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의 사회]한국사회에 몰아치는 성과주의의 함정

예나 지금이나 말과 힘을 가진 권력자의 성과 측정에 대한 견제가 막힌 상태에서 일방적인 성과주의의 강조는 사고를 촉발할 따름이고, 진짜 문제는 그 사고가 결국 아래에 놓인 말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른 아침부터 눈썹을 찌르는 앞머리가 거슬렸던 탓일까? 반드시 머리를 자르고만 말겠다는 생각에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우주선 모양의 외관을 갖춘 독립 건물로 된 고급 미용실에 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특급호텔처럼 화려한 입구, 잠시 기다리는 동안 권하는 음료의 스타벅스를 뺨칠 정도로 다양한 메뉴 등속에 잔뜩 들어버린 주눅은 젊지만 카리스마 있는 ‘헤어 디자이너’와 그 옆에 서서 온갖 허드렛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더 젊은 조수를 보면서 어느새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이 좋은 설비의 감가상각비와 이 두 청춘의 인건비, 또 이 건물의 임대료를 감안하면, 30분 뒤 내가 카운터에서 지불해야 할 돈은 얼마일까? 명색이 경제학자로서의 직업의식에 입각한 가격 예측과 고작 ‘남성 컷’ 한 번에 몇만 원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활인으로서의 걱정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느라 정작 헤어스타일에는 신경 쓸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내 지불의 시간. 해피엔딩이라 이름 붙여야 할지, 아니면 어느 아재의 청춘 착취 에피소드라 이름 붙여야 할지? 그 가격인즉 내가 열심히 추정한 것의 절반에도 약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분업의 경우 기여한 몫을 어떻게 나눌까
사사로운 일화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이른바 서비스 노동의 생산성 측정이 지닌 허무함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30분에 두 명의 노동자가 일을 했으니, 그들의 노동생산성(엄밀하게 말해 부가가치생산성)은 내가 지불한 금액에서 각종 비용을 뺀 금액(편의상 1만원이라 하자)을 두 노동자의 노동시간(각자 30분씩이니 합하면 한 시간이다)으로 나눈 값이다. 요컨대 시간당 1만원 남짓한 크기인 것이다. 만약 내가 연예인들이나 비주얼형 유명 정치인들이 드나든다는 청담동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면, 부가가치생산성은 그 몇 배로 뛰어오를 것이다. 물론 지방 중소도시의 미용사가 청담동 미용사보다 숙련도가 떨어질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청담동에서 ‘남성 컷’을 한다고 해서 아재가 갑자기 송중기가 될 리는 없을 테니 결국 두 미용실의 생산성 차이의 상당 부분은 사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요컨대 생산성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생산성을 결정한다! 흔한 말로 한국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은 그렇다면 소비자가 지불하는 낮은 가격 탓일 수도 있으며, 관점을 달리 하자면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가외의 복지혜택이었을 수도 있다. 1만원 남짓으로 젊은이들에게서 두피 관리까지 받았던 호강인즉, 나의 실질임금을 올려줌으로써 생활을 조금이나마 윤기 있게 해주는 사회부조의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열 아홉 살짜리 젊은 청춘을 따뜻한 밥 한 공기 편하게 못 먹도록 하면서 경비를 절감한 공기업의 성과를 높이 평가해야 하는가. 6월 1일 오후 서울 구의역 대합실에서 정수영 서울메트로 안전관리본부장과 관계자들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원인 및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다시 예의 미용실 작업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시간당 1만원 정도 했던 그 생산성을 미용사와 조수 사이에는 어떻게 나눠 붙여야 할까? 머리 감기고 두피 마사지하며 드라이어로 말려서 마무리해준 조수의 노동은 허드렛일에 지나지 않으니 미용사의 절반 정도로 계산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은 언젠가 어엿한 헤어 디자이너가 될 날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니 그저 교통비에 식비 정도의 열정 페이로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단순하게(미용노동이 단순하다는 뜻이 아니니 오해 말기를!) 두 명이 분업하여 일하는 경우에도 각자가 기여한 몫을 칼로 두부 자르듯이 명쾌하게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애덤 스미스부터 헤아려 250년 남짓한 근대경제학의 역사에서 소득의 기능적 분배, 즉 생산에 필요한 요소가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에 따라 실제로 얼마나 분배받는가, 그리고 얼마나 분배받는 것이 정당한가에 관한 이론들은 하나같이 앞서 언급한 문제들에 걸려 넘어졌다. 여전히 주류 이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계생산성 분배이론에 따르면, 노동이건 자본이건 토지건 간에 모든 생산요소의 소유자들은 해당 생산요소가 생산에 기여하는 만큼 분배받아야 하며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실제로도 그렇게 분배받는다. 그러나 교도소 안에 앉아 하루에 몇천만 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는 재벌 오너의 기여는 어떻게 측정한 것일까? “회장님은 옥중에서도 경영을 하셨다” 운운하는 홍보실의 의견서를 타이핑하던 어느 말단 사원은 그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을까?

