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반지성주의와 민주주의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인정받고픈 영역이 다를 뿐이다. 정치판의 이전투구를 보면 나름 고고한 체할 수 있는 학자가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알고보면 학문의 세계만큼 인정욕구가 날것으로 맞부딪히는 곳도 드물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의 논문을 꼼꼼하게 읽어 티끌만한 논리적 허점이라도 찾아낼 때 기쁨을 느끼는 일이야말로 연구의 첫걸음이다. 자신의 생각과 똑같은, 논리적 허점도 없는 논문이 먼저 발표되었음을 알 때 느끼는 허탈감은 설명하기 어렵다. 이때 빠지기 쉬운 유혹이 남의 생각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슬쩍 갖다 쓰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연구비 등을 타내기 위해 무리하게 연구결과를 부풀리고 복제하다가 발생하는 표절이다. 이른바 ‘자기표절’이라는 형용모순의 개념이 성립하는 것도 대부분 이 경우일 것이다. 또 하나, 흔히 말하는 폴리페서들 중에 연구실적이 뛰어난 이들도 의외로 많은데, 그 중에는 “나는 정치도 하지만 공부도 소홀히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스펙관리를 위해 무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석사학위논문을 지도교수가 자기 이름으로 학술지에 싣는다든가 하는 행위들이 이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표절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던 한국 사회가 적어도 정치판에선 반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먼저 기본개념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들이 축자적으로 같다고 표절이라 몰아붙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 논문에서 IMF 위기를 설명하면서 당시의 성장률이나 물가 등의 거시경제 데이터를 표로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 정도까지 표절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주장하는 이조차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수긍하기 어려울 터이나 정치적 당파성 때문에 알면서도 밀어붙이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 탓이리라. ‘자기표절’로 지적되는 것 중에도 가령 발표매체의 성격이 확연히 구분되는 경우에는 무의미한 트집잡기일 뿐이다.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을 대중잡지나 심지어 칼럼에 풀어쓰는 경우, 한국어로 발표한 논문을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다시 고쳐 발표하는 경우에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특히 바닥이 좁은 한국의 학계에서 관련 분야의 전공자들은 표절 여부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사실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논문을 관심있게 읽고 논평할 수 있는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고, 그런 경우 대놓고 표절한다는 것은 학문적 자살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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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히려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표절논란에서 반지성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을 읽는다. 지성을 가장한 전문가들의 결탁이 이를테면 정권이 바뀌면 사인조차 바뀌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와 같은 비열한 담합을 깨는 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다. 그러나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에서 때로는 부풀리고, 때로는 상식을 벗어난 표절 혐의를 씌울 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대중들이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반지성주의 또한 물리쳐야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식으로 반론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똥과 겨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기준이 없다면, 언젠가 그 공격이 나를 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지성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제대로 균형을 잡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정상화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제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똥 묻은 개들”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며, 그 사라짐을 앞당기는 것이 이 시대의 소명일 것이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