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31) 내 삶의 무게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만약 위에 있다면 무게 중심을 아래에 두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불러와서 점검해봐야 한다. 만약 내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내 속에 있는 힘을 찾아야 한다.

어렸을 때 처음 보고 너무 신기했던 장난감이 오뚝이였다. 생긴 것은 볼품이 없었지만 이 녀석은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났다. 도대체 몇 번이나 일어날 수 있는지 수없이 넘어뜨리다가 결국 내가 지쳐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그 이유를 알아보기보다는 ‘으레 오뚝이는 넘어지면 일어나는 거야’라고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오뚝이를 넘어뜨리지 않았다. ‘걔는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오뚝이잖아.’

오뚝이의 힘은 복원력이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심리학에도 오뚝이의 원리가 중요하게 연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결국 ‘성공적인 삶은 오뚝이 같은 삶’이라는 결론도 깨달았다. 설명하는 용어와 적용되는 영역이 조금 달라졌을 뿐 그 원리는 동일하다. 오뚝이가 ‘복원력’으로 바뀌었고, 이 현상이 단지 장난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큰 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지금도 계속 회자되면서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저려오는 ‘세월호’도 결국 침몰 그 자체의 기술적 원인은 복원력을 잃은 것이다. 배는 원래 면경지수(面鏡之水)같은 잔잔한 호수만을 운항하는 것이 아니다. 높은 파도와 거센 바람을 헤치고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항상 기우뚱거리며 앞으로 나간다. 간혹 심하게 흔들릴 때는 곧 침몰할 것처럼 겁이 나지만 곧 다시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힘을 복원력이라고 부른다. 세월호 참사에서 왜 세월호가 복원력을 잃게 됐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그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제공한 기타의 다양한 요인들에 대한 철두철미한 수사를 통해 불법과 편법이 개입됐다면 응분의 처벌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디시는 이런 참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언제나 강하고 힘찬 의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노래로 전하는 가수 배일호가 ‘오뚝이 인생’을 부르고 있다. / TV화면 캡처

우리 삶도 호수에서 안전하게 운항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태풍도 불고 집채만한 파도가 몰아치기도 하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팔자가 좋아 모든 것이 순풍에 돛단 듯 쉽게 흘러가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어느 인생도 파도와 폭풍을 만나지 않는 항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태풍이나 파도가 몰아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파도나 푹풍 속에서도 결국 평형을 되찾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복원력을 키우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자연현상은 우리가 통제하거나 피할 수는 없지만 우리 마음속의 복원력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실패해도 쉽게 일어나던 사람들이 중년에 한 번 넘어지고 나서는 다시는 일어설 힘을 잃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중년 세대를 상담하다 보면 이런 경우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제는 더 이상 일어설 힘이 없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열거한다. 그런데 그 이유들이 거의 대부분 외부적인 요인들이다.

오뚝이가 넘어져도 또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무게의 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오뚝이의 원리를 몰랐을 때는 너무 신기했지만, 원리만 알면 간단한 것이었다. 겉모습은 똑같은 오뚝이에게 무게의 중심을 머리로 옮기면 당연히 한 번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한다. 즉 겉모양은 오뚝이지만 더 이상 오뚝이가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복원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뚝이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김 부장은 사람이 너무 가벼워”라든지 “박 대리는 나이는 어린 데도 진중하고 믿음직스러워”라고 평가한다. 아마도 중요한 일을 함께 해야 할 동료를 구할 경우, 가능하면 가벼운 사람보다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믿음직한 사람은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했을 때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이 있는 사람이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 모든 배가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동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빠르다. 목표에 다다르는 시간이 빨라진다. 반면에 동력이 약하면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더디다. 만약 동력이 없어진다면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가진 배라도 결국 그 자리에 멈추고 만다.

자존감 높은 사람이 자신감 강해

세상을 살아나가는 힘은 다른 말로 하면 자존감(自尊感)이다. 자존감은 문자 그대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는 힘도 강해진다. 의미 있는 삶은 대부분 장애가 많이 있다. 장애가 없는 쉬운 삶은 의미 없는 삶이다. 예를 들면, 장기나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하수(下手)들하고는 경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겼다고 해도 별로 기쁘지도 않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과제의 난이도에 달려 있다. 어려운 과제를 성취했을 때 즐거움과 보람이 커진다. 당연한 결과를 두고는 보람을 느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하수들과 경기를 해야 할 경우, 일부러 장애를 만든다. 차나 포를 떼어주고 경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겼을 때 즐겁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감이 강하다. “어떤 일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 이 믿음, 자신감이 바로 마음의 복원력이다. 자신감이 강한 사람은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난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자신이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감이 적은 사람은 조그마한 어려움에도 포기하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는 아무 일도 안 돼” 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무게의 중심은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인지에 따라 그 위치가 결정된다. 무게의 중심이 아래에 있다는 것은 자신감의 원천이 자신 내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반면에 무게 중심이 위에 있다는 것은 자신감의 원천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자신감의 원천이 내부에서 온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을 알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샘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오가는 사람들이 샘물을 마셔서 저녁 때가 되면 이제 더 이상 물이 없어진 것 같지만 하룻밤만 지나면 또 그득히 샘물이 고여 있다. 장애 때문에 많이 힘들고 지치지만 조금만 쉬고 나면 다시 힘이 돌아온다. 자기 스스로에게서도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비록 실패했을 당시에는 넘어지지만 곧 다시 일어서는 힘이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자신감의 원천이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은 남들의 인정을 통해서 자신감이 생긴다. 즉 자신이 어떤 일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은 외부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에서 온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지속되는 한 이들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인정이 사라지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런 경우는 마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상황이 된다. 외부에서 물을 계속 부으면 독에 물이 차서 넘친다. 하지만 하룻밤만 지나면 물이 다 없어지고 만다. 그러면 또다시 외부에서 물을 부어야 한다.

중년은 삶의 절정에 있는 시기이다. 그만큼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거나 혹은 그 자원들이 외적인 것이라면 위험해진다. 이런 자원들은 내 것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빌린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잃어버릴 것을 감지하기 때문에 한사코 이것들을 소유하려고 온갖 궁리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필사적인 노력을 해도 결국은 나를 떠나게 돼 있다. 고위직에 있던 사람이 그 직을 떠난 후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내 삶의 무게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살펴볼 일이다. 만약 위에 있다면 무게 중심을 아래에 두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불러와서 점검해봐야 한다. 만약 내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내 속에 있는 힘을 찾아야 한다. 우리 모두 내부에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힘을 찾지 않고 믿지 않았을 뿐이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는 오뚝이는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또 넘어뜨려 보라고 웃고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syhan@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