연전에 낙양의 지가 깨나 올렸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말은 당연한 것인 만큼 경제학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말해졌음에도 외면되어 왔다. “노동자의 생산성을 이마에 써 붙여 놓은 것은 아니다.” “슈퍼매니저의 소득은 결국 그의 발언권의 크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성과는 무엇으로 측정할까
IMF마저도 “분배의 평등이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마지못한 언술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는 이 시점에서 한국 사회에 위로부터 불어닥친 성과연봉제, 혹은 좀 더 일반적으로 성과주의의 파도는 무엇을 겨냥하는 것일까?

서비스의 생산이라는 관점에서는 미용실과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금융기관에서 ‘디자이너’와 ‘조수’의 성과를 어떤 방법으로 면밀하게 계산해낼 것인가? 정권만 바뀌면 낙하산 타고 내려와 몇억 원씩 막대한 연봉을 챙겨가는 슈퍼매니저의 기여는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측정하기는 쉽지 않겠으나, 혹시 임명권자와의 친밀도 지수로 재는 것은 아닐까? 목적이 이윤추구가 아니라 공공 서비스의 효율적이고 평등한 제공에 있는 공공기관의 성과 측정은 또 어떠한가? 열아홉 살짜리 젊은 청춘을 따뜻한 밥 한 공기 편하게 못 먹도록 하면서 경비를 절감한 공기업의 성과를 높이 평가해야 하는가?

힘 있는 자는 힘으로, 돈 있는 자는 돈으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환경에서 성과주의를 위로부터 내려찍는 것은 그러므로 결국 노동, 나아가 사회를 훈육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효과에 그 본질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말과 힘을 가진 권력자의 성과 측정에 대한 견제가 막힌 상태에서 일방적인 성과주의의 강조는 사고를 촉발할 따름이고, 진짜 문제는 그 사고가 결국 아래에 놓인 말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비상식의 사회

혹시라도 불러일으킬 오해를 저어하여 덧붙인다. 공공부문의 ‘철밥통’ 노동자나 금융기관의 ‘귀족’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려는 목적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낙하산 경영자는 경영자대로, 정규직 노조는 노조대로 위험부담을 아래로 아래로만 내려 보내고, 결국 낙하산도, 노동조합의 단결력도 없는 비정규 하청 노동자들에게만 무거운 짐이 되어 떨어지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조직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것을 위한 성과 측정은 어떻게 근사적으로나마 할 수 있을지, 지금 이 시점에서 성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어떤 이점과 문제점이 있는지를 “계급장 떼고” 민주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벌에서 신성불가침인 오너의 무오류성 명제나 정치권력자의 거침없는 말과 일방적인 힘의 행사는 공공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자칫 힘 있는 이들만 말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다름 아닌 자신들을 공격하는 화살이 되어 허공을 날아다닐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사라질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 바로 힘 있는 이들과 그 하수인들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류동민(충남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