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14) “누구랑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말을 안 하고 방에 틀어박힌 지 수년이 되는 딸과 그런 딸을 보고 매일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소리 지르는 남편. 위로 딸이 하나 더 있지만 제 할 일만 하느라 동생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열아홉 살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50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는 내공 있는 아가씨였다. 다행히 앞에 있는 내가 안 되어 보였는지 이따금씩 내 질문에 “예” “아니오” 정도의 반응만 베풀었다. 어머니의 의뢰로 내게 온 그녀답게 침묵은 일상이고 체념적 무관심으로 마음은 먼 곳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고 불안한 세 번의 만남이 끝나갈 즈음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음악 좋아한다고 했죠? 다음번엔 좋아하는 노래 서너 개만 갖고 올래요? 아예 블루투스 스피커도 갖고 와서 함께 들어봐요!” 늘 내리깔았던 눈이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생각보다 눈이 크고 예뻤다.

음악 들으며 처음으로 주고받은 대화
반신반의한 네 번째 만남이 있던 날, 그녀는 내 제안을 갖고 왔다. 가수 이름도 노래 제목도 생소한 외국 이름들! 그 제목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분명 한국말로 설명하는데 여전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일단 들어보자고 하자 뭔가 내키지 않아 하며 플레이를 누른다. 상당히 발랄하고 흥겨운 전자리듬이 먼저 들린다. “음, 좋네요”라고 하자 살짝 웃는다. “이게 무슨 장르인가요?” “팝이오.” “가사는 어떤 의미죠?” “잘 몰라요.” 여전히 단답형이다. 좋아하는 노래인데 가사의 의미를 모른다니, 대답하기 귀찮다는 뜻일까? “좋아하는 노래인데 가사의 의미를 몰라요?” “그냥 멜로디가 좋아서….” 그녀로부터 그냥 멜로디가 좋다는 말을 듣자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그냥 멜로디가 좋은 노래가 있는데, 왜 그런 질문이 튀어나왔는지. 가끔은 내가 촉수를 세우고 정보를 수집하는 형사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노래를 그냥 노래로 듣는 것조차 잊는다. “그래요. 이 노래 참 멜로디가 좋네요.” “이것도 같은 가수예요.” 그녀가 먼저 두 번째 노래를 들려준다. 반가웠다.

뭔가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창법으로 시작된 노래는 흑인 래퍼들의 중얼거림으로 넘실댔다. 어떻게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계속되는 랩에 조금 거북해져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니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흔들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이 노래의 어떤 부분이 좋으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역시 그냥 멜로디를 즐기는 것 같았다. 40분 같은 4분이 흐르고, 노래가 끝나자 그녀가 순간적으로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본다. 내 의견을 궁금해 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바로 맘에 안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떨군다. 뭐라 해야 할지 몰라서 “뭔가 어려운 거 같아요. 랩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하자 “저도 잘 몰라요”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랩음악이 뭔가 좋은 거죠?”라고 묻자 “부분적으로 들어간 건 좋은데 긴 건 싫어요” 한다. 반가운 마음에 “아, 그래요?” “너무 많이 들어가면 사회에 대해 막 불평하는 것같이 들려요.” “아, 불평하는 것처럼 들려서 싫구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주고받은 의미 있는 대화로 기뻤다. “세 번째 노래는 조용한 노래예요. 영화음악으로도 나왔고….”

어느 누구하고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화보다는 그 사람의 관심사를 통해 말문을 열 수 있으며,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자취를 되짚는 길이자 그 사람 마음속으로 자리 잡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사진은 헤드폰을 낀 채 음악을 듣고 있는 여성. / 이상훈 선임기자

상당히 서정적인 음색이 흘러나왔다. 랩을 들은 후에 들어서인지 귓속에 반가움이 들어왔다. 마치 사막에서 맞는 오렌지 빛 일몰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였다. 나도 모르게 노래에 몰입하게 됐다. 그녀와 있는 자리가 이 순간만큼은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는 떨구고 있지만 시선을 7시 방향으로 고정하고 조용히 음 하나하나를 본인과 연결시키는 듯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조금 짠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하루하루를 보낼까?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렸던 어느 시점에서 마음이 힘들었을까? 어떤 일이었고 얼마나 큰일이었을까?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아련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날 쳐다보면서 눈이 마주쳤다. 조금 놀랐지만 씩 웃으니까 그녀도 수줍게 웃는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노래가 끝난 후 물어봤다. “좋아요.” “좋아요?” “네, 좋아하는 노래 들으니까요.” “저 노래는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인가봐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원래는 되게 슬플 때 듣는 노래인데…”라고 대답했다. “아, 슬플 때 이 노래를 들었구나.”

