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극한의 현실에 대한 경청

죽은 자들의 웅성임
이소마에 준이치 지음 장윤선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김사인 시인은 이성선의 시 ‘다리’를 인용해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란 시를 쓰면서,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 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했다. 일본의 종교학자 이소마에 준이치가 동일본대지진 이후 피해지역을 취재하고 쓴 <죽은 자들의 웅성임>을 읽은 지금, 나도 똑같이 말하고 싶다. 이런 책은 그저 문장들을 베껴 쓰는 것만으로 리뷰 한 편 쓴 셈 쳐주면 안 될까. 글쓴이의 담백한 문장에 담긴 깊은 사유와 극한의 현실을 무슨 말로 옮길 수 있을지, 막막하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일주일, 그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현장에서, 입을 닫아버린 이들의 웅성거림에 귀 기울이고 그 목소리를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며 그가 얼마나 무력감에 시달렸을지.

2011년 3월 11일 지진이 일어나고 한 달여 뒤 재난지역을 찾아간 글쓴이는 상상 이상으로 참혹한 현지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피해자를 만날 생각이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들을 만나 잠깐 얘기를 듣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하는 건 아닐까. “가족 모두가 3월 11일 죽었습니다. 오늘은 밤이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이야기를 나눌 최고의 상대가 안녕이란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다니. 죽는 것도 괴롭지만 살아남은 것도 지옥 같습니다”라고 토로하는 이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사자가 아니라는 무력감과 죄책감 속에서 그가 찾은 길은 경청이다. 그는 위로의 말을 하는 대신 묵묵히 경청한다.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도 아무것도 못한 채 살아남아 괴로워하는 이들의 고백을 듣고, “말하고 싶지 않고, 말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신음을 듣고, 그들 안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자(死者)의 비명을 듣는다. 그리고 사자의 말문이 되어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의 혼을 위로해주는 무당처럼, 그들의 원통한 웅성임을 “힘 있는 말”로 옮기려 나선다.

그러나 그는 당사자의 고통을 안다거나 대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산 자와 죽은 자, 피해자와 국외자라는 이분법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를 내세워 다른 목소리를 억누르는 국가, 대변인을 자처하며 피해지를 고립시키는 집단들, 후쿠시마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눈물 흘리면서도 정작 재난지역의 잔해는 그곳에서 처리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듯, 이분법은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들고 그들을 배제하는 사회구조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은 서로 상처 입히고 입는 존재이기에 위로할 수 있”고, ‘나’와 ‘당신’은 다르기에 “당신에게 배울 수 있고 당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북리뷰

가만히 있으라는 선생님 말을 따르다 74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은 오카와 소학교의 담벼락에는, “세계가 전부 행복해지지 않는 동안 개인의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글쓴이는 거기서 희망을 본다. 그리고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행복을 얻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고 호소한다. 맞다. 울고 있는 사람 옆에서 웃을 순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왜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투덜댔을까. 해마다 눈물 위에 새로 눈물이 더해 이 작은 땅에 울음소리 가득하건만.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