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13) ‘심리적 자식’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직접 꿈을 실현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자식들이 잘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청년기를 지나 중년에 다다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부정(否定)한다. 그리고 아직도 젊다는 것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이 와중에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면 타협을 한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이제는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절하게 기원한다. 그리고 더 이상 늙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애쓴다.

죽지만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방법
중년들이 이처럼 늙어가는 것을 부정하고 타협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는 것은 마음속 깊이 존재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부인하고 영생(永生)하려는 마음의 발로이다. 사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이 땅에서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진화해 왔다. 당연히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한다. 다만 다른 생명체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 영생하는 길을 찾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이다. 생물학에서는 죽지 않고 살아가는 주체는 바로 유전자다. 나의 유전자가 살아있다면 나는 계속 살아있는 것이 된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손을 많이 번식시키는 것이다. 자손을 많이 번식시킨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남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비록 죽지만 나의 유전자를 통해 계속 살아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자식은 나의 유전자와 배우자의 유전자를 반반씩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둘이라면 나의 유전자는 완전히 살아있게 된다. 만약 자식이 셋이라면 오히려 1.5가 되어 나보다 더 많은 내가 살아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중년의 부모는 자신이 못 이룬 꿈과 일을 자녀를 통해 이루길 소망하고 이를 통해 심리적 보상을 받는다. 그래서 자녀의 성공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자원을 동원한다. 100년 동안 한 곳에서 오로지 양복을 만들어온 한 양복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네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KBS 2TV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포스터./KBS 웹사이트

심리적으로 죽는다는 것은 생명이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내가 이루려고 했던 꿈과 이상을 더 이상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신체적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두렵고 싫은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없어지는 것이 심리적으로 죽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전도가 양양하던 젊은 정치인이 수치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려 더 이상 정치를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표현한다. 즉 정치적으로는 더 이상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죽은 것이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는 표현도 사회적으로 더 이상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뛰어난 이성(理性)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만물의 영장이 된 대가가 다른 동물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큰 죽음의 공포를 가진다는 것은 일견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아무리 경기가 나쁘다고 해도 제일 끝까지 살아남을 기업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젊고,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인간을 포함한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단지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자신에게도 온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감(實感)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죽음에 대해 태도를 보면 진정성이 느껴지는 경우가 드물고, 심지어는 마치 자신은 죽음을 초월한 듯한 태도로 죽음을 희롱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이제 죽음이 단지 추상적이거나 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몸의 변화를 통해 느끼면서 실감하게 된다. “몸이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말을 시작하는 순간 죽음이 바로 곁에 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이성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그 진가(眞價)를 발휘한다. 그리고 죽지만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심리적으로 죽는다는 것은 자신의 일을 더 이상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만약 우리의 일을 우리만큼 열심히 잘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유전자를 통해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계속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바로 자식이다.

중년에는 자식이 중요해진다. 물론 젊었을 때도 자식은 중요하다. 젊은 부모들도 자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한다. 하지만 젊었을 때의 자녀와 중년 때의 자녀는 그 의미가 다른다. 부모가 젊었을 때는 자녀는 애정의 대상이고, 부모의 양육동기를 만족시켜주는 대상이다. 하지만 중년 때의 자녀는 부모가 못 이룬 꿈과 정신을 계속 이루어줄, 심리적인 죽음으로부터 구해줄 대상이다.

“이제는 내 자녀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에 부자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를 보여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한평생 자개장롱을 만드는 장인의 길을 걸어온 아버지는 아들이 그 일을 이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젊은 아들은 그 일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여기고 다른 젊은이들처럼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꿈꾼다. 얼마간의 회사생활을 한 아들이 결국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곁에서 대를 이어 장인의 길을 간다.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시청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듯하고 흐뭇하게 만든다.

중년의 부모는 자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도와준다. 자신의 꿈과 일을 자녀를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중년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자녀가 잘되는 것이 결국 자신이 잘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물학적 죽음을 뛰어넘어 계속 살아있는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중년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사람 마음의 마술은 여러 가지가 있다. 비록 생물학적 자녀가 없다고 해도 상징적인 자식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학자의 자식은 학생들이다. 한 학자로서의 연구와 학문적 업적은 제자를 통해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은 심리적 자녀인 셈이다. 사업가에게는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이룩한 기업을 계속 성장시킬 수 있는 후임자가 자식이 된다. 당연히 기업가는 자신이 정한 후계자가 기업을 계속 성장시킬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과 자원을 모두 제공한다.

한평생 결혼하지 않고 빈민들을 돌보며 살아온 테레사 수녀의 경우에는 자신이 세운 수도원을 계속 운영하고 자신의 정신을 계승할 후배 수녀들이 자식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심리적 자식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비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도 심리적으로는 자식이 될 수 있다. 세계 도처에서 테레사 수녀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빈민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자식이 될 수 있다. 그들이 자신의 정신을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테레사 수녀는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다.

심리적인 자식이 많은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직접 꿈을 실현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자식들이 잘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중년의 진정한 멋과 아름다움은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배려(配慮)’에 있다.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

젊은이의 기도는 “나에게 복을 주셔서 내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이다. 하지만 중년의 위기와 갈등을 잘 극복한 성숙한 중년의 기도는 “나에게 남은 복이 있다면 이제는 내 자식에게 주시옵소서”이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syhan@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