표현이 극도로 적은 사람이 입을 뗄 때
한참 이어지던 침묵을 깬 건 그녀의 손이었다. 손을 눈가에 가져가서 문댄다. 닦으면 떨어지고, 또 닦아도 같은 자리에 눈물이 맺히고 흘렀다. 나는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주었다. 그녀가 세 번째 노래를 듣고 있었을 여러 날들에 대해 가슴으로 느껴보았다. “마음이 많이 울컥하나 봐요.” 그녀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인다. 입은 여전히 닫혀 있지만, 마음 문은 노래 한 곡 들어갈 틈 정도 열린 것 같다. “슬플 때 이 노래 들으면 좀 어때요?” “좀 편안해져요. 잠깐 생각을 멈출 수도 있고.”

한 달 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부탁하며, 몇 년간의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았다. 말을 안 하고 방에 틀어박힌 지 수년이 되는 딸과 그런 딸을 보고 매일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소리 지르는 남편. 위로 딸이 하나 더 있지만 제 할 일만 하느라 동생 일은 신경도 쓰지 않고, 어머니 자신은 혹시 사람들이 둘째딸 얘기를 물어볼까봐 골프모임도 더 이상 안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집안에 있으면서 방에만 있는 딸 밥 차려주다 분 섞인 눈물을 삼킨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솔직하고 상식적인 말투에서 어머니가 딸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딸을 만나는 게 여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여기서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언제든지 또 가져와도 돼요.”

그제야 내내 떨어뜨렸던 얼굴을 들며 “여기서요? 다음에도요?” 묻는다. “네, 힘들었을 때 듣던 노래들 같이 들어요”라고 대답하자 입을 가리며 웃는다. 오늘 이곳에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왜 노래를 가져오라고 했을까 궁금해 하며 왔다고 했다. 왜 가져오라 했을 것 같으냐니까, 자기가 말을 잘 안 하니까 노래 들으면서 노래 이야기라도 시키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한다. 감탄이 나왔다. 이 조용한 아가씨는 그녀를 둘러싼 시끄러운 물음표들에 대해 훤히 보고 있었다. 그녀를 힘들어하고, 그녀를 불편해하는 시선들에 대해 구석구석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겠어요.” 그녀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나는 이 시점부터 질문 대신 눈 위에 난 발자국을 되밟듯, 그녀의 마음자취를 거꾸로 되짚어 가게 되었다.

세 번의 어색한 만남, 나이든 상담가가 한 번씩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 엄마가 사정하다시피 보낸 상담실 입구, 오랜만에 타본 지하철과 딴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 현관을 나서는 무거운 발걸음. 매일 저녁 방밖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고함소리, 참으라고 말리는 엄마의 힘겨운 손과 한숨소리. 화장실 가기도 불편한 집안 공기, 나가고 싶지만 갈 데가 없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데가 없는 방 안.

“이렇게 나오는 거 쉽지 않았을 텐데, 네 번이나 나온 건 정말 엄청난 용기예요.” 한참 있다 고개를 끄덕인다. “오기 싫었어요.” 오기 싫었다는 그 한마디에서 가느다란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늘어뜨려진 실 가닥의 한쪽 끝을 내가 잡고 있는데, 다른 한쪽 끝을 그녀가 막 집어든 것 같은 미동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지만 희망적일 때가 있다. 특히 표현이 극도로 적은 사람이 입을 뗄 때 더욱 그렇다. “누구랑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고, 이야기 할 것도 딱히 없었어요.”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

나는 다섯 번째 만남에서 어떤 노래를 들을지 궁금하다. 오기 싫었던 어색한 만남에 가져올 노래를 고르듯, 그녀는 그렇게 천천히 세상의 실 저편도 집어올리며 씨줄 날줄을 엮으리라. 아마 노래를 고르는 그 순간부터 그녀는 나와 대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래를 고르는 과정 속에 이미 나는 그녀의 마음에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suh06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