안 이해할 수 없이 폭발했던 내 감정과 행동들이 이해가 돼요. 나 스스로는 살려고 발버둥쳤던 거라고 생각하니 제가 측은해요.” 젊은이의 오열이 이어진다. 옆에 앉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던 그녀가 함께 운다. 어미가 되어 운다.

“나도 먹고 사느라 정말 밤낮 없이 몇십 년이 훌쩍 지났어요. 지금까지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요. 돈도 많이 벌었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요. 돌아보니 그동안 남편도 아들도 나의 수고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억울하고, 내 인생 전부가 허무하고 쓸쓸했어요. 그런데 오늘 저 젊은이의 얘기를 들으니 지금까지 아들에 대해 괘씸했던 마음도 있지만, 부족할 것 없는 것 같은 우리 아들도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을 수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드네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한 중년부인이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남편을 잊지 못하는 그리움을 토한다. 남편과 사랑하며 함께한 세월보다 그리워하며 혼자 보낸 시간이 두 배가 넘는다며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하염없이 운다. 자신은 벌써 중년이 됐는데 그녀의 머릿속엔 여전히 남편의 젊은 시절 모습이 생생하다는 말에 말할 수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묻어나와 모두의 가슴이 저며 온다. 한순간만이라도 다시 남편을 볼 수 있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지금도 당신 사랑하고, 함께했던 시간들 행복했었고, 예쁜 딸 곁에 남겨줘서 고마워”라고….

어느 날 남편을 만나 얼굴을 비비며 반가워하다 깨어보니 꿈이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다는 그녀의 애절한 흐느낌에 모두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졌다. 그렇게 그녀의 그리움이 이어지고 마침내 그녀가 말한다.

“아무도 나에게 그 한마디를 안해 주네요”

“이렇게 내 속의 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네요. 이게 뭐라고 여지껏 속에 품고만 살았는지…. 한 번도 이런 마음을 입 밖에 내본 적이 없어요. 내가 무너질까봐. 그런데 괜찮네요. 그동안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이 많이 슬퍼했을 거예요.” 순간 눈물 고인 눈이 반짝인다. 차츰 그녀의 입가에 오래전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을 그 미소가 자리한다. 참 곱다.

“신기하네요.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렇게 그리워하다니. 정말 남편이 좋은 분이셨나 봐요. 아니 아내가 저렇게 착하고 예쁘니 남편이 얼마나 끔찍이 여겼겠어요. 부부는 서로 저렇게 애틋해야 되는데 난 우리 집 양반한테 서운한 마음만 컸으니….”

남편과 아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자꾸 뒤로 물러난단다. 이건 아닌데…. 남편은 그녀의 수고에 대해 한마디 고맙다고 말하지 않지 않았나. 그녀 역시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들로부터 직접 듣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가족들로부터 어떤 얘기를 듣고 싶으셨어요?”

그녀를 향한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수고했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감정이 북받치며 눈을 감는다. 주름진 얼굴 위로 세월만큼 진한 눈물이 주름 따라 흐르고 또 흘러내린다.

“아무도 나에게 그 한마디를 안해 주네요.”

마음이 짠하다. 저 짧은 두 마디가 그렇게 하기 힘들다니…. 그때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던 조원 중 한 명이 그녀 앞에 다가가 마주앉는다.

“당신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정말 고마워.” 온 마음을 실은 한마디가 방 안에 잔잔히 퍼져가자 그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낀다. 침묵이 길게 흐른다. 모두의 마음이 먹먹할 때쯤 그녀가 두 손으로 눈과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분명 내 앞에 앉아 말을 한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닌데도 그 말이 내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위로로 다가왔어요. 그리곤 내 속에 체증처럼 쌓여 있던 알 수 없는 것들을 한순간에 쓸어가는 기분이에요. 이건 아닌데 싶은데도 이상하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내 억울한 마음들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다른 분들 얘기 들으며 남편과 아들에 대한 그동안의 내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지만, 그래도 이 말은 내가 꼭 듣고 싶었나 봐요. 정말 신기하네요. 그리고 남편! 고마워요.” 대리 남편을 향한 눈물 젖은 윙크가 우리 모두를 울고 웃게 한다. 또한 그녀의 애교가 빛을 발한다.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

“분명 이곳에 왔을 때 무거운 마음 보따리를 여러 개 이고 왔는데, 지금 내 보따리가 어디 갔는지 못 찾겠네요. 참 신기하지요.”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suh06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