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29) 중년에 노부모와 사이가 나빠지는 이유

어렸을 때는 부모의 처벌이 두려워 속마음을 무의식으로 억압했지만, 이제 중년이 돼서는 더 이상 늙은 부모의 처벌이 두렵지 않아 구태여 속마음을 억압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중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의외로 노인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은 경우를 종종 본다. 부모와 함께 있으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는 쉽게 역정이 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도 이런 행동이 옳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곧 집에 돌아와서는 후회를 하곤 한다. 하지만 또다시 부모님과 만나게 되면 욱하는 감정을 누룰 수가 없어 화를 내곤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만난 한 중년남성도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명절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게 큰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특히 연로하신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면 함께 간 자식들이 보고 닮을까봐 걱정이 된다고도 했다. 그는 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쳤다. 아버지가 ‘콩’이라고 하면 자기도 모르게 ‘팥’이라고 하고, 아버지가 ‘팥’이라고 하면 ‘콩’이라고 우기고, 결국 “아무것도 모르시면 좀 가만히 계시라”고 큰소리를 내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소문난 효자였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말씀에 토를 달기는커녕 무조건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했다. 지금 전자 계통의 회사를 다니고 있는 이유도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내심 미대에 진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당시에는 전자 계통의 공부를 하는 것이 유망하니 그쪽으로 공부하라고 말씀하셔서 자신의 생각은 입 밖에 내지도 못하고 전자공학 계통의 공부를 했다. 하지만 지금도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련이 남아 있다.

노부모와의 갈등을 풀기 위해 때로는 노부모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솔직히 들여다보는 시도도 필요하다. 지난해 8월 종영한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의 한 장면./SBS 웹사이트

지금 내 앞의 노부모는 바로 자신의 모습

최근에 만난 한 여성은 남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녀의 남편은 시부모에게 겉으로는 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자신의 남편이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긍정적인 감정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했다. 모든 관계가 가식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이 든다고 했다. 예를 들면, 시아버지가 지난여름 며느리인 자신에게 “에어컨 하나만 장만해줄 수 없겠니?”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단다. 그러고는 “네 남편에게는 내가 그랬다고 말하지 말아라” 하고 덧붙이시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신의 생각인 양 “아버님댁에 에어컨 하나 장만해드리자”고 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에어컨 하나를 장만해 드리지 못할 만큼 힘들게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따졌더니 “그 노인네가 덥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러는 거야”라면서 더 이상 말도 못하게 하더라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자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부모님 뵙기도 너무 민망하다고 했다.

중년에 부모님과 사이가 나빠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어렸을 때의 부모·자녀 관계가 역전돼 나타나는 것이다. 권위적인 부모들은 대개 자식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자식을 키운다. 그것이 부모의 도리이고 자식이 제일 잘되는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자녀가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처벌을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자녀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보다는 부모의 말씀을 따르게 된다. 어린이에게는 부모의 사랑과 보호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밖으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부모에게 섭섭하고 화가 난다. 하지만 이 감정을 표현하면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이 감정을 억압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부모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이 들켜 처벌받을 것이 두렵기 때문에 오히려 더 복종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반동형성’이라고 부른다.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도 있듯이, 자신의 속마음과는 반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즉 어느 자식이 미운 경우, 이 마음이 들키지 않기 위해 오히려 반대로 더 사랑하는 듯이 떡 두 개를 준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년이 돼서 부모에게 자꾸 역정을 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젊었을 적에는 유난히 부모의 말에 순종적인 사람이 많은 이유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처벌이 두려워 속마음을 무의식으로 억압했지만, 이제 중년이 돼서는 더 이상 늙은 부모의 처벌이 두렵지 않아 구태여 속마음을 억압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압하는 것도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억압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지금까지 감춰두었던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중년에 노년의 부모와 사이가 나빠지는 두 번째 이유는 ‘부모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힘없는 늙은이는 바로 앞으로 20~3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이다. 어느 자식은 부모와 반대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또 어느 자식은 부모와 같은 모습으로 나이 들어간다. 하지만 어느 방향이든 부모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동일시’라고 부른다. 동일시는 두 종류가 있다. ‘긍정적 동일시’는 부모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 동일시’는 부모처럼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딸들의 무의식 속에는 “난 엄마처럼 살고 싶어”가 있든지 또는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의 두 가지가 있다.

젊었을 때 그렇게 가족에게 폭력적이던 아버지가 늙어서는 힘이 없는 나약한 할아버지가 돼 있는 모습을 볼 때 많은 자식들이 오히려 힘없는 아버지에게 안도하기보다는 화가 더 난다. “젊었을 때는 사나운 호랑이처럼 집에서 그렇게 못되게 행동했으면서 지금은 왜 이렇게 처량하게 되었느냐?”며 화를 내는 자녀들도 의외로 많다. “차라리 지금도 젊었을 때처럼 성질을 부리며 나를 때렸으면 좋겠다”며 상담실에서 눈물짓는 중년도 볼 수 있다. 자신도 늙으면 그렇게 힘이 없어질까봐 두려워지는 것이다.

다른 노인들에게는 동일시의 감정이 약하거나 없기 때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신은 저런 모습으로 늙지 않을 것이라고 얼마든지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는 남처럼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하면 부모와 심리적으로 ‘분리’되기가 쉽지 않다. 부모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부모님이 싫었다”고 고백하기

이유를 알았다면 해결할 수 있다. 먼저 자신이 부모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만약 자신은 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마음 속에 부정적 감정이 있다고 아무리 알려주어도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듯이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긍정적 감정은 표현되지만, 부정적 감정은 억압되어 있을 뿐이다.

부정적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그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연로한 부모님에게 새삼 부정적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이제 연로한 부모는 그 비난을 감당할 신체적·심리적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믿을 수 있는 대상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된다. 예를 들면, 부인에게 자신은 솔직히 “부모님이 싫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만약 마음 놓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대상이 없을 경우에는 ‘빈 의자 기법’을 이용할 수 있다. 혼자 자신의 방에서 빈 의자를 앞에 두고 그 위에 베개나 다른 물건을 놓는다. 그러고는 그 베개가 자신의 부모라고 생각하고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나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아버지가 술 마시고 집에 와서 나를 때렸을 때 아버지가 너무 미웠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속일 필요도 없고 꾸밀 필요도 없다. 단지 바로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심한 경우 욕이 나올 수도 있다. 욕을 해도 괜찮다. 원래 상대가 누구이든지간에 미우면 욕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이 과정을 되풀이할수록 부정적 감정이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분이 풀리면 부모에 대한 긍정적 감정도 나타난다. 이 감정도 솔직히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마음 속으로 불화했던 부모님과 화해하는 것이다.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

부모가 자녀의 미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부모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자식은 부모를 닮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내 앞에 있는 노쇠한 부모는 단지 부모일 뿐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삶이 있다. 부모와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원래는 하나였지만 따로 살아가는 것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이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syhan@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